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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374055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22-08-15
목차
1부 미안하다, 일상
‘쓰자’
물심양면
잃어버린 강
군불
나잇값
내일을 던져라
내리사랑
몸짓
미안하다, 일상
책 한 권 보냈을 뿐인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
팬데믹 인사
처음 가는 길
함구령
첫사랑
외사랑
세상없는 꽃밭
사랑의 언어
2부 민오름 대추나무
잡초
애기동백
선인장
불청객
봄동2
봄꽃
반려 식물
민오름 파묘破墓
민오름 벚꽃
민오름 대추나무
민오름 노루
무명꽃
마당에 수선화
낙과落果
고추
고양이 똥
감자꽃
3부 오른발의 재발견
귀보다 코
그릇
렌터카
범생이
비울 거면서
설마
한 방
신호등 노란불
오독誤讀
오른발의 재발견
이어달리기
저울
유예
제주어
해몽 말아요
공양
사랑질문
생각의 주소
네가 만든 그 단단한,
4부 바람의 길
11월에게
12월에게
가을 앓이
유훈遺訓
노랑 궁금증
동상이몽
바람의 길
배웅
세월
세월의 변
수능 날
순교
어느 반성문
한라산 아라리요 -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활엽수
새해 사용설명서
시집해설 - 복효근 시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삶의 강을 건너는 사랑과 지혜의 서
복효근(시인)
잘랄루딘 루미, 칼릴 지브란, 타고르, 푸시킨, 한용운...... 우리 정신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던 시인들은 모두 예지자였다. 바꿔서 말하면 사물의 도리를 꿰뚫는 지혜를 노래한 위대한 시인들이었다. 삶에서 터득한 지혜를 압축된 언어로 노래하여 긴긴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게 아로새겨 놓았다. 시대가 혼란스럽고 삶이 흔들릴 때 이 노래들은 등불처럼 이정표처럼 헤매지 않고 길을 헤쳐나가게 해준다. 그들은 모두 시라는 형식을 차용하여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인간에게 지혜와 교훈을 심어주려 하였다. 그 어떤 양식보다 시는 노래로써 강한 전염력을 가졌으며 리듬으로써 인간의 뇌리에 새겨져 잊히지 않고 유전되는 힘이 있다. 성서의 시편이나 불경의 법구경 등을 시의 범주에서 바라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모든 시가 다 ‘지혜’를 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진 않지만 ‘지혜’를 시로써 전달하려는 노력은 수많은 시인이 수많은 시를 통해 면면히 해오던 일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학의 목적 혹은 그 효용성을 논할 때 등장하는 ‘당의정’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주와 인간, 삶의 통찰과 지혜를 산문의 언어로 전하려 하기보다 운율과 상징 비유, 역설과 반어 등 수사법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가 시의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보는 이론이다.
양창식 시인의 시가 대부분 삶에서 얻은 지혜를 담으려 했다는 일반화를 용납한다면 양 시인의 시는 한 마디로 ‘지혜의 서’라 칭할 만하다. 그리움과 아쉬움, 안타까움 등의 정서를 담아낸 많은 시편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경험과 사유로 터득한 삶의 지혜를 담는 데 시의 많은 부분이 바쳐져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이 지혜를 나 아닌 타인과의 공유를 염두에 둔다. 앞서 언급한 위대한 시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삶을 현명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이정표 내지 지침이 되게 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라 하겠다. 이는 문체적인 특징으로도 나타나는데 명령형 어미를 사용한 많은 문장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자신이 터득한 지혜와 깨달음, 통찰을 독자(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문장형태다. 딱히 명령형 문장이 아니더라도 마치 손주를 옆에 앉히고 ‘삶은, 사랑은, 그리고 인간은 이렇단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야 한단다.’하며 시인의 통찰을 전하는 방식의 언술이 많음도 같은 맥락이다.
문학의 존재 이유에서 본다면 양창식 시인의 시는 공리적 효용론의 입장에 있다. 다분히 교시적(instruire)이다. 그가 삶에서 얻은 지혜와 통찰을 전하여 공유하는 데에 시 창작의 의도가 있다고 하겠다. 시인이 지나온 삶에서 얻은 통찰과 지혜의 목록은 다양하다. 그 다양한 목록의 몇 가지를 소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따스한 온기를 느껴봐
부뚜막 위 고양이처럼
뜨거울 때는 사랑이 아냐
불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
불같이 식어지지
사랑은
군불이 되어주는 거야
그 사람이 깨어날 때까지
깨고 보면
나이가 들어 있겠지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겠지
「군불」 전문
먼저 시인이 그의 여러 편의 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첫 번째 목록은 ‘사랑’이다. 사랑은 온 인류가 종교와 인종을 떠나 태초부터 갈망해온 최고 최상의 덕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온전히 그 사랑이 실천된 적이 없다. 때로는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반대의 흑역사를 써온 게 우리 인류의 실상이다. 많은 종교의 창시자와 선지자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사랑을 논하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정의 내리기 어렵고 실천이 어렵다는 뜻이겠다.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랑에 대한 탐구는 멈추지 않으리라. 그렇듯 참다운 사랑에 대한 시적 탐구는 양창식 시인에게서도 예외가 아니다. 삶에서 필수 항목인 사랑에 대해서 양창식 시인의 사랑에 대한 철학을 엿보는 것은 그가 시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지혜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시인의 ‘사랑’에 관한 시 몇 편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핵심 철학의 일면을 보도록 하겠다.
사랑이라는 명사에 붙는 수식어 가운데 하나가 ‘뜨거운’이다. ‘정열’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을 단어다. 많은 가요와 또 많은 시뿐만 아니라 영화 매체에서도 이 뜨거운 사랑을 찬미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창식 시인은 이 뜨거움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시인이 생각하는 참다운 사랑의 속성은 항상성에 있는 듯하다. 시인은 “불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 불같이 식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군불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군불은 은근히 구들장을 데워서 밤새도록 일정한 온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부뚜막도 같이 데워져 그 위에 고양이도 편안하게 밤을 건널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도록 오랜 세월 같은 온도로 유지되는 따뜻한 사랑을 지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사람이 깨어날 때까지”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물론 온돌 위에서 잠을 자고 깨어나는 것을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해석해야 그 의미가 풍요로워진다. ‘깨어남’은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 외에 일종의 ‘깨우침’ 즉 각성의 의미가 있다. 은근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은 한 사람을 혼미하고 미혹한 상태에서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으로 이끈다. 사랑으로 인한 정신과 영혼의 상승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개 숙여야 한다
산처럼 우뚝 서려 말고
바다처럼 깊이 가라앉아야 한다
깊은 한숨은 있어도
높은 한숨은 없나니
애써 농사짓는 농부는
여물이 단단하길 바랄 뿐
바다로 스미어드는
붉은 노을처럼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끝이 없다고 서러워 마라
우리네 인생 진 다 빠질라
「내리사랑」 전문
앞서 인용한 시가 ‘따뜻한 사랑’이었다면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은 ‘낮은 사랑’, 혹은 ‘깊은 사랑’이다. 높이와 크기를 추구하기보다는 아래로 아래로 깊게 스미는 사랑의 자세를 시인은 노래한다. 단단히 여물어 고개 숙이는 곡물처럼 견고함과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우뚝 서서 그 오만함을 드러내기보다는 바다처럼 항상적이고 흔들림 없는, 노을처럼 스미어들어 두루 꽉 찬 사랑을 시인은 당부한다. 부와 권위로 과시하고 거기에 굴복하게 만들어 소유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천박한 사랑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랑은 언제나 쉽지 않아서 끝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이 끝이 없듯이 사랑은 끝없이 깊어지는 것이고 고개 숙이는 것이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시인은 그래서 그 끝없는 자기희생과 겸양을 서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기약할 수 없는 내일보다
숨 쉬는 오늘에 감사하는 이여
삶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 풍경들
지나치고 나서 남는 건
한갓 풍문의 낙엽들
사랑이 달아날까 두려워하는 이여
사랑은 스위치가 아니라
사랑은 노크라고 기억하세요
응답이 없을까 두려워 말고
두드리고 확인하세요
오늘이 아프다면
내일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사랑의 언어를 실천해보세요
혼자서 단절하지 말고
여기 있다고 손 흔들어보세요
「사랑의 언어」 전문
이 시에서 키워드는 ‘사랑 언어의 실천’이라 하겠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사랑하면서도 사랑이 달아나버릴까 두려워한다. 때로는 사랑이 스위치처럼 켜기만 하면 그 어떤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줄 것처럼 생각한다. 오늘은 아프고 내일은 기약할 수가 없다. 시인은 “숨 쉬는 오늘에 감사하는 이”에게 당부한다. 삶은 “지나치고 나서 남는 건/ 한갓 풍문의 낙엽들”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까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단절감과 고립감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노크’를 하라 한다.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리라. 실존적 고독감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더이상 유폐하거나 고립시키지 말고 연대하고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넘어선 사랑의 확장을 실천하라는 주문이다. 사랑과 삶은 또 다른 상대를 전제로 한다. 인간이라는 정의가 그렇다. 혼자로서는 인간은 정의조차 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을 상대로 한 사랑에서 나아가 다른 존재를 상대로 한 사랑의 실천만이 인간을 온전히 정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실천하는 것만이 두려움과 허무를 떨치고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시인은 시를 통해 말한다.
가시는 지독한 증오
가증스러운 사막의 불볕을 고발하고
잎을 가시로 바꾸는 진술
가시는 지독한 함몰
누구를 죽도록 미워한다면
미워할 때마다 돋아나는 가시를
어떻게 감내하려고
내 마음에 미움을 심을 때마다
내 몸에 가시를 돋칠 때마다
내 속은 사막이 되어야 하는걸
증오는 가시이며
가시는 함몰이며
함몰은 사막이며
「선인장」 전문
사랑의 반대편에 미움이 있다. 앞서 살핀 사랑의 실천이 사라진 곳에 미움 곧 증오가 자란다. “누구를 죽도록 미워한다면/ 미워할 때마다” 가시가 돋아난다. “내 몸에 가시가 돋칠 때마다/ 내 속은 사막이 되어야”한다. 사막에서는 생명이 살기 어렵다. 살 수 없다. 다시 한번 시인은 상기시킨다. “증오는 가시이며/ 가시는 함몰이며/ 함몰은 사막이며”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시인이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 누구를 향한 증오는 그 누구 이전에 자기 자신을 함몰시키는 행위이며 그 자신을 사막으로 만들고 정신과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라는 의미로 읽는다.
지금까지는 문면에 직접 ‘사랑’이라는 어휘가 등장한 시편들을 주로 살폈는데 기실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사랑’이라는 어휘가 쓰이지 않았다 해도 시 전편의 바탕에는 삶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일상을 고루하다 했나요
누가 일상을 따분하다 했나요
그러신 분들께서는 요즘은 어떠신지요
일상을 업신여겼습니다
일상을 허비했습니다
일상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만나고
직장에 나가고
장사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돈다고 불평했던 누구들
코로나 팬데믹,
일상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과분하다는 걸 알게 해주었습니다
일상이 다시 온다면
살갑게 굴겠습니다
즐겁게 대하겠습니다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미안하다, 일상」 전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이전에 없었던 난관에 우리는 봉착했다. 일상이라 여겼던 것들이 일상이 되지 못하고 비대면, 격리, 마스크 착용 등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집회나 가족 면회 더구나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 이제 그 끝이 보인다고는 하나 미증유의 바이러스의 반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그 끝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이 엄청남 세계사적 팬데믹을 당하기 이전에 “사람들 만나고/ 직장에 나가고/ 장사하면서” 자유롭게 살았다. “고루하다, 따분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산다.”하면서 일상을 가볍게, 하찮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살았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잃고 나서야 그 일상이 “과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했던 것들이 실은 소중하고 그 자체가 삶이었던 것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야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일상이 다시 온다면/ 살갑게 굴겠습니다/ 즐겁게 대하겠습니다/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는 일상에 대한 태도 다시 말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축약하여 말하면 ‘사랑’이다. 주어진 일상과 삶의 매 순간을 진정성 있는 사랑의 자세로 살아가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사랑’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태도는 ‘희망’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삶에 대한 사랑을 전제하지 않고 희망을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늘 멀리에 있습니다
아득한 수평선처럼
쫓지 않으면
언제까지 희망일뿐
하루를 치열하게 살다 가는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을 딛고
매일 매일 희망을 던지세요
가도 가도 수평선처럼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린 그 힘으로 살아갑니다
먼 길을 가는 이는 짐을 줄입니다
희망이라는 내일을 높이 던져올리세요
수평선처럼 멀리멀리
「내일을 던져라」 전문
시인은 가장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진리 하나를 보여준다.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린 그 힘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희망을 이룰 수는 없다.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으로 수평선 위에 걸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멀리 있는 희망을 바라보며 이 질곡의 현실을 건너가는 힘을 내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동력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있다. 그리고 준비한다. 그래서 인간은 하루살이와는 다르다. 매일 매일 새로운 그리고 원대한 희망을 저 멀리 던져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좇아 추구한다. 여기서 희망을 이상이라 바꾸어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각박하고 냉혹한 현실에서 먹을 것을 찾아 바로 발등 앞의 일들에 연연 하기도 하지만 이상과 희망의 등대가 있어 현실의 거센 세파를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희망’이 있어 개인의 삶은 더 높고 풍요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인류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희망이 없다면 오늘 다 소비하고 소진하고 탕진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그래서 자신의 삶과 이웃과 공동체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과 우주를 사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꽃 핀다고 모든 나무가
열매 맺지 않는다
어린 너, 그때가 꽃이었는데
그 꽃이 선물이었는데
꽃 지고서야 꽃인 줄 아는
어리석은 부모였을 줄이야
한때 꽃피웠으면 된 것이다
네가 피운 그 꽃을 보며
웃고 울었던 내 젊은 날
지나고 보니 세상없는 꽃밭이었다
너만은 놓치지 마라
네 아이가 꽃일 때
열매 아닌 꽃만으로 존중하는걸
그 꽃밭은
오래 머무르지 않기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꽃밭이기에
「세상 없는 꽃밭」 전문
결과만을 가지고 어떤 사건과 사람과 우리네 삶을 평가하는 세속적인 관습을 반성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교훈이 담긴 시다. 시인은 그것을 꽃과 열매에 비유하여 시를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 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시적 진정성을 더하고 있다. 꽃을 꽃으로 보는 눈, 꽃을 꽃만으로도 존중하는 것을 모르고 오직 열매만 바라보았던 단견을 반성한다. 부모는 자녀가 어렸을 적에 그 자체가 꽃이었던 것을, 그 꽃 시절이 다 간 뒤에야 그 꽃이 다시는 오지 못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던 걸 깨닫는다. 이 시는 그래서 어른이 된 자녀에게 그 소중한 깨달음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너만은 놓치지 마라/ 네 아이가 꽃일 때/ 열매 아닌 꽃만으로 존중하”라고 어른이 된 자녀에게 말한다. 이 역시 자신과 자녀 나아가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고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결과 혹은 성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면‘지금 여기’(now & here)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카르페 디엠은 매 순간을 사랑하는 삶의 방식이다. 매 순간이 쌓여 한 생을 이룬다. 그 매 순간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꽃밭”인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지나버리고 난 다음에야 깨닫는다.
시인의 이번 시집 어디를 펼쳐도 시인이 살아온 삶에서 얻은 깨달음과 통찰로 가득하다. 물론 이러한 삶의 지혜가 단순한 사유와 명상으로서만 얻어진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물욕에 맴돌며/ 일상의 안식을 쫓는/ 어설픈 죄인이어서 반성합니다”라는 고백에서 보듯이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얻어진 지혜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삶을 수렴하는 인생의 가을 무렵에 영혼을 쏟아부어 쓴 시인의 고백록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시큰둥하던 그것들이 웬걸
살랑대기 시작한 것은
말보다 눈 맞춤이었다 교감은
말이 아니라 눈빛을 주고받는 일이었다니
정주며 산다는 건
목차 없이 마음을 읽는 일
잔뿌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도 그들을 눈으로 맞는다
「반려식물」 중에서
똥은 똥으로서 동등해야 하는데
똥에 따라 차별을 하니
똥조차 동등하지 않은 것이다
「고양이 똥」 중에서
제 밥상에 충실한 한 그릇이 되시게
남과 비교하지도 말고
남에게 비교당하지도 마시게
세상에 그릇된 그릇은 없으니
「그릇」 중에서
채우는 자는 허망을 채우지만
비우는 자는 허망을 극복하고
마냥 채우는 자는
마냥 비우는 자를 이기지 못함에랴
채울 거면
꽃처럼 향기로나 가득 채우지
비울 거면
가을 들녘처럼 철마다 비우지
「비울 거면서」 중에서
차례를 어기지 않는
계절의 행렬에 박수를 보내라
「배웅」 중에서
강물 같은 인연
다시는 만나지 말자 절절한 입술로
굽이쳐 흐르다 갈라서자
새벽이면 성근 머릿결을 빗겨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 맞춤은 피해야 한다
「11월에게」 중에서
시인은 반려 식물을 기르면서 말보다는 마음을 담은 눈빛으로 교감하는 법을 일러주고 있으며(「반려식물」) 똑같은 고양이 똥을 두고도 길고양이 똥과 내 고양이 똥을 동등하게 대하지 못하는 인간 편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고양이 똥」) 그런가 하면 “세상에 그릇된 그릇은 없다”는 통찰로, 비교하지 말고 본분에 충실한 그릇이 되기를 당부하기도 한다. 비교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리라.(「그릇」) 욕망과 허망으로 인간의 내면을 채울 것이 아니라 향기로 채우고 가을 들녘처럼 철마다 비워버릴 것을 권유하고 있음도 본다. 어차피 인간은 다 비우고 홀연히 가게 되었음에 부질없는 것으로 채우려 하지 말라는 당부라 하겠다.(「비울 거면서」) 또한 봄이 간다고 아쉬워하지 말라 말한다. 이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충고로 읽을 수 있다.(「배웅」) 같은 맥락에서, 언젠가는 가야 하는 유한한 인생길에서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집착을 떨치고 깔끔하고 산뜻하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게 지혜라고 말한다.(「11월에게」) 허욕과 허세를 경계하는 담담한 철학이 담겨 있다.
철드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단풍도 철이 들어야 제격이다
한 잎 한 잎 동화되는 일은
소소한 일 아니다
한 몸에서 나왔다고
모든 자식들 한마음이던가
같이 철들고
같이 물드는 사랑의 몸짓
저리 예쁘게 물들일 수 있구나
저리 어울려 침묵할 수 있구나
사람도 저리 철들며
향기롭게 나이 들면 좋으련만
사람도 저리 물들며
아름답게 어울리면 좋으련만
나이 들수록
몸가짐이 중요한 것을
보이는 몸짓이
마음만큼이나 소중한 것을
「몸짓」전문
시인은 이제 생의 가을 무렵에 당도하였다. 11월쯤이 될까? 나이도 지긋이 들었다. 머지않아 겨울도 올 것이다. 인류의 많은 현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인도 허망함으로 삶을 채우고 싶지 않다. 가을 들녘이 때맞춰 저를 비우는 것처럼 텅 비우고 싶다. 온갖 편견과 물욕과 집착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채운다면 향기 가득한 지혜로 채우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단풍처럼 아름답게 철들고 싶다. ‘철든다’는 말은 때로 ‘철을 안다’는 표현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제 몸과 의식 속에 철(계절)을 인식하고 그와 동화된다는 뜻이겠다.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는 말도 된다.
가을이 깊어 나뭇잎 하나하나가 예쁘게 물들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단풍 든 나뭇잎은 침묵에 든다. 시인에게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리고 인간도 단풍 곱게 물든 나뭇잎처럼 되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사람도 저리 철들며/ 향기롭게 나이 들면 좋으련만/ 사람도 저리 물들며/ 아름답게 어울리면 좋으련만”하고 시인은 꿈꾼다. 함께 어우러져 산다 하면서도 서로 불화하고 반목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 인간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나이 들어서만큼은 “같이 철들고/ 같이 물드는 사랑의 몸짓”을 동경해보는 것이다. 이 작품 또한 명령형 문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상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교시적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본다.
시인이 꿈꾸는 것은 결국 아름답고 예쁜 삶이다. 이 말속엔 예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삶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포함되어 있다. 시인은 그가 통과해온 시간을 돌아보며 얻은 통찰과 지혜를 이 시집에 담았다. 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자신은 물론 생의 강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건너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 내지는 등불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하여 이 시집은 결코 가볍지 않은, 예지로 가득한 지혜의 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