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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은이), 서수지 (옮긴이)
사람과나무사이
1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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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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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94096559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6-03-25

책 소개

‘메디치 가문 지하 금융의 도움이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부터 ‘회화가 가진 강력한 프레젠테이션 기능을 간파하고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한 나폴레옹 이야기’ 등 자본주의를 태동시킨 8편의 욕망의 명화 이야기를 다룬다.

목차

서문_ 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명화는 어떻게 부를 창조하고 역사를 발전시켰나?

제1장_ 빵집 광고로 활용된 페르메이르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

·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왜 16세기 유럽 예술가들의 밥줄을 끊어놓았나
· ‘우상 숭배’라는 죄목으로 교회미술을 강하게 탄압한 네덜란드에서 근대 시민 회화가 화려하게 꽃피다
· 네덜란드 미술이 종교개혁으로 인한 ‘미술 파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두 가지 비결
· 미술이 교회와 왕실의 지배체제 유지를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되던 시대
· 17세기 네덜란드를 세계 최강 미술 대국으로 만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기성품 전시 판매’ 전략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왜 정물화와 풍경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았을까?
· 가정을 돌보는 평범한 여인이 페르메이르 그림의 당당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페르메이르 집안의 3년 치 빵값이었다고?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실제 모델이 페르메이르의 연인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 독특한 개성과 참신한 소재로 ‘작품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 피카소가 끊임없이 파격적인 기법을 탐구하고 창조한 이유는 사진의 등장으로 화가의 밥줄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는데?!

제2장_ 천재 중의 천재 다빈치가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모나리자>와 달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
· 예술가 후원자의 다섯 가지 유형
· 인류 예술사 최고의 천재 다빈치가 요즘 취업 준비생처럼 자기소개서를 썼다고?
· <최후의 만찬> 제작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불만을 제기한 수도원장을 유다의 모델로 그리려 했던 다빈치
·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를 다빈치가 그리면 4,000년이 걸린다?
· 불후의 명작으로 남은 <최후의 만찬>이 당대에는 실패한 회화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 다빈치는 왜 자신의 만년 방랑길의 소중한 길동무 <모나리자>를 캔버스가 아닌 목판에 그렸을까?
· 미모의 제자 살라이와 다빈치 유언장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다빈치의 3년 치 연봉에 달하는 거액을 받고 프랑스 왕실에 팔린 〈모나리자〉
· 움직일 수 없는 그림을 움직이게 할 수 있어야 돈도 움직인다?

제3장_ 렘브란트는 왜 자기 그림을 모사하는 ‘가짜 그림’을 양산했나

·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왜 다른 나라에는 없는 ‘집단 초상화’가 경쟁적으로 그려졌을까?
· 16~17세기 네덜란드에 빵집, 푸줏간보다 화가 수가 훨씬 많았다는데?
· 렘브란트가 거액의 돈을 투자한 아윌렌부르흐 공방이 모작과 위조로 돈을 버는 ‘가짜 그림 생산 공장’이었다?
· 자신의 공방에서 자신의 작품을 모작한 상품을 양산한 렘브란트
· 신인 화가였던 렘브란트가 외과의사 조합의 집단 초상화 의뢰를 받은 데에 아윌렌부르흐의 정치적 영향력이 한몫했다는 의혹은 사실일까?
· 렘브란트의 최고 성공작으로 손꼽히는 〈야경〉은 어떻게 탄생했나
· 골프 회원권보다 저렴했던 ‘더치페이’ 그림값
· ‘경제적 성공’이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졌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경제적으로 파산한 렘브란트
· 만년에 불운이 끊이지 않았던 대화가의 일생
· 렘브란트는 왜 ‘렘브란트풍’ 그림을 양산했을까?
· 오늘날 선풍적 인기를 끄는 휴대전화 자화상 사진 ‘셀피’의 원류를 17세기 네덜란드 자화상, 특히 렘브란트 자화상에서 찾는 이유

제4장_ 메디치 가문 지하 금융의 도움이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없었다?

· 메디치 은행을 유럽 최고 은행으로 키운 뛰어난 경영자 코시모 데 메디치가 교회와 예술 후원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숨은 이유
· 기독교는 왜 그토록 강력하게 이자를 금지했나
· 예술 후원에만 몰두하며 가문의 재산을 축내고 메디치 은행을 경영 위기 상황으로 내몰았던 ‘위대한 로렌초’
· ‘이자를 이자로 보이지 않게 하는 공작’, 환전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메디치 가문
· ‘복식부기’가 다른 때 다른 나라 아닌 12세기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이유
· 지하 금융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던 메디치 가문의 기상천외한 외환 트릭
· 메디치가의 금융업은 왜 로마 교황청과 교회 지도자들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을까?
· 로마 교황청을 구워삶아 ‘교황청의 금고지기’가 된 메디치 가문
· ‘위대한 로렌초’를 야박하게 평가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의 조부 코시모의 정치적 수완과 경영자로서의 재능을 칭찬한 이유
· 당대에 그림물감 값보다도 저렴했던 보티첼리의 그림값

제5장_ ‘신의 길드’와 ‘왕의 아카데미’가 날카롭게 대립하던 시대

· 17세기 프랑스 왕실 미술에 학문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촉매제 역할을 한 프랑스 아카데미
· 루이 14세는 왜 프랑스 아카데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까?
· 교황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던 미술품이 왕권의 권위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다
· ‘일하는 사람’인 노동자가 아닌 ‘일을 시키는 사람’인 스승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조합, 길드
· 미켈란젤로가 어렵게 교황의 허가를 얻어 석공 길드를 탈퇴한 까닭
· 원조 길드는 왜 왕립 아카데미에서 맞아들인 길드 탈퇴 화공과의 밥그릇 싸움에서 밀려났나
· ‘신의 길드’와 ‘왕의 아카데미’가 날카롭게 대립하던 시대
· 다빈치의 해부도가 책으로 만들어져 대중에 공개되었다면 ‘해부학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라는데?
· 길드 측 지도자에게 강의를 의무화하는 꼼수로 길드를 괴롭히고 길들이려 한 왕립 아카데미

제6장_ 미술의 ‘프레젠테이션 기능’을 영리하게 활용한 인물, 나폴레옹

· 히틀러를 거쳐 현대 광고 기법으로 이어진 나폴레옹의 이미지 전략
·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베토벤이 그의 황제 즉위 소식을 듣고 자신이 악보에 적어 놓은 헌사를 찢어버린 이유
· 나폴레옹은 왜 자신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주려는 교황의 손에서 왕관을 낚아채듯 받아 직접 머리에 얹었을까?
· ‘상징 이미지 조작’의 끝판왕,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 성스러운 정면 얼굴, 기념비적인 옆얼굴, 자연인으로서의 비스듬한 얼굴
· 다비드는 왜 황제 나폴레옹을 그린 두 그림 <나폴레옹 1세 대관식>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각도를 다르게 설정했을까?
· 국민 행복을 위해 분투하는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데 성공한 다비드의 그림 <튀일리 궁 서재의 나폴레옹>
· 나폴레옹의 야만적인 유물 약탈에 의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루브르 미술관
· 미술을 총동원한 나폴레옹의 효과적인 이미지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든 ‘포도주세 부활 정책’

제7장_ 폴 뒤랑뤼엘은 어떻게 ‘잡동사니’ 취급받던 인상주의 회화에 가치를 불어넣었나

· 폴 뒤랑뤼엘이 인상주의 회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두 가지 비밀 무기, ‘카브리올 레그’와 ‘금테 액자’
· 폴 뒤랑뤼엘은 왜 루이 15세 시대의 궁정 양식을 인상주의 회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채택했을까?
· 폴 뒤랑뤼엘이 ‘작은 미술관’처럼 꾸민 자기 집을 대중에 공개한 숨은 이유
· 인상주의 화가들은 왜 폴 뒤랑뤼엘의 마케팅 전략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반대했을까?
· 고객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최고의 진정제, ‘금테 액자’
· 귀족 취미와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귀족 기분’을 느끼게 함으로써 판촉 효과를 극대화하는 마법 같은 마케팅 전략
· ‘전 세계의 돈줄’ 미국인 부호들의 ‘귀족 콤플렉스’를 절묘하게 공략하여 인상주의 회화를 최고가 상품으로 둔갑시킨 폴 뒤랑뤼엘
· 파리 미술품 가격을 치솟게 만든 미국인 수집상들의 사재기 열풍
· 인상주의 거품 시대의 막을 열어젖힌 ‘미국 가격’

제8장_ ‘비평을 통한 브랜드화’가 예술의 가치를 좌우하던 시대

· 비평가의 펜대가 움직이는 대로 판매가가 널뛰던 19세기 프랑스 미술 시장
·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지평을 새롭게 연 인물, 델핀 드 지라르댕
· 미술상 폴 뒤랑뤼엘이 직접 잡지를 발간한 이유
· “이제 비평은 비평가를 먹여 살릴 뿐이다”
· 소설 『작품』을 통해 ‘비평가의 밥벌이 처세술’을 신랄하게 파헤친 작가, 에밀 졸라
· 폴 뒤랑뤼엘은 왜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아낌없이 비용을 쏟아부었나
· ‘대중의 상품 지식 부족’이 19세기 유럽에서 비평가의 가치와 영향력을 극대화시킨 가장 큰 이유였다?
· 기성 제품 판매 전략에서 ‘비평을 통한 브랜드화’가 필수 요소일 수밖에 없는 까닭
· 폴 뒤랑뤼엘은 ‘인상주의의 발견자’인가, ‘인상주의의 발명자’ 혹은 ‘날조자’인가?

후기_ 인간의 욕망은 미술사와 세계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저자소개

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2년생. 다마미술대학교 교수이자 판화가. 1992년 간행한 『별책 다카라지마 회화 읽는 법(別冊宝島 絵画の読み方)』, 『명화 수수께끼 풀이(名画の謎解き)』로 열풍을 일으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다수의 미술서와 미술 프로그램 제작・기획에 참여했으며, UN 지구 서밋과 아이치 만국박람회 기획에도 참여했다. 지은 책에 『피카소는 정말로 대단한가?(ピカソは本当に偉いのか?)』, 『명화의 암호(名画の暗号)』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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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카 후미히코의 다른 책 >
서수지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일본어에 빠져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를 삶의 모토로, 더 많은 책을 읽고 알리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고 옮기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대단한 의학》《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 《과학잡학사전 통조림》《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초등 과학 실험 대백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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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교회와 왕실이라는 대형 발주처를 잃은 네덜란드 회화시장은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포기해야 했다. 즉 이전에는 어딘가에서 주문이 들어온 이후에 제작에 들어갔다면, 이제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성품 전시 판매’라는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했다. 한데, 이 궁여지책의 전략이 멋지게 먹혀들어 과거의 규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화가가 주문받지도 않은 작품을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다. 그 결과 국토 면적이 남한의 약 40퍼센트, 한반도의 20퍼센트도 채 안 되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에서 당시에 그려진 작품 수는 총 600만~650만 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유형으로 자리 잡은 ‘기성 제품 전시 판매’라는 미술 비즈니스 모델은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상품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민이라는 새로운 고객층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려면 그때까지 교회와 왕실의 프레젠테이션 도구로 활용되던 미술품이 시민의 일상생활 공간을 장식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콘셉트의 상품으로 변신해야 했다.
과거에도 미술 공방이 부업 삼아 미리 제작해놓은 작품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재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처럼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상은 전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으로 판로가 막혀버렸다. 그런 터라 작품을 판매하는 측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시민 고객의 안정적인 수요를 예측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종교성을 배제한 작품을 절박한 심정으로 개발해야 하는 과제에 맞닥뜨린 셈이었다.
이렇게 ‘정물화’와 ‘풍경화’가 독립 장르로서 새롭게 탄생했다. 과거에 조연에 지나지 않았던 일상 소재가 당당히 미술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졌다.

― 본문 「17세기 네덜란드를 세계 최강 미술 대국으로 만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기성품 전시 판매’ 전략」 중에서


프레스코는 ‘작업 속도’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간에 쫓겨 섬세한 터치로 꼼꼼하게 그릴 수 없다 보니 사실상 정밀 묘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를 화집에서 보면 생동감이 넘치지만 아주 가까이서 보면 놀라우리만큼 대담한 터치로 쓱쓱 그려져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화집에 돋보기를 대고 아무리 확대해서 들여다보아도 붓 자국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사진을 연상시키는 다빈치의 묘사는 옅게 푼 유화물감을 말도 안 되게 엄청난 횟수로 덧칠한 것으로, 회반죽이 마른 뒤 덧칠하지 않는 프레스코와 정반대 기법으로 그려졌다. 신속함으로 승부하는 프레스코는 유화물감으로 섬세한 터치를 덧입히는 방식을 선호한 다빈치의 기질과는 애초 물과 기름처럼 맞지 않았다.
크기 면에서 보자면 소품 부류에 들어가는 <모나리자>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장장 15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만약 다빈치가 <모나리자>에 들인 것과 같은 속도로 체육관 천장만큼 화폭이 큰 <천지창조>를 그린다면 과연 완성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무려 4,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 본문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 천장화를 다빈치가 그리면 4,000년이 걸린다?」 중에서


다만 렘브란트 특유의 장엄한 화풍이 시류에 맞지 않게 되었다는 지적은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시대의 기호가 밝고 화려한 분위기로 이행함에 따라 어두침침하고 진지한 그의 화풍은 시장에서 선호도가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렘브란트의 그림을 외면한 데는 화가 자신의 잘못도 있다. 즉, 전성기에 그가 자신의 공방에서 양산한 이른바 ‘렘브란트풍’으로 그려진 유사 작품의 공급 과잉이 사태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렘브란트는 왜 ‘렘브란트풍’ 그림을 양산했을까? 그것은 그가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으로만 생계를 꾸려나가기보다 공방에서 조직적으로 생산한 ‘렘브란트풍’ 작품을 계획적으로 판매하는 편이 경제적 성공과 직결된다는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생산 방식으로 세상에 나온 ‘렘브란트풍’ 작품이 ‘렘브란트 아류’로 복제 상품 취급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는 없다.
렘브란트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먼저 ‘화가 브랜드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전략적으로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한 화가였다. 그럼에도 자기 작품을 모작해 아류작을 양산하는 방식의 전략은 명확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렘브란트의 경영 전략에는 다분히 수수께끼에 싸인 듯한 부분이 있다. 그가 아윌렌부르흐 공방에 몸담았던 시기에도 자기 원화를 공방 화가에게 모사하게 하여 판매한 흔적이 있다. 당시 모사 작품은 후세 애호가와 연구자에게는 고민거리였는데, 아직도 그것을 진품으로 굳게 믿으며 소장하는 애호가도 있다고 한다.

— 본문 「렘브란트는 왜 ‘렘브란트풍’ 그림을 양산했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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