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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580401
· 쪽수 : 161쪽
· 출판일 : 2024-07-30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바람의 언덕 | 13
수월봉 | 15
삼베 조각보 | 17
손안의 양파 | 19
걸어가는 뿌리 | 21
흰 강 | 23
나무는 울지 않는다 | 25
예순아홉 개의 징검다리 | 27
나무가 되어가는 사람 | 29
좋은 날이야 | 31
퍼즐 맞추기 | 33
긴기아 | 35
불빛 정원 | 37
동백꽃이 송이째 떨어지는 이유 | 39
드라이플라워 | 41
편지를 기다리며 | 43
2부
천 개의 질문 | 47
책은 새가 되어 날고 싶다 | 49
폐선 | 51
가벼운 식사 | 53
민들레처럼 | 54
위험한 집 | 56
누룽지 카페 | 57
중랑천 검은 잉어들 | 59
좌표 여행 | 61
북경오리는 북경에서 오지 않는다 | 63
고지의 정류소 | 65
나도풍란 | 67
동굴 속 분홍 물고기 | 69
버려진 장롱 | 71
붉은 마음 | 73
눈사람 | 75
가을, 파크 프리베 | 77
3부
강은 흘러가면서 깊은 여백을 남겨두었다 | 81
멀미 | 83
귀 | 85
카페에 앉은 고래 | 87
황홀한 약속 | 89
종이 인형 | 91
외국어의 시간 | 93
도서관 가는 봄날 | 95
고백 | 97
수선화 | 99
바람보다 가벼운 주검 | 100
선線 저 너머 | 101
목소리가 끌려간다 | 103
거슬러 오르는 힘으로 | 104
어떤 사이 | 106
기억 속의 한 사람 | 108
문패 | 110
4부
계절 영업 | 115
이끼 | 117
갈칫국 먹는 저녁 | 119
안개, 소 | 121
골목 깊은 집 | 123
하늘 강 다슬기 | 125
21세기 보물창고 | 127
모퉁이의 남자 | 129
먹쿠슬낭 | 131
가지 끝에 매달린 눈 | 132
우리 함께 살아요 | 134
바나나 맛 우유, 하나 | 135
레몬 C | 137
청둥오리를 보았을 때 | 139
목련이 꽃 피는 찻잔 | 141
뒤로 전진할 때 | 143
일기장에 남은 세월 | 144
해설┃천 개의 질문과 천 개의 고원에 대한 퍼즐 | 권성훈 | 146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후의 역광으로 찍는 뷰파인더 속 나무 한 그루
시커먼 실루엣으로
하늘을 떠받친 채 무섭게 서 있다
천 년을 넘게 산 은행나무
거대한 나무 밑에 서서
고개를 꺾어 하늘 같은 꼭대기를 쳐다본다
나무의 끝을 알 수가 없다
세상일이 안과 밖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서
부동의 자세로 대웅전을 바라보는 나무
저 가지 어딘가에 붙었던 나뭇잎으로
수많은 인연이 겹을 만든다
아직 이루지 못한,
가지에 매달고 있는 천 개의 질문
천 개의 눈이 있고
천 개의 귀가 있어
천 년을 산다는 것은 나무 하나만의 목숨은 아닐 것이다
그에 일 할도 안 되는 목숨으로
그를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쿵쿵거린다
나는 아득한 나무 앞에서
너무 높게 서 있었다
― 「천 개의 질문」 전문
아무 데나 빗줄기가 스며드는 곳이면
보따리를 풀고
건조한 바람에 실려 온 고단한 몸을 부렸다
얼마나 깊이 내려가야 발이 닿을지
닫힌 문 앞에 마냥
서 있었다
관절마다 갈퀴 같은 옹이박이고
텅 빈 뱃속을 드러낸 팽나무가
속절없이 예각으로 기울 때에도
나 여기 끄떡없이
서 있었다
강물은 깊어 돌을 굴리지 못하고
온몸으로 쓰다듬고 지나가지만
왔던 길을 뒤 돌아보지 않는다
어스름 땅에 납작하게 붙어
도도하게 하늘 향해 주먹 내지를 때
뿌리는
묵묵히 깊은 우물물을 길었다
내 몸이 긴 그림자 비울 때
둥근 바람을 받아 날기 위해
깃을 팽팽하게 세우고
처음부터 나 여기
꿋꿋이 서 있었다
― 「민들레처럼」 전문
처음부터 위태롭게 태어난 건 아니었다
전혀 바라던 자리가 아닌 곳에서
몸통으로 서 있는 불안한 직립
흔들리는 나무 위에선 잡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적요한 밤이 지나면
해가 솟는 아침이 온다는 것을 간과했다
뺨을 때리는 바람만이 너를 견디게 하는 힘
말은 입에서 생기지 않고
희망을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한때 순백으로
가만가만 길을 찾던 잃어버린 발꿈치를 들고
창 안을 들여다본다
네가 던져놓은 선물꾸러미가 집집마다 쌓여 갈 때
넌 나무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눈처럼 부서져 내린다
끼니도 거르며 밀고 가는 택배 카트에
어지럽게 달려드는 밥풀 같은 눈송이
하루를 달려 텅 비워 낸 저 짐칸에
무엇을 담아 돌아가야 하는지
젖은 주소를 읽으며 먹먹해진다
이미 내일이 와버렸다는 것도 모른 채
서서히 체온을 올리며
그 자리에서 날개를 터는 눈사람
― 「눈사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