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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3913253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5-09-30
목차
04 작가의 말
1부 이야기를 담다
12 울산바위
13 산국화 향기
18 화장실에서 세 번 웃다
23 도치 사랑
26 쥐 이야기
28 옹심이는 사랑이
32 뱀 세 마리가
35 웃음 때문에
39 세컨 하우스
44 나의 자동차
48 호랑이해를 맞이하며
52 횡단보도에서 생긴 일
57 두 번째 애마를 잃고 나서
2부 사랑을 말하다
62 1번 버스가 지나갑니다
63 어느 가을의 신혼 이야기
68 사랑은 두 귀
74 편지
80 내가 사랑한 당신은
87 동화 같은 우리 집
92 남편의 편지
95 여보, 당신
99 슬기 아빠에게
104 30분 결혼식
108 향기를 추억하다
3부 그리움은 남다
114 허난설헌 생가에서
115 나의 「소나기」
121 어머니와 아네모네
125 어떤 선물
130 이웃사촌 이 권사님
135 냉이나물
139 11월에 찾아온 친구
144 건망증
148 은찬이와 머리핀
152 그 여인
156 생각나는 제자
160 딸 같은 아들
4부 느낌표를 찍다
166 봄비
167 인제 자작나무 숲을 다녀오다
171 전주 여행과 국밥집의 나무 도마
175 마등령을 넘다
180 이스라엘을 다녀오다
186 친구와 초계리 고택
190 간판 없는 대중목욕탕의 매력
193 비 오는 날
197 새벽 가로수 길에서
201 첫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205 아름다운 봄을 음미하며
209 화진포 사랑
215 축하의 글
저자소개
책속에서
[에세이]
내가 사랑한 당신은
… (생략) …
여보!
기다리는 13시간이 너무 길군요.
호수에 어느새 불빛이 어리고 별빛 같은 차량 불빛이 물같이 흐르네요. 빨리 와요. 보고 싶어요. 얼른 당신 손목을 만져보고 싶고 당신 음성을 듣고 싶어요. 당신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내 꼭 일어나서 하늘이 준 우리의 인연을 다 살고 싶어요. 당신이 자꾸만 기다려지는군요. 이 시내버스를 타고 오려나? 다음 버스에 내리려나. 멀리 학 목이 되어 창밖을 내다봅니다. 누워 있는 모습보다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섯 시부터 여섯 시, 일곱 시 이제 여덟 시가 되면 또 앉아 보렵니다. 네 번이 되겠지요.
하루 종일 지나간 우리들의 결혼생활 10년을 돌아보면서 울며 후회하면서 당신께 사죄하며 지냈습니다. 당신의 정성으로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다고 계획하면서 막달라 마리아 같은 당신의 마음을 기다리면서 점점 예쁘게 곱게 느껴지는 당신을 느끼면서 보냈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오래 참아야 하는군요. 나 혼자 오래오래 참으면서 곱게 기다리겠습니다. 당신도 내 생각하셨겠지요? 어떻게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눈물입니다. 온종일 울면서 기다립니다. 문밖의 인기척에 솔깃 당신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사랑해요. 여보! 아주 너무 이렇게 많이, 아주 많이요.
편지를 읽은 건 출근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였다. 남편은 매번 편지를 써서 힘든 나를 위로하였고 자신도 위로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외갓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했고 시내버스로 고성과 속초를 오가며 몸은 늘 시간과 주어진 일에 쫓기며 살았다.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면서도 연약한 믿음은 흔들리는 배와 같았고 그 마음은 평안이 없이 불안했다.
처음 병을 진단받고 나서 일 년이 되는 날 남편은 떠나갔다. 학급 어머니들이 만든 하얀 미농지 꽃을 단 운구차는 겨울방학 중인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눈물의 송별 인사를 받으며 정든 학교를 떠났다. 남편이 교정을 떠나는 순간 열정을 다해 지도했던 어머니 합창단의 〈그리운 금강산〉과 어린이들이 불렀던 크시코스의 〈우편마차〉가 들리는 듯하고 피아노를 치던 남편의 모습과 지휘를 하던 모습도 함께 겹쳐 보이는 듯했다.
그는 능력 많고 성실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던 동기생 교사였고 착실하며 자상한 모범생 남편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보다 더 많이 함께 놀아 주고 돌봐 주던 좋은 아빠였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병실에서 외롭지 않게 그 곁을 지켜주었더라면, 나도 사랑과 힘을 얻게 하는 편지를 써주어 읽으며 기뻐하게 했더라면. 남편이 떠난 후에 남는 후회스러움이었다.
두 아들은 이제 생전의 아빠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내 나이도 일흔이 넘었다. 아직도 남편의 편지를 읽다 보면 눈시울이 젖는다. 병실에서 남편이 나를 기다리던 한 시간 또 한 시간처럼 난 그 한 시간 같은 십 년을 보내고 또 거듭거듭 보내고 있다. 나에게 큰 선물이 된 시집과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말이다.
‘사랑해요. 여보! 아주 너무 이렇게 많이, 아주 많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