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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외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5086566
· 쪽수 : 532쪽
· 출판일 : 2018-10-05
책 소개
목차
005 독자를 위한 노트
007 옮긴이의 말
011 프롤로그
1 편 흰 손
021 약속
035 불
049 흰 손
073 물
085 비루
101 고결
125 이별연습
143 소생
159 시
2 편 지독한 사랑
169 구이 (鉤餌)
181 악수 (惡手)
199 착각
207 긍휼
227 변심
243 지독한 사랑
259 순종
279 역설
291 악마
3 편 기적
303 목소리
323 천사
345 야수
357 은신처
373 갇힌 새
385 천둥소리
429 징조
445 용서
469 전염병
481 변곡점
507 기적
527 에필로그
책속에서
“너무 목이 말라.”
엘리아킴이 히스기야의 목뒤로 손을 넣어 고개를 들게 하고 물을 마시게 도왔다. 물맛은 좋았다. 놀랍게도 차가웠다. 방이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물을 이토록 차게 유지했을까? 대부분의 물은 턱수염으로 흘러 떨어지고 가슴에 감긴 붕대를 적시었지만 히스기야는 마실 수 있는 만큼 물을 마셨다.
"헵지바가 왔었어. 꿈에." 다 마시고 중얼거렸다. "그녀가 내게 물을 주는 꿈을 꾸었어." 헵지바를 완전히 다 잊어버리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녀가 했던 것의 기억을 마음에서 다 지워버리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뭐 다른 것 갖다 드릴까요?” 엘리아킴이 물었다.
“아니. 앉아. 나랑 이야기해.”
“알겠습니다.” 엘리아킴이 주저하며 앉았으나 바로 도우러 달려갈 자세였다.
히스기야는 완전히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쉬브나는 어디 있나?”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폐하, 뭐 드시고 싶으십니까?”
히스기야는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배고프지 않았다.
“물 좀 더 드시죠.” 엘리아킴이 물을 더 주었다.
“저희가 너무 걱정했었습니다. 폐하, 깨어나셔서 기쁩니다. 좀 나아지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 히스기야는 알았다. 그가 얼마나 기력이 없는지. 의식을 붙잡고 있으려고 얼마나 힘들게 용을 써야 하는지. 시간의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었다. 낮인지 밤인지 모른 채 고통의 실안개 속을 달려왔다. 쉬브나가 책을 읽어 주던 것이 방금 전이었던가?
“얼마나 오래 아팠나?”
“이틀 전에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틀이 지났다. 의식을 잃었었다. 그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이것은 의식적인 생각의 끝, 죽음을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입술을 다시 핥았다. 그리고 말하려고 했다.
“언젠가... 내가 네제브를 여행했을 때 양치기의 천막에서 하루 밤을 지냈지... 견고하고 작은 천막이었어... 비와 태양을 막아 주는... 그러나 아침에 양치기가 모든 막대기를 잡아 뺐어... 하나씩 차례차례... 그대로 갑자기, 생명이 없어졌어. 천막은 한 무더기로 주저앉았지. 더 이상 천막이 아니었어. 그냥 생명 없는 천 더미였어. 그리고 양치기가 그것을 조그맣게 접어 넣어 버렸어... 단지 네모나게 납작해진 풀이 천막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지.” 침을 삼키려고 했다. 그러나 입이 너무 말랐다. “엘리아킴, 삶은 원래 이런 걸까? 우리의 삶은 갑자기 끝나고 우리는 가 버리는... 우리가 살았던 것을 보여 주는 어떤 것도 남지 않는 거지?”
“폐하, 폐하는 많은 업적을 쌓으셨습니다. 유대와 여호와의 언약을 복구시키셨고 우리나라를 위해 커다란 번영을 이룩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 ”
“그러나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토라에는 우리의 아버지들과 함께 하도록 우리가 모여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 ”
“아니야, 내 아버지와는 아니야.”
“죄송합니다. 폐하, 저... 제 뜻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엘리아킴이 입을 다물었다.
히스기야는 온몸이 열로 펄펄 끓는 것 같이 느껴졌다. 땀이 쏟아졌다. 침대커버가 피부에 붙었다. 그러나 너무 힘이 없어 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들 수가 없었다. 너무 힘이 없어 달라붙는 커버를 걷어찰 수가 없었다.
“엘리아킴. 죽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은가? 그건 마치 사자의 턱에 물려있는 것 같아. 사자가 뼈 모두를 부러트렸어. 그리고 지금은 날 가지고 놀고 있어. 사자가 날 죽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 그러나 난 죽고 싶지 않다. 지금은 아니야. 내 인생의 전성기에... 그리고 내 자리를 물려줄 아들이 없어... 내가 시작했던 모든 것을 끝내려면...”
“폐하는 죽지 않습니다.” 엘리아킴이 격렬하게 말했다.
“그렇게 믿고 싶네. 그러나 매시간 스올의 문으로 점점 가까이 미끄러지는 것 같아. 추락하지 않게 잡을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기억했다. 어떻게 그의 형제가 불길 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는지. 엘리압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번쩍거리는 몰록의 팔을 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러나 금속은 너무 뜨겁고 너무 미끄러웠다. 그리고 떨어져 죽었다.
“아픈 것을 이겨내실 겁니다. 폐하. 여호와가 폐하를 죽게 하시지 않을 겁니다.”
“여호와가 아주 멀리 계신 것 같아, 엘리아킴. 나는 지평선을 지켜보고 있어. 그분이 오시길 기다리면서. 그분을 만나기를 갈망하면서. 그러나 내 눈이 그분을 찾기에... 너무 피곤해. 그리고 여전히 그분은 오시질 않아... 날 도우시질 않아...”
“하나님은 절대 폐하의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폐하. 그분은 늘 옆에 바로 여기 계십니다. 때때로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계신 것 같아도 정말은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려고 이 절박한 경험을 사용하고 계신 겁니다. 역경의 시간을 우리를 그분의 편으로 더 가깝게 하시는 데 사용하고 계신 겁니다.”
“ ‘내가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요 너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폐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그 구절을 내게 보여줬어.” 히스기야가 중얼거렸다. “....난 죽고 싶지 않아.”
갑자기 추웠다. 누군가 창문을 연 것처럼 한줄기 겨울공기가 훅 밀려들었다. 그가 떨기 시작했다.
“.... 폐하를 위해서, 폐하?”
엘리아킴이 그에게 질문을 했던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뭐라고 했는지 알지 못했다. 망상이 다시 그를 장악하려고 했다. 그를 혼동시키고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로 남겨두려고 했다.
“내 왕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가 물었다. “해야 할 일이 없나?”
엘리아킴의 대답은 임의의 단어들로 뒤섞였다.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국가... 공무... 매일...”
히스기야는 눈을 감았다. 지치고 추웠다. 엘리아킴이 담요를 더 덮어주었다. 그러나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했다. 고통에서 탈출해야 했다. 그러나 다시 깨어나지 못할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