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3367117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6-04-30
책 소개
책속에서
마커스는 내 주변에서 이 아파트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사이 거기 누워 자고 있다. 우리는 있는 걸로 근근이 버티고 있고 집세는 두 달치쯤 밀렸고 마커스는 수입이 전혀 없다. 나는 주류 가게에서 교대 근무를 구걸하고 있고 찬장에 크래커가 얼마나 남았는지 세고 있다. 우린 지갑조차 없고 마커스를, 그의 혼절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이번에는 헤치고 나올 수 없을 것을 안다, 우리 세계가 산산이 부서졌었던, 엄마가 있던 자리에 빈 사진틀만 남은 지난번처럼은.
“일자리를 찾고 있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왼쪽 귀에서 조잡한 귀걸이가 반짝거린다. “원한다면 네 지원서를 사장한테 넘길 수 있지. 사장은 항상 더 예쁜 여자애들을 찾으니까. (중략) 네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줄 수도 있겠지.” 그는 카운터 뒤에서 펜과 포스트잇을 쥐고 몸을 구부려 받아쓸 준비를 한다. “몇 살이지, 자기야?”
나는 그 호칭에 움찔한다. “열일곱이요.”
그는 몸을 펴고, 살짝 찌푸린 표정이 마침내 얼굴 전체에 번진다. “우린 열여덟 아래는 고용할 수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린 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곳을 향해 몸을 돌린다. 열여덟이 돼 봤자 얻는 건 투표권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투표 따위보다 얻을 게 더 있는 게 분명해졌고 내 생일이 조금 더 빨리 오면 좋겠다.
평소에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밤이 모든 걸 물들이는 방식에는 믿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사후세계나 천국, 그런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고. 그건 그저 우리가 죽음을 좀 더 기꺼이 느끼게 할 따름이고, 나는 사실 애초에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 그저 별들이 줄을 서서 또 다른 세계로 느릿느릿 따라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세계일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곳이 좀 다를 거라 생각한다. 거기선 사람들이 좀 다르게 걷는다든가. 노래로 말을 한다든가. 어쩌면 모두 얼굴이 같거나 얼굴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하늘을 바라볼 시간이 충분할 때면, 나는 내가 운 좋게도 그 무언가를 얼핏 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항상 이 행성에 끌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