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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31815832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9-09-20
목차
1부
추억은 행복한 나를 만나는 창
1. 추억,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행복
2. 봄, 그 아름다움의 가치
3. 부모님 일손을 돕던 나의 ‘어린이날’
4. 비 오는 날의 행복
5. 소중했던 ‘음매 소’와의 추억
6. 한여름의 축복, 집 앞 개울 수영장
7. 삶의 활력 에너지, 여행의 추억
2부
소중한 삶을 건강하게 일구는 힘
1. 향기의 매력
2.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인생
3. 미래를 일구는 뒷심의 힘
4. 생산성을 높이는 사십 대
5. 스트레스 관리의 지혜
6. 나를 위한 사색의 시간
7. 소중한 라이벌이 있어 다행
8. 좋은 이웃을 바라는 마음
9. ‘발표 기술’의 노하우
10. ‘유익한 강의’의 조건
11. 말에 관한 통찰
12. 삶과 노래
13. 긍정적인 태도의 중요성
14. 범사에 감사하는 삶
15. 꿈과 현실의 차이
3부
소중한 가족을 결속 시키는 사랑
1. 행복의 척도인 아내의 미소
2. 아내 잔소리의 핵심
3. 정으로 깊어진 사랑
4. 아내의 소중함을 지키는 원칙
5.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아버지의 영향력
6. 어려운 자녀교육
7. 세대를 연결하는 아버지 역할
8. 교육에 관한 부모의 역할
9. 유산에 대한 생각
4부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향해가는 길
1. 사람됨의 품격
2. 성숙해 가는 과정
3. 달란트 활용
4. 선택의 문제
5. 청지기 자세
6. 마음 관리
7. 일상의 지도
8. 아이와 같은 마음
9. 갈증 해소의 열쇠
10. 행복한 인생 비결
11. 인생 여정 갑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추억,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행복
이렇다 할 유년시절의 사진 한 장 없어도 눈을 감으면 이야기가 흐르고 어렴풋한 이미지들이 톡톡 떠오르는 것이 추억이다.
평상시 잊고 살다가 작은 자극이라도 받게되면 잔잔한 강가에 물고기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듯 삶에 소중했던 순간이 추억의 이름으로 재생된다.
특별히 유년시절의 추억은 잊혀지지 않는 잔잔한 행복이다.
많이 배고프던 시절 아카시아 꽃은 ‘하늘의 만나’였다. 녹음이 시작되는 봄에 눈송이처럼 소담한 아카시아 꽃은 귀한 간식이었다. 몇 해 전 국도를 지나다가 도로변에 활짝 핀 아카시아를 보고 설레는 마음에 차를 멈추고 향기를 맡았다. 너무 좋았다. 꽃잎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예전의 맛이 아니었다. 도저히 삼키기 어려웠다. 입안에 역겨운 맛이 감돌아 물로 여러 번 헹구었다.
어린 시절 농촌의 가을은 먹거리가 풍성했다. 밭에서 무를 뽑아 흙을 툭툭 털어내 껍질을 벗겨낸 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무맛을 맛보며 허기를 채웠다.
숲속에는 무보다 맛난 간식이 가득했다. 다래, 머루, 으름…. 이 중 으름은 덩굴식물로 나무를 감아 타고 자라기 때문에 키보다 높은 공중에서 열매가 열린다. 잘 익은 으름은 껍질이 활짝 열려 투명한 하얀 속살을 보는 맛도 일품이었다. 으름은 씨가 너무 많아서 입안에 한참을 머금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씨앗 만을 골라서 뱉어낼 수 있다.
방과 후 집에 오는 길은 알밤을 주워 까먹는 즐거운 간식 시간이었다. 밤송이가 활짝 벌어지면 알밤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줍는 것으로 부족해 곧 떨어질 듯한 알밤을 향해 돌을 던져 떨어뜨렸다. 가을 동안 수북하게 모아둔 알밤은 추운 겨울 화롯가에서 함께 구워 먹던 온정의 메뉴였다.
아버지께서는 집 앞 대추나무에 병충해가 들지 않도록 신경쓰셨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매일 붉은 대추를 골라 따먹었다. 다음날도 어제만큼 붉은 대추가 보였다. 며칠 더 시간이 지나 온통 붉은 대추로 가득해지면 아버지께서는 대추를 툴툴 털어 햇볕에 정성껏 말리셨다. 이듬해 대추가 열릴 때까지 제사상에 올리려 준비하신 것이다.
옥수수 수염이 마를 때까지 수확하지 못한 옥수수는 한꺼번에 수확해 옥수수 알갱이의 수분이 증발할 때까지 가을 햇볕에 바짝 말린다. 이것은 ‘강냉이’로 뻥튀기 기계에서 발사되면 고소한 튀밥이 된다. 큰 비닐에 가득 담아 겨우내 먹었던 귀한 간식이었다. 튀밥을 먹고 나면 껍질 때문에 입안이 깔끄러웠다. 그렇지만 과자가 귀했던 시절, 튀밥은 소중한 간식이었다.
가을에 추수한 검정콩을 간장에 조려낸 콩자반보다 서리태가 더 좋았다. 검정콩에 열을 가하면 콩이 탁탁 튀며 껍질이 벗겨진다. 이쯤 되면 다 익은 것이다. 한 움큼 쥐고 양손으로 비비면 껍질이 벗겨진다. 이 콩을 입안에 넣고 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또 구운 콩을 곱게 빻아 인절미에 묻혀 먹었던 그 맛이 그리우면 어머니가 떠오른다.
날씨가 추워지면 어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홍두깨로 치대서 칼국수 면을 만드셨다. 씨알이 굵은 감자를 깍둑썰기해 면과 함께 끓이면 속을 따듯하게 해주는 구수한 어머니표 칼국수를 어릴 적에 너무 자주 먹어서 한동안 입에 대지 않던 음식이었다. 그래도 추워지면 생각나는 가족 음식(Soul food) 중 하나가 바로 칼국수다. 요즘은 어릴 적 먹던 깊은 손칼국수 맛을 만나기 쉽지 않아 조금 아쉽다.
추수가 끝난 논은 아이들을 위한 귀한 놀이터가 되었다. 시골에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에 황금 들판을 볼 때마다 추수가 빨리 시작되기를 바라곤 했다.
축구와 자치기도 하고 비료 부대를 접어 만든 글로브로 야구도 했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미리 물을 대놓은 논에는 얼음이 얼어 아이스 링크가 되었다. 썰매를 타고 놀기도 했고 아이스 하키도 했다. 산에서 적당한 모양의 나뭇가지를 베어와 다듬고 불에 구워 힘을 주어 눌러주면 ㄱ 모양의 스틱이 되었다. 이것을 들고 얼음 위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하키를 했던 추억이 있다. 얼음 위에서 고무 털신을 신고 뛰다 보면 자주 넘어진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요리조리 퍽(Puck)을 몰고 가서 골을 넣으며 행복했다. 헬멧 등 안전장비는 없었지만 다치지 않고 재미있게 놀았다.
날씨가 매섭게 추워질수록 강 가장자리의 얼음은 두터워진다. 한 번은 얼음 뗏목을 타기 위해서 동네 형들 틈에 합류했다. 얼음 뗏목을 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며 제일 먼저 할 일은 안전한 뗏목 크기를 정하는 것이다. 이때 몇 사람이 탈지에 따라 얼음 크기를 정하는데 크기가 작으면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두 시간 정도 도끼로 내리쳐 얼음을 부수어야 얼어붙은 강의 가장자리로부터 뗏목 크기의 얼음덩어리를 분리할 수 있다. 완전히 분리시키면 커다란 얼음덩어리는 뗏목처럼 움직였다. 탑승자들은 균형을 잡고 서서 긴 대나무로 방향을 조절하며 떠다녔다. ‘강에 빠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가져다주는 긴장감은 놀이동산의 웬만한 놀이기구보다 훨씬 더 스릴 넘쳤던 한 번의 경험이었다.
밤새 함박눈이 내린 날 아침은 아주 신이 났다. 볏짚을 가득 담은 비료 포대를 들고 소복이 쌓인 눈을 헤쳐가며 언덕 위를 오른다. 정상에 도착한 후 비료 포대를 타고 내려오면서 길을 만들었다. 처음 내려가는 길은 속도가 빠르지 않아 기울기가 완만한 구간에서는 두 발을 움직여 길을 내야 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정말 빠르고 재미있다. 길이 난 곳을 따라 쌩 달려 내려오는 재미에 발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추위를 견디며 놀았다.
겨울밤 쥐불놀이는 군불을 지피고 남은 불씨의 재활용이다. 정월 대보름까지 한참 남았지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쥐불놀이하려고 깡통을 들고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깡통에 못 구멍을 많이 뚫고 상단 양쪽에 철사를 꾀어서 손잡이를 만든다. 집을 나서기 전 부엌 아궁이에 남아있는 불씨와 마른 나뭇가지를 총총히 꺾어 깡통 안에 넣고 둑에 모여 철사 끝을 쥐고 깡통을 돌린다. 그러면 빙빙 회전하는 깡통 안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태운 불씨가 활활 타오르며 장관을 이룬다.
깡통을 한참 돌리다가 나무가 다 타서 불이 작아지면 개울가를 향하여 힘차게 돌리다가 공중으로 날린다. 그러면 불씨가 공중으로 퍼져 화려한 불꽃 쇼가 펼쳐진다. 그렇게 매일 밤 쥐불놀이를 하고는 깡통을 챙겨서 집으로 온다. 쥐불놀이는 정월 대보름 절정을 이루고 대보름이 지나면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쥐불놀이를 하지 않았다.
서편 언덕 위로 노을이 질 때까지 아버지께서 들어오지 않으면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시키셨다. 어쩌다 한 번 있는 특별한 심부름이었다. 아랫마을 구멍가게에 도착하면 예상한 대로 많이 취하신 아버지가 계셨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을 함께 걸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는 어려서 아버지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다시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다. 나를 많이 사랑해주신 아버지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건조한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