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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5835805
· 쪽수 : 722쪽
· 출판일 : 2016-08-01
책 소개
목차
차왕 - 상
차왕 - 하
저자소개
책속에서
혜장은 순박한 눈을 허공에 추켜 떴지만, 곧바로 말하지 못했다.
"시란 시일세…"
"글이나 단어에서 보여지는 게 아닌 무언가 가슴팍에서 꿈틀거리고 만들어졌을 때 시가 되는 것이네."
"네, 스승님. 잘 모르겠지만 새겨듣겠습니다."
"종이에 끄적거리고 무언가를 쓴다고 해서 모두 시가 되는 것은 아닐세. 시는 시가 되고 안 되고가 있네. 시가 되는 글이 있고 시가 안 되는 글이 있다는 얘기일세. 자, 아암. '해가 중천에 떴다.' 시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
"해가 중천에 떴다는 말 자체로는 시가 될 수 없네."
"의도적으로 적어도요?"
"의도라는 것은 해탈의 경지를 넘어섰을 때만이 구가할 수 있는 극단의 글일세."
"잘 이해를…"
혜장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태양을 70년 이상 연구하는 어떤 장인이 '해가 중천에 떴다.'고 글을 썼네. 시가 될 수 있는가?"
"……"
"시가 될 수 있네. 평범한 글이어도 해탈의 경지로 인정한다는 뜻일세. 해를 70년 이상 연구했다면 그 사람의 말 한마디는 시로 인정될 수 있다는 뜻일세."
"그렇군요!"
"그렇다면, '해가 내 마음속에 떴다.' 시가 되는가, 아니 되는가?"
"시가…"
"해를 마음으로 표현했기에 시가 되는 것이네."
"시는 일과를 나열하는 일기가 아니네. 그럼 시가 아닌 일기를 써야 맞지. 그렇지 않겠나? 우리가 시를 쓰는 것은 똑같은 사물이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며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함일세."
"시에서는 칼이 붓이 될 수 있고 밥이 철이 될 수 있고 바위가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라네. 아암이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대웅전이 될 수 있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새도 사람이 될 수 있나요?"
"시에서는 그걸 '의인화'라고 말하네. 새나 바위나 파도나 물고기가 사람으로 둔갑하는 것이네."
"정말 어렵네요……"
"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네. 흡인력이 있어야 하고 사실적이어야 하며 은유적이고 감탄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줘야 하네. 울림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시가 아니네."
"사람들에게 공감을 줘야 한다는 것이군요?"
"울림은 곧 공감이네.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격려해줄 수 있고 내 얘기 같으며 눈물이 흘러야 하며 또한 마음속의 울화가 승화되어야 하네…… 아암?"
"네… 스승님."
"사람들이 시 쓰는 놈이 아니라 시 쓰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줄 아는가?"
"시가 고매하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시 쓰기는 사람이 돼가는 열반의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라네. 그래서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네."
"스승님, 제가 쓴 글이 부끄럽습니다."
"그렇지, 부끄러워야지. 그러나 시는 많이 써야 하네. 한두 줄 써놓고 탄복해서도 아니 되고 자만해서도 안 되네. 아무리 못써도 만 편의 작품은 지어야 비로소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네."
"만 편이요?"
"그렇다네."
"스승님은 현재 몇 편이나 쓰셨는지…?"
"알고 싶나?"
"네…"
"난 지금껏 2천 5백 편 정도의 시를 썼네."
"대단하십니다. 스승님."
"이건 대단한 것이 아니네. 중국의 서예가 옹방강은 '기리론'을 펼친 것은 물론 4만 여권의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썼다고 하니 나 역시 갈 길이 멀다네."
약용과 혜장은 해가 지고 동이 틀 때까지 얘기를 계속했다.
시 강론을 모두 들은 혜장은 고성암 굴뚝으로 내려가 군불을 넉넉히 땠다. 하루라도 스승님이 춥게 주무시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