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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93024522
· 쪽수 : 352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경성
2 방문자
3 사랑받은 여자들
4 엥겔스 레이디
5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6 기름과 불꽃
7 진실
8 면담
에필로그
작가의 말
프로듀서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실 저는 글을 보고 경애 씨가 대단한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미국까지 건너가 유유자적 벌 연구나 하고 있다니, 조선의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싶었죠.”
경애는 눈을 찌푸렸다.
“별로 칭찬처럼 들리진 않는데요.”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 이 이야기를 꺼낸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 시대의 유일한 등불은 민족의 계몽과 자립이라 말하고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애 씨가 호사가들이 떠들어 대는 것처럼 현실에서 눈 돌리고 사치스러운 지적 유희나 즐기는 여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례지만 묻고 싶습니다. 왜 이런 길을 택하신건가요?”
파도가 부두에 부딪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바다는 계속해서 항구로 무용한 파도를 보내왔다. 거품이 일고 물방울이 튀었다. 사람 없는 고요한 항구에는 잠시 파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데에 이유는 꼭 필요 없죠. 전 새로운 종류의 벌을 찾고 관찰할 때 기쁨을 느껴요. 야생벌이 윙윙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편해지고, 제 눈에 그들의 껍질은 보석처럼 아름다워 보인답니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저도 모르겠어요. 학문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에요. 제 행동에 어쭙잖게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경애가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사토 경부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중이었다. 그가 경애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부검을 위해 시체를 경성제대로 보낼 생각이오. 우리가 현장에서 채집한 벌은 증거 보관실로 옮겼고. 서로 가서 벌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문서로 작성해 주시길 바라오.”
“저도 부검을 보아도 될까요?”
“부검 참관 말이오? 한 선생이?”
“네, 벌뿐만 아니라 이 사건 전반에 있어 자문 역을 맡고 싶어요.”
경애는 사토 경부를 설득하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대청도와 도쿄에서 경찰을 도왔던 일, 필요하다면 의학 공부를 했던 과거까지 들먹여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사토 경부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러도록 하시오.”
“정말인가요?”
경애는 당황해 되물었다.
“안 될 이유가 무에 있겠소? 조선말로 모내기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데. 더구나 선생은 벌 전문가 아니오. 이런 괴상한 사건에 선생 같은 엘리트의 머리를 빌릴 수 있다면 우리로선 과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