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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3749043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24-07-1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친애하는 나의 ‘미친 여자’들에게 008
1부 세상과 불화하는 여자
왕따였던 나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 영화 <우리들> 속 선이와 지아 016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 영화 <다가오는 것들> 속 나탈리 024
그게 나예요, 당신은요? /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속 티파니 034
자기 소개하는 게 싫었던 진짜 이유 / 영화 <더 브론즈> 속 호프 044
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계 /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속 리사 054
운동을 했더니 인생이 제대로 꼬였다 / 영화 <아워바디> 속 자영 064
더는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 / 영화 <브루클린> 속 에일리스 074
삶의 빈틈을 견디는 일 /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속 마고 082
아무래도 거슬리는 여자에 대하여 / 영화 <스위밍풀> 속 사라 090
2부 웃지 않는 여자
퇴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너에게 / 드라마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 속 히가시야마 106
두 여성 형사의 ‘애쓰는 삶’이 구한 것 /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속 그레이스와 캐런 114
술에 취한 여자는 죄가 없다 /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속 캐시 124
돈으로는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 영화 <종이달> 속 리카 134
대체 ‘팔자 좋은 여자’가 어딨단 말인가 / 영화 <십개월의 미래> 속 미래 144
‘애매한 나쁜 년’ 그만하겠습니다 / 영화 <미스 슬로운> 속 슬로운 152
제가 진짜 미친년이죠 / 영화 <죽여주는 여자> 속 소영 162
3부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
‘오은영 매직’이 우려스러운 이유 / 영화 <로마> 속 클레오 176
‘자격 없는 엄마’를 위한 변명 /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무니와 핼리 186
죄 없는 자, 곽미향에게 돌을 던져라 / 드라마 <SKY 캐슬> 속 한서진 194
엄마가 숙자가 되는 순간 / 영화 <벌새> 속 은희와 숙자 206
울면서 가출한 엄마, 바로 나였다 / 영화 <레이디 버드> 속 크리스틴과 매리언 214
완벽한 할머니라는 환상 / 드라마 <렛다운> 속 오드리 222
그 여름, 살벌했던 엄마의 얼굴 / 영화 <걸어도 걸어도> 속 도시코 232
이상하고 모순적인 엄마가 될 거야 / 영화 <로스트 도터> 속 레다 244
4부 조금 다른 길에 선 여자
부부는 왜 결혼 여섯 시간 만에 헤어졌을까 / 영화 <체실 비치에서> 속 플로렌스 258
남편 몰래 야한 영화 보다 생긴 일 /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속 아나스타샤 268
결혼에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 필요하다 / 영화 <결혼 이야기> 속 니콜 278
‘라떼’ 타령하는 어른이 되기 싫다면 /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 속 레누 288
남편이 공유인데 뭐가 불만이냐고? /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지영 296
그럼에도 아기를 갖고 싶다면 / 영화 <컨택트> 속 루이스 306
저 증오는 나와 무관한가 / 영화 <쓰리 빌보드> 속 밀드레드 316
더러운 강도 아름다울 수 있다 / 영화 <아사코> 속 아사코 328
에필로그 나라는 우주 안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을 떠올렸다
추천사
참고도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최근 나도 자영처럼 오랫동안 몰두하고 공들였던 일을 그만뒀다. 매일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딱히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 때가 있다.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 또 다른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 같다는 믿음이 없어지자 달릴 동력도 점점 사라졌다. 여태껏 그래왔듯 나를 쥐어짜고 몰아붙이면 계속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자영은 야근을 하고 들어와서도 뛰고 출근하기 전에도 뛴다. 그렇게 건강해진 몸으로 계속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내린다. 운동을 통해 삶의 위기를 극복할 줄 알았는데 극복은커녕 오히려 구렁텅이로 더 빠져든다. ‘현실 감각이 없는’ 자영의 기이한 행동을 보며 뒤통수가 얼얼하면서도 동시에 통쾌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참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세상은 속삭인다. 모든 것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정말 그런가?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자영은 8년 동안 책상 앞에서 혼자만의 달리기를 해왔다. 모두가 열심히 달리는데 모두가 희망을 발견하기 힘든 현실이 온전히 개인만의 책임일까.
- 〈운동을 했더니 삶이 제대로 꼬였다 〉 중
나의 분노와 무관하게 소영의 얼굴은 죽음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덤덤해진다. 앞서 소영은 재호에게 젖도 안 뗀 아이를 입양 보낸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진짜 나쁜 년"이라고 "평생을 빌고 빌어도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말한 적 있다. 자신은 지옥에 갈 거라고. 아이를 입양 보낸 순간부터 소영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죽을 수 있는 선택지조차 자신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영이기에 삶 대신 죽음을 택한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일만큼은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영을 "꽃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돈 100만 원에 사람을 죽인 할머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세상의 언어로는 소영의 선택을 설명할 수 없다. 아래 소영의 대사처럼 말이다.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그냥 다들 거죽만 보고 대충 지껄이는 거지."
- 〈윤여정에게 큰 빚을 졌다〉 중
엄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꽤 오랫동안 엄마의 말을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의심하고 실망하고 체념하는 세월을 거치며 나도 엄마처럼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후에도 엄마의 사랑을 바라고 원망하는 마음은 계속 됐다. 나의 못난 모습이 모두 엄마 때문인 것 같고 자꾸만 엄마 탓을 하고 싶었다.
그 갈빗집이 시작이었을까.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언젠가부터 엄마에 대한 애증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엄마도 엄마의 "한계 안에서 나랑 사랑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엄마가 때를 밀어주면서 했던 말이 변명이 아니라 엄마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사과였다. 엄마도 나처럼 엄마의 엄마를 사랑하고 미워했을까. 외롭고 힘들지 않았을까. 여자 최양숙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엄마가 아닌 엄마가 궁금해졌다.
- 〈그 여름, 살벌했던 엄마의 얼굴 〉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