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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 베짱이도서관 편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 베짱이도서관 편

김주란, 김지영, 박보경, 박소영, 이경화(랄라) (지은이)
북드라망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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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 베짱이도서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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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 베짱이도서관 편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92128634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5-09-23

책 소개

경기도 퇴촌의 작은 서재도서관인 베짱이도서관에서 <감이당> 팀이 사주명리 수업을 진행했고, 그 과정을 통해 강사와 학인 모두 자신의 운명을 해석하고 자의식과 번뇌를 벗어내는 글쓰기-공동체가 되어 이 책을 결과물로 내놓았다. 사주명리의 기본과 번뇌 탈출의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베짱이도서관 편』 지은이 인터뷰

1. ‘누드 글쓰기’와 ‘베짱이도서관’은 일반 독자들에겐 생소한 키워드일 듯합니다. ‘누드 글쓰기’는 무엇인지, ‘베짱이도서관’은 어떤 곳인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누드 글쓰기란… 김주란·김지영·박보경이 함께 답합니다]
‘누드 글쓰기’란 책 제목은 <감이당>의 강의 프로그램에서 따온 것입니다. 누드 글쓰기는 <감이당>의 사주명리 수업들 중 하이라이트이자 필연적 수순이지요. ‘누드’와 ‘글쓰기’의 결합이라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이지요? 이름대로 자기를 홀딱 벗기는 글쓰기입니다. 벗겨서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는 겁니다. 무엇을? 내 인생의 ‘번뇌’와 번뇌가 만들어 낸 좌충우돌 ‘사건’들을요. 우리는 자신에게 벌어진 각각의 사건들이 서로 무관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잘 들여다보면 내가 겪었던 사건들에는 묘한 패턴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성과 헤어지는 패턴, 친구와 싸우는 포인트, 조직에서 사건을 겪는 패턴, 돈과의 인연 등등. 이 사건과 저 사건, 이 번뇌와 저 번뇌가 동일한 나의 생각과 욕망의 패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패턴들을 ‘까발리는’ 글쓰기가 누드 글쓰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제대로 ‘벗기’ 위해 먼저 사주명리를 공부하고, 자신의 사주팔자를 분석합니다. 처음 글을 쓸 때에는 사주명리가 정말 내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며 시작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사주명리의 기호를 가지고 삶에 고질이 된 자기 기질과 욕망, 즉 자신의 번뇌를 술술 풀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누드 글쓰기는 ‘번뇌의 커밍아웃’입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꽁꽁 감추고 있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것이지요. 핵심은 이야기를 풀어서 사람들과 나누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과 다 같이 나누다 보면 나만 ‘찌질’하거나 팔자가 ‘사나운 게’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제각각의 이유로 모두가 찌질하기 때문에 서로 위로를 받습니다. 또 자기를 홀가분하게 벗겨 내는 만큼 존재는 더 가벼워지고요.

[베짱이 도서관은… 박소영·이경화가 함께 답합니다]
베짱이도서관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사립도서관입니다. “마산 사투리를 쓰는 재미있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이경화가 말했습니다) 박소영이 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마을에 공간을 얻어 서재의 책들로 시작하게 되었고, 2013년 11월 8일 문을 열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도서관 이름을 베짱이라 지었는데 두고두고 이름 덕을 보고 있습니다. 국가 지원은 받지 않고 자발적인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때그때 계절과 사람, 상황에 따라 자연스러운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베짱이도서관을 후원해 주는 분들은 ‘개미 친구’라고 불러요. 물론 도서관 이용은 후원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아이들은 공공도서관에서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책을 보기도 하고요. 또, 행사나 모임을 기획하고 꾸릴 때는 언제나 친구들과 과정을 함께합니다. 일이 아닌 삶에, 결과가 아닌 과정에 중심을 두고서요. 그래서 행사 당일만큼이나 모두가 같이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도서관을 함께 지키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매달 10일, 도서관 소식지인 <베짱이 편지>를 발행합니다. 한 달 사이 도서관의 다채로운 풍경이나 뜻깊은 일,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담아 후원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작업이지요. 도서관 문을 여닫는 시간은 계절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합니다. 1월과 2월은 행사를 잡지 않고 숨 고르는 달로 삼으며,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일주일 동안 도서관 방학을 합니다. 도서관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중심 활동은 책모임입니다. 베짱이도서관이 지금껏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책모임을 주춧돌 삼아 고민하는 힘을 기르고 존중과 연대를 실천하는 이웃들이 차츰차츰 늘어났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모임뿐 아니라 같이 밥도 먹고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각종 행사 기획 회의, 노래/연주 연습 등도 당연히 도서관에서 이루어지고요. 그리고 무엇이든 나누는 베짱이도서관은 세월호 참사, 메르스, 코로나, 이태원 참사, 계엄 등 혼자라면 감당하기 어렵거나 외면했을 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나누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탄핵 때는 마을에서 집회를 하기도 했고, 올해 5월에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304 낭독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큰 사회 문제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고민이나 비슷하게 겪고 있는 아이들 문제, 갱년기 문제 등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며 소소한 삶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책 모두가 주인인 곳. 함께 먹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읽는 곳, 작년부터는 <감이당>과 만나 함께 공부하는 곳이라는 타이틀이 추가되었네요.

2. 보통 사주는 철학관에서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엔 챗GPT도 사주를 봐 준다고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명리를 공부하고, 힘들게 ‘쓰기’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주란] 글쎄요, 아직은 챗GPT가 사주를 잘 못 푼다더라고요. 하지만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금세 달라질 겁니다. 그런데 챗GPT가 발전하면 뭐하나요? 달라져야 할 건 자신이잖아요. 자신에 대해 사유하고, 관찰하고, 분석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할 건 챗GPT가 아니라 나 자신이죠. 사주를 공부하고 글을 쓰는 시간의 의미는 단지 어떤 해답을 얻고자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답에 이르는 과정을 충분히 겪는 데 있을 거예요. 게다가 누드 글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공부해 온 친구들과 같이 나누는 것이거든요. 글 쓰는 건 물론 괴롭지만 친구들과 웃고 울면서 나누는 가운데 얻는 풍요로운 경험은 어디서도 얻기 힘들 거예요.

[김지영] 맞아요. 질문해 주신 것처럼 쓰는 건 참 힘듭니다. 특히 사주명리 왕초보자들은 누드 글쓰기를 쓰면서도 ‘내가 잘 해석한 게 맞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저절로 사주 전문가에게 내 팔자의 해석을 맡겨버리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죠.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사주명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스스로 분석했다가 엉망으로 해석하면 어떡하냐고요? 상관없습니다. 사주명리학은 물리학이나 수학 공식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맞고 안 맞고’의 척도를 쓰면 사주명리학의 스펙트럼은 한없이 좁아집니다. 답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공부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내 사주 명식을 이렇게도 해석해 보고, 저렇게도 돌려 보면서 다양하게 해석해 보는 것이 사주명리의 재미라고 볼 수 있어요.
사주팔자가 완벽하게 동일한 사람이라도 살아온 삶의 거죽은 각자 다 다릅니다. 하지만 또 자세히 살펴보면 커다란 운명의 흐름을 같이 타고 있는 것도 보이죠. 그래서 본인이 해야 합니다. 커다란 운명의 지도에서 나는 어떤 리듬으로 살아왔는지 본인이 봐야 하는 거예요.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니 애매할 것 같지만, 나의 구체적인 삶과 일상에 착 붙여서 해석하면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내 삶과 일상에 부착해 보기 위해서는 ‘써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을 거칠게 살기 때문이에요. 일상에서는 내 행위와 마음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쓰기 위해서는 관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사주를 잘 보려면 써야 하고, 잘 쓰려면 번뇌와 일상 속 내 마음을 잘 봐야 합니다.
인생에서의 사건, 번뇌들을 사주와 연결하여 쓰려면 일단 나는 그 사건에서 빠져나와서 사건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자리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거죠. 그러면 어느 순간 나는 정말 그 사건에서 쑤-욱 벗어나 있습니다. 사건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거죠. 과거를 다르게 해석하면, 현재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속이 답답하시다면, 기존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어떤 사건이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누드 글쓰기를 써 보시길 강추합니다!

[박보경] 사주는 굳이 따지면 ‘보는’ 건 맞습니다. 본인의 생년월일을 봐야 운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철학관에서 사주를 봐 주는 사람은 물론이고 챗GPT도 내 사주를 풀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데이터를 해석할 뿐입니다. 또 누군가에게 ‘자기 삶을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건, 자기는 수동적인 상태로 계속 놓아 두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사주를 볼까요?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 ‘내가 지긋지긋하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등 핵심은 지금과는 다르게 변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명리학을 직접 공부하다 보면 내가 겪은 사건과 역사를 통해서 내 습관과 패턴, 기질, 욕망, 신체성을 구체적으로 읽어 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를 분석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꼭 해야 할 작업은 ‘쓰는’ 것입니다. 뒤죽박죽 꼬여있는 무형의 생각은 유형의 물질로 드러내야 명료하게 볼 수 있습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나를 명료하게 보는 도구로 글쓰기보다 더 확실한 건 없기 때문이죠.

[박소영] 명리를 공부하기 전에는 저도 보통 사람은 접근하기 어려운 특별한 영역이라 여겼습니다. 직접 공부를 해보니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통계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의 일부인 나는 어떤 자연 재료를 품고 태어났는지, 내가 가진 8개의 기호를 하나하나 살피고 의미를 추론해보며 배우고 익히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재밌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삶의 서사를 가장 잘 아는 내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내 운명의 전체 지도를 펼쳐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방향을 그려보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나를 둘러싼 관계와 상황이 바뀌어도 살다 보면 늘 비슷한 지점에서 넘어지고 막히곤 하잖아요. 고민을 화두 삼아 공부를 도구 삼아 그 지점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나름의 이유를 찾아 해결점까지 나아가는 누드 글쓰기는 사고의 이동, 시선의 확장을 가져왔습니다. 외부에 내 운명의 해석을 맡기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대만 남을 뿐인데 그것으로는 신체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지요.
글쓰기는 내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집중과 몰입으로 나와 마주해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찾아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가다듬으며 이리저리 궁굴려보는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견과 전환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성찰의 시간으로 키워진 생각 근력은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뿌리처럼, 시련 속에서도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줍니다. 정직한 자기발견,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핵심에 다가가는 연습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힘을 기르는 누드 글쓰기는 잃어버린 몸의 감각을 되살리고 생명력을 깨울 것입니다.

[이경화] 내 사주를 보는 것은 말 그대로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는 일 같아요. 내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요. 그저 내가 원하는 답이나 좋은 것만 얘기해 주길 기대하는 마음, 어떤 일의 선택을 스스로 찾으려 하지 않고 내 선택에 대한 면죄부를 두려는 마음도 있는 것 아닐까요?
내가 내 사주를 공부하는 것은 내 안으로 들어가 나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신금이구나. 아, 그래서 이런 성격을 갖게 됐구나. 내가 이런 뜨거운 온도를 갖고 있구나. 그래서 신금이지만 이렇게 잘 웃는 반면 건강의 문제가 염증으로 나타났구나. 관성이 많아 나를 극하는 기운이 많으니 내가 힘든 게 너무 당연했겠네.’ 하며 팔자를 하나하나씩 파고 들어가며 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정도로도 사주명리 공부에 만족을 했는데 왕초보명리수업 후에 3페이지의 누드 글쓰기를 해야만 했어요. 좋다고 하니까 하긴 했지만 글쓰기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어 글쓰기 자체로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주명리만 해석하는 것과 그것을 나와 연결 지어 글을 쓰는 건 정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냥 해석만 했을 때는 알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를 절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혼자 일기처럼 썼다면 그저 자기연민으로 빠질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내 글을 공개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더 깊게 나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이해하니 자연스레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방향도 생겼어요. 방향이 생기고 나니 사소한 일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순간 감정에 휩싸이며 여전히 흔들리지만 방향이 있으니 이내 돌아오게 됩니다.

3. 누드 글쓰기는 ‘벗으면 벗어날 수 있다’를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드 글쓰기를 통해 가장 크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김주란] ‘늑대의 붉은 장막’인 것 같아요. 책에는 다 못 썼지만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에서 읽고 크게 와닿았던 대목인데요, 사냥꾼이 늑대를 몰아갈 때 붉은 천을 걸어 둔대요. 늑대는 그걸 불길로 믿기 때문에 그 장막에서 멈추고 만답니다. 어릴 때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선생님이 될 자격이 없지 않나 생각했다고 제 글에 썼는데요, 그동안 금기를 주로 자신을 감시하고 판단하는 데 써 왔다는 자각이 들었어요. 집에 와서 옷을 벗을 때, 이렇게 편한데 답답했었네? 하고 새삼 느끼는 그런 기분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생각은 아닌데 암튼 되게 후련해졌어요.

[김지영] 저는 ‘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책에 나온 저의 명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비겁과다에 무관성 사주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비겁은 ‘나’ 혹은 나와 수평적으로 맺는 사회적 관계이고요. 관성은 조직, 공동체적 관계입니다. 저의 비겁은 ‘토(土)’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겁이 강하여 ‘자기 세계’를 구축하려는 힘이 강한데요. 토 오행이다 보니 나로 이루어진 세계가 훨씬 단단하고 무거워서 잘 변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태과한 비겁을 제어해 주는 관성이 없습니다. 관성은 세상을 중심으로 ‘나’를 바라보는 힘입니다. 이번 누드 글쓰기를 통해서 저는 세상을 정말 ‘나 중심’으로 해석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어떤 직무와 어울리지?’ 등등 깊은 고민을 할 때도 모든 것은 ‘나’에게로 시선이 꽂혀 있었죠. 이 질문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더 큰 세상 속에서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타자가 우글거리는 관계(관성)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타자가 결국 나를 살린다니! 누드 글쓰기를 통해 기존과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극하는 타자가 필요하다는 우주적 이치를 배우게 되었네요.()

[박보경] <감이당>에 처음 공부하러 왔을 때가 떠오릅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금 움직이면 기력이 없어 다시 누워야 하고, 때마다 병원에서 수액과 비타민 주사를 맞으면서 2~3년을 지냈어요.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당연히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내가 몸이 안 좋아진 게 나에게 일을 많이 주는 사람과 환경 때문이라 생각해서 아픈 내내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으로 속이 잠잠할 날이 없었네요.
그런데 누드 글쓰기를 쓰면서 나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게 됐어요. 내 팔자를 공부하고, 내가 어느 쪽으로 기운을 쓰고 있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살펴보니 제가 활동을 많이 하고, 사람들 관계에서 예민한 구석이 있었더라고요. 사주라는 도구로 풀어 보니까 이해되는 지점이 많이 보였어요. 내 모습을 보고 나니, 지나간 사건이 다시 재해석됐어요.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이 내 안에도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죄다 남 탓하면서 욕하고, 아니면 깽판 치고…. 그런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더라고요. 이불킥하고 싶은, 찌질한 내 모습. 그때 상황을 기억해서 내가 왜 그랬는지 쓰는 게 힘들었는데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쓰기 싫더라고요, 남 탓하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너무 싫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또 아무렇지 않게 되더라고요. 나를 이해하게 되고, 내가 바뀌면 된다는 힌트도 얻고! 기쁩니다.

[박소영] 인연과 관계, 기대와 욕망을 ‘붙드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물론 다시 그 마음에 묶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삶은 속박과 해방 사이에서 해방 쪽으로 길을 열어 가는 과정이겠지요. 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어떨 땐 스스로도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에게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전에는 나의 이런 성향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로 인해 크게 불편을 겪을 정도로의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도서관을 운영하며 만나는 사람이 예전보다 몇 곱절 늘어나니 달랐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며 마음과 감정을 쓸 일이 많아지니, 사람을 향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그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기보다 이면에 담긴 나의 이상이 결과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를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이 좋아 신나게 일을 벌였습니다. 마음을 묻고 고민을 함께 나누며 갈등을 풀어가는 일에도 에너지를 많이 쏟았고요. 완급 조절을 못하고 감정이 가는대로 행동한 시간들의 부작용은 한참 뒤 한꺼번에 나타났습니다.
살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몸의 습관, 생활 습관을 돌아보며 운동을 계획하거나 잘 먹고 잘 자기를 실천하는 등 그때그때 일상의 패턴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습관의 산물인 마음과 감정, 생각이 흐르는 통로를 살피는 일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질문이 없었던 것이지요.
사주명리를 공부하고 누드 글쓰기를 하며 제가 감정을 어떻게 쓰고 사는지에 관해 처음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내가 타고난 여덟 글자가 가진 각각의 기호를 해석해보며 감정의 속도가 빠른 이유를,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 나의 행동에 담긴 욕망을 내 나름의 논리로 분석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 결과 다른 어떤 외부 환경이나 누구의 탓이 아닌, 나의 기대와 욕심이 생명으로부터 나를 소외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감정이 가는대로 곧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내 마음과 욕망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감정에 힘이 들어가 있다면 결과에 관해 붙드는 마음, 내 뜻대로 되었으면 싶은 욕심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물론 그러고도 습관을 누르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튀어나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지만 오랜 세월 몸에 새겨진 통로가 아닌, 내 안에 새 길을 내는 과정이니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규범과 관성을 거스르는 일이라서 그것 또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더라고요. 익숙하고 편한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의 힘이 그만큼 세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붙드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나를 비우고, 스스로에게 매몰되지 않는 시간들이 축적된다면 어느 순간 경계가 사라진 ‘열린 나’로,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연대감으로, 세상의 숱한 존재들과 공명하며 생명의 근원에 닿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이경화] 처음 누드 글쓰기 주제를 정할 때 떠오르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또 한편 지금이 아니면 영영 풀어 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서는 더 쉽게 도망갈 테니까요. 옆에서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하자는 생각으로 나를 밀어 넣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떤 상황에 대해 ‘나는 피해자이고 상대는 가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들춰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들추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나 가슴이 정리되기 전에 나의 몸이 먼저 아팠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심장과 연결되어 있는 혀에 문제가 생겨 미각을 잃었었습니다. 나의 생각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몸과 연결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왕초보명리를 공부한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책임감으로 겨우겨우 글을 마칠 수가 있었는데 글을 마치고 난 뒤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습니다. 가해자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니었고, 나도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나의 사주와 함께 나를 계속 보고 또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당했던 일을 끝없이 쏟아냈어요. 당연히 원망과 함께 두려운 마음이 가득 차올랐고 그러면서 몸이 상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속 그와의 오랜 갈등상황을 살펴보니 어리석은 내가 보였습니다. 탐진치 중 치가 제일 무섭다고 했는데 내가 바로 그랬어요. 그리고 그렇게 어리석은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던 여러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불편한데도 참으면서 나는 괜찮다고 상황을 합리화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직 생각보다 몸이 먼저 참고 있지만 괜찮다고 합리화하지는 않게 되었어요.
누드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들춰보기 두려웠던 과거를 스스로 꺼내지 못했을 거예요. 평생을 깊은 곳에 묻어둔 채 그곳에 있는 줄 알면서도 외면하면서 살았겠지요. 누드 글쓰기 덕분에 내 안에서 꺼내어 흘러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4. 이 책을 읽어야 할 뿐 아니라, 누드 글쓰기를 꼭 써 보아야 할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김주란] 그야 지금 여기에 접속하고 계시는 누구나죠. <감이당> 홈페이지를 눈팅하시는 분, 명리에 관심 있으신 분, 운명에 대해 얘기 듣거나 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 등등. 지금 이 얘기가 가닿는 범위 안에 계신 분들은 다 그럴 인연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그 인연을 흘려보내시는 분도 있고, 마음 일어나는 곳으로 따라 오시는 분도 계시는데요, 이건 찐 경험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말씀인데 이거 보시는 분들, 누드 글쓰기는 진짜 꼭 한번 해보세요!
특히! 제 나이또래 분들에겐 권하고 싶습니다. 인생을 리셋해야 할 갱년기에 필수 과정으로 넣고 싶은 심정입니다. 갱년기를 지나고 계신 분들! 제발 지나치지 마시고 오세용.

[김지영] 지금 풀리지 않는 일이 있는 분들, 과거의 사건들로 인해 여전히 힘든 분들, 인생이 왜 괴로운지 알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읽고, 누드 글쓰기를 직접 써 보시길 추천드려요. 철학관, 사주 카페, 온라인 사주 상담, 심지어 ChatGPT를 이용해서 사주 진단을 받고 난 다음엔 결국 어떻게 할까요?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대답이 나오면 결국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런 뒤에는 ‘역시 사주명리는 미신이야’로 결론을 내려 버리죠. 그럴 바에는 내가 직접 쓰면서 나를 진단해 보는 겁니다.
이 책을 쓴 5명의 사주 스토리를 본인의 사주와 비교해 보면 더욱 재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간이 똑같은 사람, 월지가 동일한 사람, 나와 육친의 배치가 비슷한 사람, 오행의 개수가 비슷한 사람 등. 독자의 사주와 저자들의 사주를 비교해 가면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으면 더욱 재밌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제 막 사주명리를 배웠는데, 도대체 이 사주명리를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거예요. 제가 그 산증인입니다() 저도 사주명리 기초만 떼고 첫 사주명리 강의가 끝나자마자 누드 글쓰기를 쓰게 됐거든요. 베짱이도서관 편 이전에 출간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를 보면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운명의 스토리를 읽다 보면, 여러분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올 겁니다. 이건 제가 100% 확신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다 각자의 휘황찬란한 인생 스토리가 있으며, 그것을 세상에 나누고 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심지어 글쓰기 실력(?)이 그렇게 요구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시면 ‘어? 나도 쓸 수 있겠는데?’라는 용기를 얻으실 겁니다.() 오히려 누드 글쓰기는 자신의 번뇌와 패턴을 더 깊이 고민할수록, 문제를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재밌어집니다. 진솔하게 내 운명과 마주하고 싶은 분들, 내 이야기를 세상에 흘려보내고 싶은 분들은 꼭 써 보시길 바랍니다!

[박보경] 사주를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꼭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게 지긋지긋하신 분, 변화하고 싶은 분, 지금 괴로운 분이라면 꼭 읽고 쓰는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누드 글쓰기는 고도의 지성(?)이나 깊고 심오한 철학이 필요한 글쓰기가 아닙니다. 자기 역사를 천천히 되짚어보고,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글쓰기입니다. 물론, 자기를 적나라하게 벗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도 쓸 때마다 “내 찌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라고 비명을 지르며 썼지만, 막상 쓰고 나니 그만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기사 하나를 읽었는데 한 유명 카드사에서 발표한 2025년 올해 소비 트렌드 다섯 가지 중 하나가 ‘셀프디깅’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self)을 ‘깊이 판다(digging)’는 말인데요. 자기를 탐구하고, 탐구한 내용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행위까지를 뜻합니다. ‘자신’을 ‘디깅’하고 나누는 게 트렌드가 된 시대이기도 하죠.
그렇게 본다면, 사주명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선조들이 사용했던 대표적인 ‘셀프디깅 툴’이자, 나를 탐구할 수 있는 최고의 툴입니다. 저는 사주를 배우고 난 이후부터 어떤 유형검사도 하지 않는데요. 일단 시시할뿐더러, 사주명리의 기본기를 익히고 나면 나에게 필요한 색깔(퍼스널 컬러), 관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애착유형), T인지 J인지(MBTI), 신체 특징 및 병증(DNA) 등 모든 걸 사주를 통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누드 글쓰기는 이 모든 해석의 총집합이죠. 한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탐구했는지 적나라하게 나오니까죠. 자기를 찐하게 탐구하고 싶은 분, 사람들과 진솔하게 나누고 싶은 분, 이전과는 다른 셀프디깅을 하고 싶은 분이라면 누드 글쓰기를 강추합니다!

[박소영] 헛헛하고 공허한 마음, 내적 혼란이 자주 찾아오는 분들이 계시다면 책을 읽고, 또 누드 글쓰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생각과 구체적 삶이 어긋날 때 사람은 괴롭기 마련입니다. 자연이 무한 반복 속에서도 경쾌한 변주로 생기와 활기를 잃지 않듯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몸과 마음도 머무름 없이 흐르고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 생명과 자연의 이치일 것입니다. 기운이 어딘가 막히고 정체되어 있으니 내 생명을 더 이상 소외시키지 말라고 보내는 몸의 신호가 바로 통증이 아닐까요?
간극과 괴리가 어디에서 생기는지 알아차리려면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자주 하는 말과 행동, 그 안에 담긴 나의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욕망의 현장과 대면하는 일은 나의 이기심과 나약함, 한계와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깊이 들어가기 위해선 여러 각도의 질문이 중요하니까 혼자보다 여럿이 같이 하고, 정리된 생각을 글쓰기로 구체화해 보면 더욱 좋겠지요. 함께 쓰는 글은 힘이 셉니다.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온갖 감정이 들끓는 내 안으로 들이는 것은 내가 지나치게 확장되는 것을 제어해주지요. 욕망의 회로를 바꿔보기 위해 고민하는 도반들과 질문을 주고받고, 같이 글을 쓰는 누드 글쓰기 과정 속에서 저는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서로가 조금씩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과 달리 혼자만의 고민, 나만의 상처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어요. 상관없는 것 같아도 우리는 모두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을 겪느냐보다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겠지요. 묻는 것이 두려워지면 삶은 생기를 잃습니다. 오랜 고민과 상처, 아픔을 햇볕에 드러내고 바람에 말리는 과정의 질문이 없으면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문제로부터의 해방이 저절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우니까요.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대하는 나의 관념을 바꾸면 됩니다. 자유를 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마주하고, ‘이상적인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의 간극을 줄인다면 고유의 본성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공부를 삶에 녹여 문제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인 누드 글쓰기를 통해 온전한 나의 힘으로 일상의 질서와 규율을 새롭게 만드는 경험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경화] 누구나 저마다 고난을 안고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모두가 써 봐도 좋겠지만 저처럼 내 안에 불편한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사람, 계속 반복되는 불편한 지점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나는 외면한 채 혹은 가슴 속에 담아 두고 그대로 언젠가 조용히 사라지길 기대해도 그것은 순간순간 올라와 나의 결정이나 상황에 영향을 줍니다. 저의 경우 누드 글쓰기를 통해 안에서 꺼내 밖으로 흐르게 했던 한 번의 경험은 다른 불편함이 생겼을 때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습관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외면하려고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마주할 수 있었어요. 한 번 맛본 해방감이 큰 힘이자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혼자는 어렵더라도 함께 누드 글쓰기를 하면 그것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중요한 건 일기처럼 혼자가 아니라 함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써도 나의 마음을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꺼내는 게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순환이 생명의 원동력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꽁꽁 묶어 두려니 얼마나 더 많은 마음에너지가 들까요. 꺼내서 흐르게 한다. 그게 생명의 방향과도 맞으니 누드 글쓰기는 양생의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5. 끝으로 “나에게 누드 글쓰기란?”에 대한 답을 주시고, 간단한 이유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주란] 누드 글쓰기란, 자기만의 길 찾기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각양각색의 사주를 갖고 태어났잖아요? 그러니 저마다의 길은 스스로 찾아야죠. 다른 사람의 목소리 대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누드 글쓰기라고 답하겠습니다.

[김지영] 저에게 누드 글쓰기란 ‘변비 탈출’이었습니다(좀 더럽나요). 몸에서 오랫동안 묵직하게 자리 잡던 번뇌들이 신체를 쑤욱 빠져나가 시원했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 잦은 이직, 아버지와의 관계, 사건들로 인한 불안 등’ 꽤 오래 저를 괴롭히던 번뇌들을 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매번 같은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정확한 이유에 대해 무지하니 불안감만 쌓였었는데요. 저의 욕망과 행위의 습관을 사주명리학과 연결해서 바라보니 이 문제들이 바로 가벼워지더라고요.
누드 글쓰기는 단단히 뭉쳐서 무거워진 나의 번뇌를 세상에 흘려보내게 합니다. 번뇌를 흘려보내며 나도 다른 몸이 되지만, 번뇌도 다른 시공간을 접촉하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의 시공간과 만나겠죠? 번뇌가 저를 힘들게도 했지만, 결국 누군가의 시공간과 접속하게 만들어 주니 번뇌가 꼭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겠네요.

[박보경] 나에게 누드 글쓰기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뗏목’입니다. 제가 누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장이 있으면 뗏목과 노는 꼭 써먹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표현은 고미숙 선생님이 『나의 운명사용설명서』에서 쓰신 말인데요. 책에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려면 뗏목이 필요하고, 사주명리학은 힘차고 역동적인 뗏목이 되어줄 거”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시 책을 읽다 이 문장을 발견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살면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깜깜할 때가 많았는데요. 사주명리를 공부할 땐, 인생 지도를 하나 손에 쥔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만물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인간(존재)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지혜를 명리공부를 통해 배웠습니다. 깜깜한 인생, 되는 대로 살기만 했는데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누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해서 힘차고 역동적으로 탐험할 수 있었습니다. 뗏목에 올라타 노를 저으며 신나게 인생길을 항해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순간부터 괴로웠던 순간까지! 내 습관, 기질, 나아가 욕망, 신체성까지 하나씩 탐험했습니다. 항해가 힘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또 잠시 뗏목 위에서 쉬었다가, 목 좀 축이고, 다시 항해를 떠났습니다. 글쓰기라는 뗏목이 있었기에 힘차고 역동적으로 항해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박소영] 출구. 내 어둠이 선명하게 드러날수록 빛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정직한 직면만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임을 누드 글쓰기를 통해 배웠습니다. 삶과 글이 서로를 돕고 기르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누드 글쓰기는 어떤 출구로 나가는 게 좋을지를 내가 찾는 과정입니다. 일상에 발붙이는 공부와 글쓰기로 과거의 습관들을 바꾸고 모르던 세계에 눈을 뜬다면 다른 ‘나’의 가능성이 열리고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경화] 자유. 너무나 불편한 마음을 내 깊은 곳에 묻어 두고, 내 안에 있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했던 일을 꺼내어 흘러갈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제 인생의 키워드가 자유였거든요. 이런 게 자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차

베짱이도서관에서 펼쳐진 사주명리 수업과 누드 글쓰기• 박소영

사주명리 기초 미니 강의• 김지영, 박보경

배짱으로 산다 • 박소영

존재의 뿌리, 을목 | 두 개의 태양 | 호기심 많은 개척자, 무술 대운 | 전환과 재배치의 시간 | 새로운 대운 속으로 | 관성이라는 광장 | 진술축, 체험 삶의 현장 | 공통의 용신, 공부 | 진토에서 술토로

내가 만드는 나의 운명 • 이경화

베짱이도서관을 만나다 | 보석 같은 아이, 신금 | 신금과 인정욕망 | 관성, 식상을 낳게 하다 | 새로운 관성의 장, 베짱이도서관 | 태과된 화 관성과 염증 | 지루하지 않은 삶, 역마 | 재성—위기를 기회로 | 오행을 순환시켜 ‘새로운 나’로 | 누드 글쓰기를 하면서…

‘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 김지영

무토, 황무지가 만든 강한 생명력 | 비겁 과다, 친구는 나의 힘! | 비겁 과다, 좁은 장소에 적합한 신체 | 비겁 과다+무관성의 콜라보, 세상의 중심은 ‘나’ | 결과를 추구하는 욕망, 재성 | 비겁(나)은 재성(아버지)을 극한다 | ‘나’를 재탄생시키는 공부, 인성 | 질문을 던지는 공부, 사주명리학

갑목, 숲을 꿈꾸다 • 박보경

갑목: 자존심, 독립심, 갑진 대운, 추진력
갑목의 탄생!/명예는 나의 힘|언제 어디서나 ‘갑질’을 해야 해!/갑진 일주가 갑진 대운을 만나면?
토 재성: 활동력, 넓고 얕은 관계, 조화로운 관계망
일단 돌진하는 목!/뿌리를 넓게 뻗을 수 있는 땅/넓고 얕은 관계망/인생의 화두는 ‘조화’
금 관성: 활동의 뿌리, 뾰족한 잣대
관성, 활동의 근거가 되는 힘/뾰족하고 엄격한 바늘/목마른 나무, 물을 만나다!
사주명리, 강을 건널 수 있는 뗏목

을유, 칼을 품은 풀은 어떻게 사는가 • 김주란

운명 탐구, 시작은 흑역사 | 운명을 공부하라 | 을유(乙酉) 1—바위 틈에 자라는 풍란 | 을유(乙酉) 2—풀과 칼 | 인성과 식상이 데려다준 친구들 : 10대 병자(丙子) 대운(상관, 편인) | 어쩌다 국악 : 20대 정축(丁丑) 대운(식상, 재성) | 있는데 없다? 있는데 있다! : 30대 무인(戊寅) 대운(정재, 겁재) | It’s My Turn! : 40대 기묘(己卯) 대운(편재, 비견) | 내 관성은 부처님 : 경진(庚辰) 대운(정관, 편재)

저자소개

박소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퇴촌 베짱이도서관지기. 읽고 쓰고 그리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산다. 지은 책으로 『어서오세요 베짱이도서관입니다』, 그린 책으로 『풀꽃 편지』,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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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어려서부터 진리나 지혜라는 단어만 보면 절로 눈이 갔지만 애써 덮고 지냈다. 그러다 “감히 알려고 하라!”라는 고미숙 선생님의 한마디에 그물에서 벗어난 물고기가 되었다. 지금 나는 불교와 주역의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중이다. 함께 쓴 책으로 『내 인생의 주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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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여러 회사를 떠돌다가 지금은 〈남산강학원〉에서 사주명리와 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용신으로 삼아 나와 세상을 읽는 힘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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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경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공부하는 청년 백수다. 〈남산강학원〉과 강원도 함백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는 삶을 꾸려 가고 있다. 사주명리, 주역, 『장자』 등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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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랄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유랑하듯 부유하며 살다가 베짱이도서관에 정착하여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맛보며 사는 중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짓고 고치고 다듬으며 쓸모를 만드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감이당〉을 만난 후 명리학, 『동의보감』, 불교 등 삶과 이어지는 공부를 이제 막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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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사주 글자와 관련된 기호들을 해석하고 새롭게 진단을 내리는 일은 무의식에 뿌리 박힌 고정된 습관이나 욕망, 인연에 따른 집착과 묵은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방향으로 몸과 삶의 변화를 스스로 만드는 일이다. 다양한 해석을 바탕으로 내 존재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커질수록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게 될 것이므로. 그것을 생명력 있는 삶, 자연에 이르는 삶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박소영, 「배짱으로 산다」)


처음 왕초보명리 수업을 듣고 세 페이지 누드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다루고 싶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는 심장에 무리가 오고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경험까지 했었다. 생각해 보니 짤막한 글 안에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나를 힘들게 했던 그의 만행을 나열하고, 내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내가 아닌 그에게서만 찾았다. 그러니 몸이 아플 수밖에. 다시 누드 글쓰기를 시작하고 그 글을 읽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내가 힘들었다는 걸,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고는 내가 왜 그렇게 피해자 모드로 살았나를 생각해 봤다. 물론 그가 내게 했던 폭력적인 말과 행동에 대한 생각은 그때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거기엔 어린 내가 있었다.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할 줄을 몰랐다. 그저 그렇게 하지 않는 상대를 원망하고 질책하고 그래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포기한 우울한 날을 보냈다. 갈등 해결의 미숙함은 어린 시절 잦은 이사의 영향이 있겠다는 것도 누드 글쓰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갈등을 피하기만 했지 해결하려고 노력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나를 이해하고 나니 더 이상 그를 주제로 글을 써도 가슴이 조이지 않았다.
(이경화, 「내가 만드는 나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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