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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비평론
· ISBN : 9791192828992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25-09-3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역사와 허구의 접면
신채호 영웅전기에 나타난 역사의 허구화 / 10
역사시뮬레이션게임 『삼국지』의 스토리텔링 연구 / 40
역사적 상상력이 머무는 곳 / 71
서사적 원천으로서의 역사적 빈틈 / 92
2부 전쟁 체험의 변주
베트남전쟁 소설론 / 110
베트남전쟁 소설 속 사랑 / 155
박영한 『머나먼 쏭바강』의 개작 / 203
3부 한국소설의 경계
이해조 신소설 가정소설적 특성 연구/ 254
김말봉 『밀림』의 통속성 / 285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론 / 319
손장순의 『한국인』론 / 359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이 책에서 다루는 텍스트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든 ‘경계’에 위치합니다. 그것은 장르적 경계일 수도 있고, 시대적 경계일 수도 있으며, 미학적 경계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계적 위치가 단순한 주변성이나 모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이 태동하는 역동적 공간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책이 한국문학의 경계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문학이 지닌 경계 횡단의 힘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신채호의 영웅전기를 대상으로 역사와 허구의 교차 양상을 살피고 그러한 역사와 허구의 교차를 통하여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즉 신채호의 영웅전기의 서사 구조와 서사 기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작가가 어떤 방법으로 역사적 인물을 허구 속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어떠한 영웅상이 구현되었는지, 나아가 작가의 창작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수행된다. 우선 2장에서는 신채호가 허구성과 실재성을 명확히 구별하려는 사관의 입장을 토대로 사료를 배열하지만 배열된 자료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허구적 상상력이 개입하고 있음을 살피고자 한다. 영웅전기 작품 간 비교를 통해 허구화에 대한 신채호의 인식 변화를 점검한다. 또한 이러한 허구화가 전통적인 영웅서사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2장의 주요한 관심사이다. 3장에서는 신채호의 영웅전기가 형상화하는 영웅이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특히 서사적인 측면에서 ‘고난’의 설정과 극복 과정을 통해 어떠한 의미를 끌어내고자 하는지를 점검한다. 4장에서는 독자에게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의 전달 방식에 주목하였다. 영웅을 중심으로 배제와 포섭의 논리가 전개되어 집단적 의식의 각성을 유도하는 서술상의 특징을 살피고자 한다.
2000년대에 들어 역사가 문화콘텐츠로 소비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가 번역^출판된 것을 전후로 해서 국내에도 팩션 열풍이 불었고, 소프트한 역사 관련 서적이 출간되어 서점의 인문 교양 코너를 장악했다. 대중의 반응에 민감한 영화^드라마 분야에서도 역사는 흥행의 열쇠로 간주되어 역사물의 양적 증대로 이어졌다. 한국소설 분야에서도 역사라는 키워드는 뜨거운 화두였다. 출판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별아의 미실이 각각 2004년과 2005년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역사소설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여러 작가가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하여 대열에 동참했다.
이런 현상은 1990년 무렵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던적인 역사 관념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체역사소설을 시도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1987)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패러디하면서 추리소설적 기법을 결합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1993)은 미메시스적 전통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역사적 전망의 제시를 위한 ‘현재의 전사로서의 역사’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은 주종 관계를 형성했던 것에 반해 포스트모던 역사 관념에서는 양자의 위계가 근본적으로 의문시된다. 대중역사소설에서도 왕조 중심의 권력 투쟁기나 궁중 비화에서 벗어나 한 개인의 생애를 다룬 소설 동의보감(1990), 소설 토정비결(1992) 등이 인기를 얻었던 현상도 ‘역사 속 전형적 인간’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구현하고자 한 시도로 파악된다.
지금까지 정비석의 소설 김삿갓, 이문열의 시인, 이청의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세 작품을 중심으로 김병연과 그의 문학을 어떻게 소설화하는지 살펴보았다. 김병연의 행적에 들어 있는 수많은 ‘빈틈’에 각각의 작품은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그 방식을 비교해보는 작업이었다.
‘빈틈’을 작가의 기법과 상상력을 채우려는 시도는 소설 김삿갓의 특징이다. 구체적 인물형상화, 생생한 장면 묘사, 그럴듯한 상황 설정, 상식적인 수준의 유교적 세계관의 활용 등의 여러 소설적 기법으로 개연성에 바탕을 둔 스토리의 전개에 공을 들여서 기존에 전승되는 설화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시인에서는 ‘빈틈’이 많은 설화와 통념에 반복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상상력이 특징적이다. 이때 상상력의 작동을 위해 활용한 것은 인물 내면에 대한 분석이며, 그 결과 기존의 설화적 통설이 제시하는 김병연에 관한 이미지를 탈피하여 인간 김병연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김병연과 그의 문학에 내재한 한과 비극성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은 ‘빈틈’이 많은 설화의 한계를 넘어 김병연의 실제 모습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역사 기록이나 학술 연구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위주로 김병연의 행적을 재구성하였다. 이것은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가 아니라 최대한 빈틈을 줄이고자 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상상력의 성패는 역사와 허구의 균형 잡기가 얼마나 적절한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해석을 강조한 관점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닌다. “한국군의 용병적 위치까지도 제국주의의 비판을 통해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거나, “신식민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을 형상화하였다고 독해하려는 시도는 앞선 시기 평론에서 다루지 못한 평가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엉뚱한 일종의 만화경으로 떨어졌다”고 평가받는 작품에 대해 소재적인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제3세계론적 시각을 부여”하였다고 고평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또 “베트남전쟁에 대한 중국과 소련의 태도가 완전히 결락되었”음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하는데 문학사에서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례는 한편도 없는 것이 실정이다.
특히 ‘용병’으로 표현되는 파월군의 성격규정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미 전쟁 기간 동안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이라는 비난이 국내외에서 제기되었으며, 본고의 대상 작품 모두에서 용병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용병론은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일반론의 차원이므로 그러한 소재가 채택되었는지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설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용병의 전쟁이었다는 것은 상당한 진실을 포함하는 말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자신의 모순을 합리화하는 강력한 기제로 읽힐 수 있음을 지적하는 송승철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소재 차원의 확인을 넘어 전쟁체험 특유의 강도와 파병을 둘러싼 당대의 담론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소설적 형상화의 측면에서 박영한의 장편은 황석영의 단편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 명의 초점화자를 운용하는 것에 비해 복수의 초점화자를 운용할 때 발생하는 이점이다. 머나먼 쏭바강(1978)은 황일천 병장을 중심으로 동료 부대원들을 배치함으로써 확장된 전쟁 경험을 서술할 수 있게 된다. 단편이 참전 장병의 개인적인 탐색에 머문다면, 머나먼 쏭바강에서는 복수의 중대원들을 통해 집단의 체험을 형상화할 여지를 확보한다.
소설은 ‘몬타나촌’을 수색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수색대원들의 눈을 통해 베트남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때 제시된 풍경은 민족적 편견이 강하게 개입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마을에는 “젖퉁과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벙어리 처녀”와 “염소 우는 소리”로 항의하는 늙은 사내만이 남아 있다. 그들의 보금자리에선 악취가 풍기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문명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사실 몬타나족은 베트남 서부고원지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베트남족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며, 내부 식민지의 처지에 놓여있다. 수색대원의 눈에 비친 촌락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 ‘패배약자’, ‘야만(원시적)’과 같은 정형화된 공산진영의 묘사들로 채워지는데, 이는 한국인이 베트남인을 바라보는 선입견을 노출된 결과이다. 가장 궁핍하고 발전이 더딘 몬타나촌을 전형적인 베트남 마을로 묘사한 것은 베트남을 ‘미개’한 땅으로 재발견하려는 무의식이 개입된 것이다.
이해조의 신소설에는 직계가족이나 친인척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들이 주요 역할을 맡아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사건 전개의 중심을 이루는 경우가 빈번하다. 주요 배경이 가정으로 설정되고, 작중인물이 가족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건전한 가정 윤리를 주제로 다룬 소설을 ‘광의적 가정소설’이라 규정할 때, 이해조의 신소설 대부분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가정소설은 고소설이 즐겨 활용한 서사적 유형이라는 점에서 신구소설의 단계적 변화 도식을 설정하려는 논자들은 신소설의 가정소설적 특성을 주목하였다.
대표적으로 임화는 신소설을 ‘과도기 문학’으로 규정하고 가정소설의 형식을 ‘구소설의 유제’로 파악하였다. 그는 “가정소설의 형식이란 것은 군담, 전기 등속으로부터 구소설의 역사가 일단 비약한 산물”로서 “가정소설적 요소라는 것은 또한 신소설 가운데 있는 구소설적 요소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이런 관점은 후속 연구에서도 지속되는데, 송민호는 고전소설 연구에서 널리 활용되는 ‘협의적 가정소설’ 유형을 적용하여 이해조의 「빈상설」은 쟁총형 가정소설로, 「홍도화」는 계모형 가정소설로 분류하고, 이러한 가정소설적 특성이 “신구소설적 요소가 혼효되어 있는 과도기 소설의 특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빈상설」을 “축첩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을 그린 소설”로 파악하고 작품에서 발견되는 가정소설적 특성을 “구소설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결과로 설명하는 이용남의 논의도 넓게 볼 때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본고에서는 손장순의 장편 한국인을 서사 구도와 인물의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작품은 희연과 문휘의 만남과 헤어짐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관희와 혜미, 한선과 소라 부부를 병치하여 총 세 쌍의 남녀 결합에 관한 이야기를 기본적인 서사 전개의 축으로 삼고 있다. 이들의 결합은 공통적으로 실패로 귀결되는 것이 특징인데, 남녀의 실패로 끝나는 과정에 관한 서사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경쟁심이다. 경쟁심은 애정과 친밀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신의 배우자마저 경쟁의 상대로 여기게 만들고 결국 부부 생활의 파탄을 초래한다. 이보다 앞서 경쟁심은 동료나 친구와 같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배우자를 선택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남녀의 결합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작품 속 인물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그 결합이 실패로 끝나게 만든 요인인 경쟁심은 가정 외부의 활동에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문휘나 한선이 사회부적응자의 신세가 되고 마는 것 역시 주체성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경쟁심은 인물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작가의 치밀한 심리 묘사의 수법을 통해 효과적인 서술적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한편 이 작품은 당대 한국사회를 형상화함에 있어 지식인으로 설정된 여러 인물의 시선에 의존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지식인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들은 가정 내부의 문제에서는 왜곡된 경쟁심에 쉽게 휩싸이지만 가정 외부의 문제, 즉 공적 영역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지적이고 냉철한 현실감각을 지니고 있다. 경쟁심과 같은 인물의 은밀한 속내는 작가적 서술 상황에 의존하고, 당대 현실에 대한 파악은 인물의 시선을 통한 초점화인 인물적 서술 상황에 기대고 있다. 긍정적인 인물로 설정된 주인공 희연뿐만 아니라 병리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 문휘 역시 당대의 세태를 관찰함에 있어서는 통찰력을 발휘하며, 심지어 작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인물로 설정된 도수 역시 미국의 원조정책에만 의존하는 한국경제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러한 서술 상황의 이중적인 운용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남녀 결합의 실패라는 서사 전개를,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 사회의 형상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 결합의 실패라는 서사 전개와 당대 한국 사회의 세태 관찰의 시선 제공은 주인공 희연의 인물 설정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타자의 가치기준에 종속된 나머지 경쟁심이 강한 여타의 인물과는 달리 희연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주변 인물과 사태를 서술자와 동등한 지위에서 조망하지만 결혼의 실패라는 자신의 운명에 관해서는 철저히 작중 인물로서의 인지적 한계를 지닌다. 희연은 다른 인물과 마찬가지로 ‘불행’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불행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라는 명제처럼 희연에게 불행은 성숙의 계기로 작용한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오는 동안 다분히 관념적으로만 사고했던 그녀로서는 불행을 겪음으로써 작품의 결말부에 이르러 사회의 현실적 모순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남녀 결합의 실패에 관한 서사는 희연이라는 인물의 내적 성장의 과정으로 환원되며,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당대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조망하고 진단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