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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현대철학 일반
· ISBN : 9791195434008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15-01-25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중에 필리파 풋이 되는) 필리파 보즌켓은 몇몇 사람들끼리만 돌려 보는 정기 간행물에 14쪽짜리 논문으로 출판했던 자신의 수수께끼가 아예 소규모 학술 산업 분야를 개척하고,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논쟁의 출발 신호가 되리라고는 아마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 논쟁은 철학 성자(聖者)들의 명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덕 사상가들을 끌어들이고(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칸트까지, 흄에서 벤담까지), 우리의 도덕적인 시각 안에 들어 있는 근본적인 긴장들을 포착해 낸다. 우리의 도덕적 직관을 시험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폭주 기관차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괴한 보강 장치들까지 등장하는 훨씬 더 기상천외한 시나리오들을 들고 나왔다. 함정문, 거대한 회전판, 트랙터, 도개교 등등. 보통 기차는 다섯 명의 불행한 사람들을 향해 질주하고 있으며, 독자에게는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제시된다. 비록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것이지만.
철학자들은 트롤리의 시나리오들이 실제로 그런 차이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지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안락의자 철학자들이 고안해 낸 트롤리학은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윤리학의 이 하위 분과는 여러 학문 분야를 품에 안았다. 그중에는 심리학, 법학, 언어학, 인류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이 포함된다. 그리고 가장 유행하는 철학 분과인 이른바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 또한 선로 위로 뛰어들었다. 트롤리에 관한 연구는 이스라엘에서 인도를 거쳐 이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졌다.…… 외부인의 눈에는 선로 위의 기차가 연출하는 별난 사건들이 그저 악의 없는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상아탑의 장기 거주자들을 위한 십자말풀이 퍼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실제로 그 사례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도대체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가 기차의 진로를 바꿀 때 엄밀히 말해서 그 뚱보를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의도는 단지 그를 기차에 치이게 해서 기차를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그 기차가 사람을 친 뒤 정지했는데, 그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서 엄지손가락을 조금 삔 정도 말고는 크게 다치지 않은 채로 어슬렁어슬렁 선로에서 빠져나온다면, 그를 다시 때려죽이려 몽둥이를 들고 쫓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남자가 기차를 막아 주기를 바랐을 뿐이지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필리파 풋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실제로 기차에 치이는 것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기차가 어떤 사람과 충돌하게 만드는 것과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을 구분하겠다는 것은 궤변처럼 느껴진다.……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은 특정 유형의 행위는 “악이 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반(反)사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만일 이러면 어쩔 건가what if”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그 루프선 위에 있던 남자가 도망을 쳐 버린다면 어쩔 건가? 네이글은 만일 악한 목적이 인도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목표했던 효과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며, 상황이 바뀌어서 목표했던 바에서 비껴갈 때는 그 일의 수행을 조정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