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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3612071
· 쪽수 : 295쪽
· 출판일 : 2024-11-25
책 소개
목차
1. 도시락············11
2, SNS············33
3. 박기석············47
4. 해주식당············65
5. 김순이············69
6. 작전············87
7. 독초············107
8. 제안············116
9. 할아버지 꿈 ···········128
10. 베트남····146
11. 정아 ····186
12. 풍비박산····198
13. 변론기일···· 214
14. 고모할머니····227
15. 도시락2···· 255
16. 사고조사 ····278
17. 다시 베트남으로····293
저자소개
책속에서
“여기 보이제? 지반에 물이 많아! 고만 기둥이 모조리 썩었고로.”
의견을 피력하고 다시 굴착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로 흙을 퍼 올렸다.
바로 그때 막 퍼 올려진 흙더미 사이로 공책 크기만 한 무언가, 우혁의 시야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걸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크게 외친다.
“기사님! 여기 흙을 조금만 치워 주세요. 뭔가 있었거든요!”
우혁의 다급한 부탁을 듣고 기사가 굴착기 버킷을 수평으로 움직여 쌓인 흙을 옆으로 밀치자, 검은 비닐에 쌓인 것이 드러났다. 우혁이 기사에게 손짓해 일시 정지를 시키고 얼른 흙더미에 들어가 비닐봉지를 주웠다. 그리고 기사의 시선을 등지고 비닐을 뜯으니, 양은(노란 알루미늄) 도시락이었다.
도시락에 밀봉 상태로 아주 견고한 듯 웬만해선 잘 열리지 않아 우혁이 세게 힘주어 겨우 뚜껑을 열자, 그 안에 여러 장의 문서들과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는 실로 처음 보는 기록물로 조상의 흔적 같았다.
‘그동안 꼭꼭 숨겨져 있었던 우리 집안과 관련 있을까?’
그렇게 직감한 그는 기사에게 들키지 않으려 잽싸게 도시락 뚜껑을 닫아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다가와 추궁하듯 묻는다.
“머꼬, 와이리 놀라노! 머 금덩이라도 들었어? 맞나?”
이걸 찾는데 도와줬으니 좋은 것이면 나누어 갖자는 그런 표정이었다.
“아니요. 오래된 냄새만 진동하네요. 이 집에서 쓰던 것 같아 가져가요. 혹 쓰던 물건들이 더 나오면 한구석에 좀 모아 주세요.”
잔뜩 긴장한 모습을 감추려 기사와 눈도 못 맞추고 말했다.
우혁은 도시락 속 내용물이 궁금해 당장 확인하고자 서둘러 공사 기간에 지내는 원룸에 도착했다.
우혁은 떨리는 손으로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사진과 등기필증, 인감증명과 도장이 들어있었다.
‘왜 이것들이 도시락에 담겨 내 집 마당에 묻혀있었을까? 도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
우혁은 도시락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신과 무관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는지 우혁의 눈이 빛났다. 우연히 도시락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운명이 그를 어딘가로 끌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혁이 흑백사진을 보고 가족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넷이 촬영한 컬러사진에서 가운데 둘은 연인처럼 보이고
바깥쪽 둘은 서먹한 남녀 사이로 보였다.
스캔하듯 세밀하게 들여다보니 오른쪽 여성의 얼굴은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비주얼이었다.
이 여성을 실마리로 나머지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구이며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 연결고리를 찾을 거란 희망에 우혁은 설레기 시작했다.
땅 주인은 누구일까? 솔직히 땅 주인과 자신이 어떤 관계인지 여부가 최고로 궁금했다.
등기필증에 기록은 박인환, 1972년, 파주 월롱면 일대의 대지 8천 평을 매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박인환.
아니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그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한 주간을 바쁘게 보내고 우혁은 토요일 아침에 정아를 만나 미추홀 교회로 향했다. 그는 국화꽃을 준비했다. 정아는 이를 고진영 목사와 상담했는데 예배를 드리자고 했다며 친히 와서 반겨 주었다. 고 목사도 이영희의 장례에 관해 정아에게 처음 들었고 교회에 수소문해 어머니를 아는 이와 함께 왔다며 윤 권사를 소개했다. 당시 이석구 목사를 고발했던 교인들은 죄책감 때문에 또 이 목사를 지키지 못했던 교인들은 자책감으로 더는 미추홀 교회를 섬길 면목이 없어 대부분 교회를 등지거나 떠나서 이영희 장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윤 권사는 우혁이를 유아 때 봤는데 몰라보게 늠름해졌다며 칭찬했다. 그리고 소나무로 안내했다. 소나무를 바라보다가 우혁은 눈을 감고 어머니를 상상해 보았다.
‘눈앞에서 부모님이 총살당했고 오빠는 전투에서 전사해 혼자가 되셨다. 베트남에서 남편까지 잃었다. 그래서 다시 혼자가 되셨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었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했을까. 어린 나를 두고 눈을 감을 만큼 고된 삶! 그래도 육체의 한 줌은 가장 뼈아픈 현장이며 사랑했던 교회에 안식 되었으니, 영혼은 위로받으셨을까.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945년 냉전체제로 인해 분단되었다. 베트남 전쟁도 남과 북 사이에 이념 전쟁이었다. 당시 한국군을 파병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이 철수해 베트남으로 병력이동을 우려했다. 사실 자국의 안보도 지키지 못하면서 주한미군을 붙잡아 두고자 미국이 한국전쟁을 도와준 은혜를 갚는 보은의 명분을 삼아 1965년 10월 파병을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참전했으나 공산주의는 이미 베트남 전체로 확산되고 있었다. 결국,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한 이유는 부패하고 민심을 위반한 남베트남 정부를 계속 지원할 명분이 사라졌고 민간인 학살로 인한 세계 여론의 비판으로 미국을 늪에 빠뜨렸다. 최소한 미군 철수가 결정되었을 때 우리나라도 가능한 한 빨리 한국군과 민간인 철수를 서둘러야 했다. 한국군은 막바지에 철수했기 때문에 철수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다. 사업 인력도 베트남에 일과 재산을 남겨둔 상황에 쉽게 떠날 수 없었다.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5천여 명이 전사했고 살아서 고국에 돌아와서는 부상이나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특수는 한국경제 도약에 중요한 보탬이 되었다. 1965년 파병 이후 연평균 9%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한국의 수출 물량이 늘어났다. 베트남에서도 갖가지 공사시공에 참여하거나 용역과 무역 등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있었다. 전쟁특수가 한국의 산업구조를 바꿔 놓았고 한국의 10대 재벌 순위가 바뀌었으니 참여했던 기업들은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매년 1만 명이 넘는 기술자와 근로자들이 베트남에서 활동했다. 파월 기술자의 소득이 장관 월급보다 더 많다는 소문에 일 년만 일하면 한밑천은 거뜬히 마련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하지만 파월 근로자들도 생사를 넘나들었다. 항시 전투가 있으니, 희생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