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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95008315
· 쪽수 : 35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신기하게도 아주머니는 매일같이 넘치는 활력으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쏟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 미스터리다. 게다가 아주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자기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몇 안 되는 분이기도 하다. 아저씨는 빵을 굽고 아주머니는 빵을 팔았다. 그런데 3년 전쯤 아저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심근경색으로 쉰다섯의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다. 아주머니가 우는 건 그때 처음 봤다. 장례식 다음 날 아주머니는 빵집을 열었다. 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빵집 문을 열었다. 그런 날이 일주일 동안 계속됐다. 손님들이 왔고, 아주머니는 평상시처럼 계산대 뒤에 서 있었지만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아주머니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고, 텅 빈 진열대를 슬그머니 쳐다봤다. 보름 동안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빵을 먹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하메드는 그걸 절호의 찬스로 삼아 비스코트(얇게 썰어 오븐에 구워 바삭하게 만든 딱딱한 빵으로 프랑스에서는 아예 포장된 상품으로 많이 나와 있다.-옮긴이)를 팔아먹는다거나 빵집 앞에 자기 가게 짐을 쌓아놓지도 않았다. 모하메드는 가게 창문을 통해 아주머니를 슬쩍슬쩍 지켜봤고, 구인광고도 대신 내주었다. 한 달 뒤 아주머니는 새로운 제빵사 쥘리앵을 고용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그가 굽는 빵이 훨씬 맛있었다. 그러나 아주머니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아침, 늘 그렇듯 갓 구워낸 빵 냄새가 났다. 판매원인 바네사가 진열대에 크루아상을 늘어놨다. 이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너무 좋다. 오븐에서 빵을 꺼낼 때마다 맛있는 냄새가 거리까지 퍼져나갔다. 빵집 위에 살면서 열린 창으로 언제나 신선한 빵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뭐가 됐든 다 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거실로 돌아갔다. 소냐가 막 도착했다. 소냐는 들뜬 표정으로 꿈꾸던 남자를 만났다고 떠들어댔다. 입이 간지러워 못 견디겠는지 들어오자마자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이름은 장 미셸. 착하고 직업이 좋은 데다 자기처럼 다섯 명의 아이를 갖고 싶어한단다. 하지만 목소리를 반음 내리곤 그가 좀 이상한 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자기 자신을 닌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 빼고는 완벽한 남자였다.
“뭐라고? 자기가 닌자라고?” 플로랑스가 물었다.
“닌자에 관한 거라면 책이든 검이든 다 사들여. 옛날 닌자들이 사용했다는 염탐용 수상 신발 ‘미즈구모’까지 만들었어. 신발 옆에 튜브를 달아서 물 위에 설 수 있게 한 거지. 아파트에선 두건도 두르고 닌자 복장으로 돌아다녀. 기합도 내지르고. 과녁을 여기저기 걸어놓고 시도 때도 없이 수리검을 던져.”
“뭘 던진다고?”
“수리검.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날들이 별 모양으로 삐죽삐죽 나 있는데 쇠로 만든 무기야.”
“위험하지 않아?”
“실력이 곧 향상될 거래. 아직은 과녁을 제대로 못 맞혀. 행거가 망가지고 거실의 종이란 종이는 다 찢겨서 남아나는 게 없어. 내 방에 있는 인형 배도 갈랐어.”
“진담이야?” 소피가 놀라며 말했다.
“진짜야. 수리검을 들면 무지 조심해야 해. 하지만 그것만 빼면 그 사람 완전 쿨해. 지난주만 빼고. 최상의 정신 상태로 진입하겠다면서 등과 어깨에 커다란 닌자 상징을 문신하려다가 완전 낙담했어. 문신기술자가 그런 건 해봐야 안 보인다고 했거든.”
난 감히 “왜?” 하고 물어봤다.
“왜냐면 그 사람 흑인이거든.”
이런 질문은 이쯤에서 멈춰야 했다. 소피는 부엌으로 도망가버렸다. 난 어처구니없는 흑인 닌자, 장 미셸을 상상하고 웃지 않으려 애쓰며 소냐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이제 난 능숙한 판매원이 되어 가게 안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문과 뒷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복잡한 케이크도 포장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과 비슷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 그들을 관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직업이야말로 딱 안성맞춤이다. 여기서는 비슷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걸 볼 수 있다. 빵집에 필요한 사람은 판매원이 아니라 인류학 연구자나 심리학 전문가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특정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그 문명이 사라진 다음에 유적을 파헤칠 필요가 전혀 없다. 개개인과 우리 인간종족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하루 종일 빵만 팔아도 된다.
나에겐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내가 들은 모든 걸 판단하고 싶은 생각도 그럴 권리도 없다. 그걸 통해 배우고 있을 따름이다. 때때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손님들의 이야기는 내 안에서 일상적 이야기를 넘어 인간에 대한 폭넓고도 단순한 정의로서 점점 더 명확해진다. 지능은 교육이나 용모처럼 당연히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혹은 무엇을 믿을지 자유롭게 선택하는 걸로 스스로를 결정한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두 개의 커다란 축으로 나뉜다. 모든 연령과 모든 조건의 사람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이와 그것이 뭘 말하는지도 모르는 이로 나눌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정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 필터로 사람을 읽는 재미는 무척 쏠쏠하며, 그 결과는 놀라웠다. 그건 행동하는 방식뿐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으로도 읽혔다.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부터 동전을 다루는 방법까지, 모든 게 그 사람을 증명한다. 자그마한 행복부터 뒷사람 코앞에서 쾅 닫아버리는 문까지. 어떤 이는 비록 무뚝뚝해 보이지만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갖고 있다. 반면 친절한 사람처럼 행세하지만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처음엔 이런 구분이 너무 단순화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 적용을 해보면 정말 잘 들어맞는다는 걸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