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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5359707
· 쪽수 : 188쪽
책 소개
목차
축사
간행사
제3회 생명, 그리고 희망의 글쓰기
제2회 의학.치유.에세이
제1회 의학, 에세이를 만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누구든 먼저 시작해보자.”
좀 전에 그어놓은 푸른색 할선 위에 메스를 댄 채 주저하고 있는 조원들 사이에서 한 명이 먼저 운을 띄웠다. 냉랭한 공기가 감도는 실습실에서흰가운을입은여러명이카데바를둘러싸고‘의대의 꽃’이라는 해부학 실습의시작을 앞둔 상황이었다. 나는 흉부에서 복부로 그어진 선 위에 메스를 대기만하고 있다가 흉부 쪽에서 먼저 긋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같이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입학한지는 몇 주가 흘렀지만, 메디컬드라마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과 함께 내가 의대생으로써 특별해지던 첫날이었다.
마음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더니 병원 실습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회진 도는 선생님들께 말하는 걸 보면서는 아무 이상 없는데 왜 자꾸 아프다고 할까 생각했는데, 막상 내 어머니에게는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환자, 보호자입장에서는 아무리 최신의 검사와 좋은 약도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아프고 불편하면 아무 소용없다. 아프고 힘들어 못살겠다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진과 숫자를 들이밀며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하는 의사는 내병을 정확하게 알지 못 하는 실력 없는 의사이거나 나를 꼼꼼히 봐주지 않는 성의 없는 의사로 치부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올해 초, 나는 외과에서 첫 임상실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누나는 나의 첫 케이스환자였다. 환자는 나보다 여섯 살 위였는데, 난소암으로 양쪽난소와 자궁을 절제한 후 수 년간 방사선치료와 항암화학요법을 받아왔다. 그러다 간 위쪽 표면에 전이가 의심되어 절제수술을 받기 위해 외과로 입원했다. 그전까지 나는 암환자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의학도로서 환자에게 접근하는 법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반인으로서 암환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며 안 그래도 긴차트만 계속해서 뒤적거리다가 겨우 용기를 냈다. 환자에게 내 소개를 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 환자는 흔쾌히 승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