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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작가론
· ISBN : 9791193034392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26-02-27
책 소개
목차
주피터 초상
주요 등장인물
작가 후기―미지의 독자에게
부록―이상의 삶과 예술
저자소개
책속에서

“축하해. 이거 내 선물이야. 고공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겠다고 약속해줘. 나도 곧 일본으로 그림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되었어.”
“형아, 무슨 선물인데 이렇게 큰 상자야?”
“펼쳐봐. 어서.”
그는 겹겹이 싼 하얀 창호지를 펼쳤다. 그리고 화구상자를 보자마자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망울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나는 바보같이 왜 우냐고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숙부가 들려준 그대로 화구상자를 자랑했다. 동경의 유명한 문구점에서 구한 가볍고 편리한 화구상자다. 오얏나무인지 하는 나무로 만든 것인데 몇 번을 물에 불리고 말려 나무가 아주 단단해져서 물이 묻어도 터지거나 뒤틀리지 않는다. 손잡이를 가죽으로 만들어 들고 다니기도 좋다. 그는 상자의 걸쇠를 열었다. 그러고는 “아…” 하는 감탄사를 한숨처럼 가늘고 길게 발음했다.
“고마워, 형아.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네.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몰라. 약속할게. 고공에 가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게. 이걸 오얏나무로 만들었다고? 오얏나무 상자.”
그는 ‘오얏 리, 상자 상’이라고 하면서 땅바닥에 이상(李箱)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내가 준 화구상자를 자기 이름으로 삼
아야겠다고 말했다.
“이상, 어때?
그런데 「오감도」가 신문 지면에서 사라졌다. 두어 주가 지나고 나서부터 슬그머니 신문에 작품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시대를 너무도 앞서가던 이 시가 보름 만에 자취를 감췄다. 아무 예고도 없이 연재가 시작된 것처럼 시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이 그대로 연재가 끝나버렸다. 나는 며칠 더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날마다 우고당으로 배달되는 석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뒤늦게야 작품 연재가 그의 뜻과는 다르게 강제로 중단된 것임을 알았다. 구보가 내게 들려준 소식은 미친 짓거리 집어치우라는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신문사 편집국으로 빗발쳤다는 후문이었다.
나는 그를 찾았다. 성격이 여리면서도 속으로는 자존심이 고집처럼 강한 그가 이번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되었다. 다방 제비의 구석 의자에 머리를 감싼 채 쭈그리고 앉아 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형, 나를 보고 미친놈이래.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사람들은 모두 수상쩍은 눈으로 내 시를 보고 있어. ‘연재 불가’라는 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 너는 이미 「오감도」의 시인 이상이잖아? 조선의 문단은 시인 이상을 가졌고, 「오감도」를 가졌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