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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897845
· 쪽수 : 135쪽
· 출판일 : 2024-08-20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이불 속을 드나드는 새소리 – 11
다정도 어깨동무를 하고 – 12
이국으로 가는 비행기 – 14
못다 쓴 일기―거기 – 16
망상어―잠자는 남자 – 18
아마도 사월 – 20
이렇게 – 21
검정은 폭군 – 22
짱돌 – 24
그친 비처럼 – 26
마네킹 – 28
퍼즐 게임 – 30
나는 누가 버린 저녁인가 – 32
221129 – 33
바깥 – 34
제2부
영영―조치원 – 37
타동사의 시간 – 38
질문은 의문의 사생아 – 40
쑥골 – 42
그 집 – 43
술독 – 44
아주 잠깐 찾던 이름처럼 – 46
새벽은 어제를 다녀간 길들을 기억한다―폐가 – 48
못다 쓴 일기―풍선 – 50
흑백영화 같은 밤 – 52
산책 – 54
가로수 혹은 풍선 사이 – 56
준치 – 58
물고기와의 하룻밤 – 60
연산홍 – 61
제3부
물의 나라 – 65
못다 쓴 일기―적산가옥 – 66
번개 – 68
알러지 – 69
최후의 만찬 – 70
덜컥 – 72
프리즘 – 74
달리는 사막 – 76
이건 또 뭔 소린지 – 78
깜보 – 80
지구는 둥그니까 – 81
바나나로 인한 빨간 고추의 모노드라마 – 82
프로시니엄 – 84
밤길 – 86
간(間) – 88
제4부
졸음을 견딘 눈꺼풀처럼―욕지도에서 – 91
가출 – 92
통영 – 94
오늘도 어제처럼 – 96
억새, 여름 이후―희규에게 – 98
못 다 쓴 일기―사슬 – 100
여우비 – 102
깃털만 남아서 – 104
숲이 숨어 있는 나무 – 106
나도샤프란 – 108
해변의 카프카 – 110
녹턴 – 112
병풍 – 114
이후 – 116
도약 – 118
지갑에서 꺼낸 스무 살―오월 – 120
해설 오민석 불화하는 세계와 서정 이후의 서정 – 121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불 속을 드나드는 새소리
빗자루를 들고 분주하다 서랍을 열어 보던 손은 장롱을 넘어뜨리고 이불을 끄집어낸다 해바라기 그림과 물망초 무늬의 벽들은 여전히 수직이고 수평이고 위아래 없이 평편한데 끄집어낸 이불 속을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새소리 행운목이 있는 창문 너머 교회 앞에서 찍힌 사진은 누가 줬더라! 야구 배트랑 글러브랑 앵무새 깃털이 달린 모자랑 꿈을 꾸듯 서랍을 뒤지면 없던 아이 하나 목각 인형처럼 웃고 낯익은 일기장엔 얘들아 밥 먹고 학교 가야지 귀를 잡아 일으키던 알람 시계,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던 강아지 토담을 끼고 숨바꼭질하던 골목들 보이는데 머리카락 휘저어 놓는 바람처럼 쓸데없이 분주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손과 빗자루는 좀 치워 주시지 먼지 풀풀 날리는 장롱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새소리
아주 잠깐 찾던 이름처럼
화면이 켜지자 남자는
가방에서 서류 대신 사과를 꺼내 놓는다
저문 밤 혼자 먹던 밥처럼 홀쭉해진 가방을 드는 순간
이미 여러 번 겪은 꿈처럼 여자는 있다가 없고
푸른 사과가 시퍼렇게 멍이 든 사과가
꺼내 놓은 사과와 화면 속에서 굴러다닌다
광폭한 신의 모습이 저럴까 싶게 눈보라 휘몰아치고
폭죽처럼 우박이 터지던 날 그리스 신전 같은
오페라하우스 앞에서는 운명의 힘 서곡이 울려 퍼지고
남자의 손을 빠져나온 가방과 굴러다니던 사과가
눈보라 휘몰아친 족발집을 나와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있다
차에 치이고 사람들의 발길에 차인 듯이
식탁 위에 있던 술잔이 떨어진다 붉으락푸르락
사과나무 아래서 아주 잠깐 찾던 이름처럼
으깨진 생을 떠먹다가 우편배달부가 나타나서
속이 텅 비다 못해 쭈글쭈글해진 가방을 희망처럼 끌어안고
남자는 엎질러진 술이 되어 여자를 기다리는데
예측은 빗나가기 위해 존재하듯이
샹들리에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라운지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바람의 말이 히이잉 울지도 않고 달려온다
사람을 찾던 전단지처럼 서류를 날리며
시끌벅적한 시장 한 귀를 잡고 사과나무가 있는 언덕을 거쳐서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이미 여러 번 겪은 꿈처럼 있다가
아파트 너머 들판에는 시퍼렇던 사과가 빠알갛게 익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