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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3509142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25-04-07
책 소개
목차
Ⅰ
꿈에서 시를 쓰다
빠지다
괜찮다
포개어진 세계에서
산수유 꽃그늘 아래
가지가 찢어지다
우린 모두 어딘가에서 왔다
돌아가고 싶은, 돌아갈 수 없는
둥글게 둥글게
안녕, 미자르
소리가 소리를 두드린다
시간 저장소
시간의 얼굴
시간에는 빈틈이 없다
Ⅱ
희망이라는 절망
까치집
이후의 빛
선각여래를 만나 뵙고
겨우 전부
붉은 숲
서울의 밤
우리들의 밤을 위하여
키세스 키세스 키세스
눈게야, 너 어디 갔니?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무지개 너머로
어쩌면 신이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좀비들
Ⅲ
툭, 잎이 지고
예순네 개의 손
꾀꼬리
머리카락이 뭐라카는지
물은 혼자서도 길을 찾아간다
알 수도 있는 사람
푸른 여권
땅끝에서 보낸 날들
로드킬 S/Z
누구시던가?
선인장꽃
봄의 전언
송홧가루
귀소(歸巢)
Ⅳ
분갈이를 하며
꽃 따기
둥근잎유홍초
풀과 벌레
방아쇠를 당기며
왼쪽으로 넘어지다
엔딩 송
내가 누운 곳
방풍나물을 먹으며
그림자 지우기
사랑의 무게
언젠가 우리 다시
비록 먼지가 된다 해도
우수아이아
작가 노트
113 산문시집을 엮으며
저자소개
책속에서
희망이 싸졌다. 십여 년 전부터 공급이 넘치기 시작하더니 가격이 폭락했다. 백화점 명품코너에서 VIP 고객에게만 밀거래하듯 판 적도 있었는데, 이젠 동네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희망을 생산하던 지식 엘리트들의 담합이 깨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방송에 나와 떠드는 자칭 전문가에 의하면 원래 효과가 미미한 것이었는데 드디어 소비자들에게 그 정체가 들통났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우리처럼 평생 희망이란 걸 사본 적 없는 보통 사람들이야 값이 오르든 내리든 상관이 없지만, 나는 어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을 겪었다. 그리스 여행을 다녀온 소평 씨가 선물이라고 준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에 상한 희망이 한 봉지 들어 있었다. 아마도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비행기로 오는 도중 탈이 난 듯했다. 준 이도 몰랐지 싶다. 속이 무르고 색깔이 변했는데, 우리나라 썩은 희망과 비슷해 보였다. 그냥 버려야 하나, 준 이를 생각해 잠시라도 보관해야 하나,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희망이 조금씩 조금씩 절망으로 변질돼 갔다. 세상 썩는 냄새가 고약했다.
― 「희망이라는 절망」
엊그제 밤엔 꿈꾸면서 울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정말로 두 눈에 눈물이 흥건했다. 얼마나 울었던지 이불이 다 젖고 침대가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엉엉 울었던 것 같은데, 잠꼬대 소리를 내진 않았나 보다. 그러니까 그 슬픔은 나만의 비밀로 숨겨도 될 터이지만, 좀 아까운 생각이 들어 공개하는 바이다. 그렇게 슬펐던 이유는, 내가 쓴 시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엉엉 울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울어서 나도 따라 울었다. 아주 슬픈, 딱 여섯 줄짜리 시였다. 첫 행을 읽을 때 사람들이 경직되더니, 두 번째 행을 읽을 때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세 번째 행을 읽자 오열하기 시작했고, 네 번째 행을 읽을 땐 통곡했다. 다섯째 행을 읽었을 땐 산천초목이 부르르 떨었고, 마지막 행에 이르러서는 온 세상이 눈물로 해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잠에서 깨어 그 시구를 아무리 생각해 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겨우 여섯 줄인데, 세상을 뒤집어 놓을 걸작인데,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 분명한데, 발표하기만 하면 노벨상쯤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 그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게 슬퍼서 다시 잠 못 이루고 엉엉 울었다.
― 「꿈에서 시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