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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367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3-11-3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새를 부검하다
메르쿠리우스의 달
가오나시의 알
에코리더
씨드 스프레이
락Lock
안전지대에 초록 불은 없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리부엉이 부부의 둥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소장은 ‘저쪽이 암컷, 이쪽은 수컷’ 하며, 수리부엉이를 구별했다. 박 형사는 수리부엉이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암컷은 하나뿐인 알을 포란 중이었고, 수컷은 둥지 밖으로 날아갔다. 먹이 사냥을 나가는 듯했다. 돌연 혼자 남아 있던 암컷이 알을 부리로 물더니 둥지 밖으로 떨어뜨렸다. 박 형사가 놀라자, 소장은 알이 상해 부화가 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금실 좋던 수리부엉이 부부라도 헤어지게 되는데, 보통은 암컷이 둥지를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화면 속 암컷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도카니 둥지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뒤 수컷이 둥지로 날아들었다. 암컷이 느닷없이 수컷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리로 쪼고 사정없이 발톱으로 할퀴었다. 둥지 한구석으로 몰리던 수컷이 급기야 깃털을 뿜으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그리곤 어수선하게 공중을 선회했다. 박 형사는 자신이 수리부엉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수컷 수리부엉이가 자신의 보금자리 위에서 공회전하고 있다는걸.
박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수리부엉이가 머리 위로 내리꽂힐 것만 같았다. -「새를 부검하다」
서욱은 거친 유화의 질감이 살아있는 회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제목은 ‘조각가의 작업실의 메르쿠리우스’였다. 고대 조각가의 작업실이라는데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별다른 건 없었다. 전신 조각상 하나와 선반 위 흉상만이 그곳이 조각과 관련된 작업장 풍경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특이한 것은 메르쿠리우스라는 인물이었다. 해설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마미아의 아들이었다. 로마신화에서는 메르쿠리우스, 그리스어로는 히르메스로 불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홀로 벌거벗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벗은 황갈색 몸이 달처럼 빛났다. 허리에 휘감은 주황색 천 조각과 머리에 쓴 작은 투구가 걸친 것의 전부였다. 그는 신의 심부름꾼이고 부와 행운의 신이었지만 도적의 수호자가 되기도 했고,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사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하필 조각가의 작업실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서양의 미술작품 속에서 신들의 모습이 벌거벗은 채 등장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서욱의 눈엔 그가 어린아이처럼 천진해 보였다. -「메르쿠리우스의 달」
그런 영인에게 부대표가 직무를 미끼로 돈을 요구했다. 그녀는 부대표가 말 한 오백 같은 건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리고 결심했다고 했다. 대표가 퇴임하기 전에 진짜 에코리더가 되어 보자, 폐건전지 수거 캠페인에서 우수 직원 표창을 받으면 시 산하 환경 단체의 보직을 받을지도 모른다. 결의에 차서 그런지 영인은 조금 눈물을 내비쳤다. 그런 영인을 보며 나는 그녀가 자신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이미 넘어선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내게 남아 있는 에너지의 잔량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에코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