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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149608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5-05-15
책 소개
목차
1부
벽 앞에서 / 여섯 개의 벽 1 / 제7의 벽 / 투명한 벽 2 / 그 전능의 화가 / 하늘 길 / 존재 / 나 까딱없어 / 가을의 기도 / 무엇인가 있다 / 바닷물 소리 / 창가에서 / 슬픔의 꽃
2부
아기의 첫 울음 같은 / 너와 나 / 우연에 대한 생각 / 잃어버린 발자국 / 강나루(此岸)의 대화 / 너를 떠나라 / 새소리 9 / 나무여, 바위여, 낙엽이여! / 놓친다는 것 / 망명자 / 종점 / 고내오름 오르는 길은 / 끝없는 연주
3부
내가 사랑한 여자 / 아내의 창 / 어디나 가득하다 / 효자손 / 혼자 밥 먹기 / 샤워를 하면서 / 나의 첫 페이지 / 무거운 밤 / 양말 / 오막살이
4부
?, 통일 / 어떤 정의(正義) / 법 / 이상한 늪 / 무성한 입 / 돌멩이 2 / 돈아 / 열려라 참깨 / 나무들은 / 거미줄 / 공짜에 대하여
5부
코스모스 / 가다가 문득 / 나무의 사랑 / 질경이 / 행복 2 / 허공 4 / 나무에 기대어서 / 나무들은 다만 / 너의 모습은 / 이별에 대하여 / 사랑 2
6부
춘정 / 파란 꽃 / 달맞이꽃 / 내도 바닷가에서 / 즐거운 허밍 / 가을엔 2 / 창에 드리운 햇살은 환하고 / 수줍은 봄 / 복사꽃 / 섬 / 산길을 가다가 / 수석(水石) 1
작품해설:외로움의 시학 _ 박덕규
저자소개
책속에서
잃어버린 발자국
해는 중천에 누렇게 뜨고
아지랑이 불타는 들녘, 문득
사위는 멈추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 속을 걸어가는 실루엣
어린 적 볕이 과랑과랑한 들녘에서
탈을 따먹으며 길을 잃었을 때,
겁이 와락 났을 때, 꿈결인 듯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
내 안에 누구실까
멈칫 멈추면 멈추고, 다시 걸으면
뒤를 당기는 목소리
슬며시 돌아보니,
저 어린것이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너 거기서 왜 울고 있니?
-발자국을 잃어버려서요.
그깟 발자국은 어따 쓰려고?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번쩍!” 번개가 스치자
아이는 간 곳 없고,
나는 왜 여기 서 있는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강나루(此岸)의 대화
강나루에 무연히 섰노라니
하루를 무겁게 굴려온 해
불타는 강물로 잦아들 때
줄곧 따라온 바람일까, 툭 친다.
당신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을 건너려고 도강선을 기다리고 있지요.
나룻배는 언제 도착합니까?
-그야 강주인의 마음이겠지요.
당신이 줄곧 걸어온 길은 무엇입니까?
-후회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그때마다 사정없이 엉덩이를 들이받는
성질 고약한 염소 한 마리 몰고 왔지요.
당신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행복은 무엇입니까?
-아, 그 또한 후회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왜 그런가요?
-행복은 그 모든 것의 화학 작용일 테지요.
‘바다의 눈물’ 진주를 보세요,
그 은은한 무지갯빛이 아픈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당신은 사랑의 실체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회초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용서의 눈물이지요.
아버지는 먼저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십니다.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요.
그러면 어머니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탄의 질투도 뚫지 못하는 암탉의 날개지요.
‘엄마’, 이는 너무 슬픈 이름이지요.
그러면 이성의 사랑은 무엇인가요?
-바라볼 때 황홀한 별,
닿는 순간 스러지고 마는 별,
언제나 가슴에서 반짝이지요.
그러면 완전한 사랑은 없습니까?
-그것은 그리움 너머에서 피는 꽃,
나를 다 소진하고 나서 비로소 피는 꽃.
왜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이 없는 것입니까?
-탐욕 때문이지요. 탐욕으로는
거울의 뒷면을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은 왜 죄를 짓습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가요?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니까요.
허공은 텅 비어서 어디나 가득하지요.
그러면 사탄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그는 어둠의 제왕, 죽음은 그의 권력,
쾌락과 욕망은 그의 전가의 보검이지요.
사탄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그의 혀 밑에서 내뿜는 모호한 안개지요.
개념이 삭제된 환상 속에 몸을 숨기지요.
당신의 약점을 살짝 말해주시겠습니까?
-음…… 핑계입니다.
본의 아니었다는, 너무 취해서 필름이 끊겼다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시를 씁니까?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사는 겁니다.
길을 가는 자의 노래이지요.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삶을 원하시나요?
-저 타이타닉호의 악사들의 연주입니다.
물속에 잠기는 순간까지 연주하는 것이지요.
아, 배가 도착했군요. 잘 가세요.
-잘 있어요.
세상에 미련도 없다 했는데
왜 눈물이 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