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580197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3-10-31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독이 흐르는 나비 | 13
우체국이 보이는 베란다 | 14
목이 잘린 장미 | 16
갈래길 끝에서 | 18
곳집이 어둠에 싸일 때 | 20
연둣빛 물이랑이 바닷물에 스미는 | 21
달팽이 향수병 | 22
도착하지 않은 시냇물 소리 | 23
자서전 중에서 | 24
푸른 곰팡이 | 25
Q시 이야기 | 26
부끄러움 없는 스무 살 | 28
두 개의 생일을 가진 아이 | 30
달팽이관이 자라는 밤 | 31
2부
분실물 보관소 | 35
원근법이 사라진 그림을 감상하는 법 | 36
바다의 묵시록 | 37
기다리는 I | 38
모래시계 | 40
제3의 성性 | 42
수척해진 태양 | 43
여름 잠수교는 보이지 않았다 | 44
너의 뒷모습 | 45
몇 번의 여름이 지나는 동안 | 46
환幻 | 47
Homo hybrid | 48
멸시 | 49
3부
갈루아, 갈루아 | 53
쾌락주의 사랑 | 54
갯벌 진흙은 왜 고울까 | 56
콤플렉스 or 콤팩트 | 58
참새와 고양이 | 60
체스판 위 술래잡기 | 61
알렉스, 퍼즐이 되다 | 62
야윈 빙산의 허리 | 64
밤에는 보이고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 65
나는 나를 복제해 | 66
기억을 믿지 마세요 | 68
과호흡 증후군 | 69
테오에게 | 70
π 구하기 | 72
4부
칼 마르크스 유감 | 75
자본 이데아 | 76
그리고 인류 | 77
무덤이 있는 집 | 78
대통령과 미루나무 숲 | 80
Give Me Chocolate | 82
영화처럼, 쿠데타처럼 | 84
바이러스 | 85
후줄근한 날들의 소동 | 86
멧돼지와 무화과 | 88
카푸친원숭이의 미래 | 90
새들은 숲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 91
회전목마 | 94
해설┃인류의 미래와 지구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승하 | 96
저자소개
책속에서
초원에서 데려온 달팽이는 향수병 때문인지 며칠째 미동도 없다 물조차 마시지 않는다 변덕스러운 조울의 포로가 되어 한없이 사랑스러운 촉수를 안으로 감추고 말라가고 있다 이마에 닿을 듯 내려앉은 밤하늘, 잡힐 듯 빛나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던 더듬이로 초록 잎사귀를 한 번만 더 움켜쥐면 좋으련만
하늘 가운데를 가로지르던 빛줄기 수평선 너머로 곤두박질친다
멀리서 바라보면 별처럼 박힌 소와 말, 기분 내키는 대로 겅중대는 염소 무리는 종일토록 초원에 머리를 박고 쉴 새 없이 풀을 뜯는다 땅을 디딘 다리의 힘이 풀린 후에도 눈을 들어 허공을 응시하는 일 따위는 없다 싱싱한 풀이 시들기 전 몸을 살찌우는 것 외, 달리 중요한 게 만무하다
―「달팽이 향수병」 전문
무지개를 좇아 산을 넘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낭만주의가 지나갔다
부패한 살빛의 대지와
뱀의 몸짓을 타고 흐르는 강물 저편
가느다란 황톳길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간다
자연주의가 지나갔다
서울에 서울타워가 있다
파리에 에펠타워가 있다
런던에 런던타워가 있다
혁명의 시대가 지나갔다
바르셀로나 광장 가우디의 가로등 아래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등잔의 램프 같기도, 풍차의 날개 같기도 한 그의 가로등을 도처에 세우려던 계획이 비용 문제로 취소됐다
신도시 예정지를 남몰래 사들여 용버들을 심은 사람은 왜 하필 용버들을 택했을까? 물을 정화하고 해열과 진통의 효능을 가진 버드나무를
마지막 자본주의가 지나가는 중이다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
― 「자본 이데아」 전문
개울 건너 습지는 미루나무 숲이었다
숲 쪽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찰랑이는 소리에 날숨향도 묻어왔다
검은 승용차 하나가 숲을 다녀간 얼마 후
미루나무는 모두 베어졌다
드넓은 습지에 중장비 덤프트럭 쉴 새 없이 드나들더니
낯선 농장이 붉은 얼굴을 드러냈다
그 무렵 TV에서 미국의 새 대통령 연설을 보았다
촌스러운 그에게 사람들은 별명을 부르며 환호했다
임기가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땅콩농사를 짓겠다는 약속 때문일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 대통령이 된 사람은 오래 하려다 그만 죽고 나서야 그만둘 수 있었다
미루나무 숲은 소풍하기에 좋았다
숲속 좁다란 물길은 한여름에도 발이 시렸다
나뭇가지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풀들은 여리게 자라다 가을이 끝나기도 전 몸을 뉘었다
개간한 땅에서 농작물은 자라지 않았다
― 「대통령과 미루나무 숲」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