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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6554538
· 쪽수 : 148쪽
· 출판일 : 2024-11-22
책 소개
목차
청소의 시작 9
언 강을 가로지르는 들개처럼 15
기준은 3성급 호텔 21
눈이 오는 날엔 이웃의 비질 소리를 들어라 27
감추는 것과 없애는 것 33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41
종속과목강문계 49
지문과 스토리텔링 55
누가 보면 창피하지만 61
남성과 여성의 소모품 소진 주기 67
락스와 EM 그리고 생태계 73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났다 81
침투하는 얼룩 표면을 맴도는 얼룩 87
유전자 변형 닭 뼈 93
오체투지 앞치마 99
피하지 말고 싸워라! 105
어떤 작업은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낫다 113
나의 로봇 청소기 R2D2 117
머리카락, 음모, 깃털 123
UFO 연구모임 127
죽음 이후에 서로를 찾는 방법 141
청소란 무엇인가 146
저자소개
책속에서
청소의 시작
서울에서 미술작가 활동을 하던 나는 작업실을 경기도의 남한강 앞으로 이전했다. 내 작업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행정 구역인 ‘리’에 있다. 택시잡기는 물론 어렵고, 편의점을 가려면 5km 이상을 차로 움직여야 하며, 그 흔한 음식 배달도 안 되는, 그야말로 시골이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저녁 시간에 건물 청소를 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건물주인 언니와 의견을 나눈 후 일주일에서 6일을 식당 영업이 끝난 이후 건물 일부를 청소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내가 담당하게 된 일은 1층의 남녀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4층의 홀 전체, 4층 남녀 화장실의 청소 및 분리수거와 주차장 천장의 거미줄 제거, 주차장 전체에 줄 서 있는 수국 화분에 물 주기였다. 물론 건물에 상주하는 사람으로서 직원들이 나오지 않는 휴일에 택배를 받는 것과 그 외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청소는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작업에 대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시기에 다른 일에 몰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렇게 건물 관리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작은 역할이 되었다.
언 강을 가로지르는 들개처럼
나는 이곳이 종종 삶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마지막을 선택하기 위해 오는 장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을 바라보지 마라. 그러다가 네가 보면 안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이야길 해준 이웃은 집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수시로 강을 보며 구조보트를 보낸다고 한다. 발을 잘못 디디면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고 너무나 아름다워 매혹적이지만 가까이하면 그야말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그런 곳. 그 큰강을 들개 한마리가 가로지르고 있다.
기준은 3성급 호텔
무슨 일을 하고자 마음먹을 때, 막연히 잘해보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는 모호하다.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보았던 것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수준 이하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설정된 기준의 요소들을 파악한다. 나는 전시를 위해 출장을 다녔던 경험을 바탕으로, 3성급의 해외 호텔을 기준으로 청소 목표를 잡았다. (중략)
생각해 보면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다짐은 모호하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유무형의 요소를 파악하고 나의 위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 나는 어떠한 작가가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는 매 순간 헤맬 수밖에 없고, 무엇을 잡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