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6576479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3-10-1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5
내 기억의 첫 장, 율전동 … 12
내 고향, 내 요쉴릭 … 30
발랴 아줌마 … 52
포대기로 키운 새싹 … 70
책장 속의 그 구두는 잘 있는, 가영 … 84
릴리아, 꽃말을 아시나요 … 100
안녕! 벽 뒤에 내가 있었어요 … 120
완벽한 하루 이용권 … 136
김 여사의 손맛 … 154
팬데믹, 그리고 배려 … 176
내 마음속 바다엔 고래가 산다 … 196
한겨울밤의 수다 … 214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시절 내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건 오빠의 방학이었다. 엄마는 방학 동안 오빠에게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동생을 보라고 당부했다. 오빠는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 다른 아이들은 방학이라고 우르르 몰려 뒷산이고 앞산이고 날다람쥐들처럼 온 동네를 놀러 다니는데 집에 앉아 동생을 돌봐야 하는 어린 오빠는 속이 많이 상했을 거다. 종이 동그라미 안에 무지개색으로 채워놓은 즐거운 방학 계획이 틀어지자 입이 댓 발 나온 오빠는 내게 말도 걸지 않고 구슬 주머니만 만지작거리며 토라져 있었다. “전우야 놀자!” 집 아래로 친구 몇 명이 오빠를 데리러 와있었다. “너희끼리 가. 나는 못 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겨우 끄집어내 오빠가 말했다. 친구들은 동생 혼자 두고 엄마 오기 전까지만 놀다 오자며 졸랐지만, 오빠는 친구를 문 앞에 두고 그냥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한참을 콧김만 씩씩거리던 오빠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해답을 찾아낸 듯 부산하게 일어나 내게 신발을 신기고, 구슬 주머니를 손에 쥐여 주고 어리둥절한 나를 업었다. 겨우 12살 남짓이던 오빠는 또래보다 몸짓이 크던 7살의 나를 등껍질처럼 들쳐 업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천천히 현관을 나와 난간을 짚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착한 우리 오빠는 차마 나 혼자 방안에 두고 가지 못해 결국 나를 함께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었다.
… <내 기억의 첫 장, 율전동> 편
내 마음은 무인도에 작은 배 한 척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배가 들어온 이상, 섬은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신발을 도둑맞은 사건은 어쩌면 운동화의 소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구두 바닥에 목적지라도 적어 놓았으면 우리는 떠날 수 있었을까. 책들 사이 홀로 서 있는 구두는 글자 없이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기다림이 아닌 다가감의 차례다. 어딘가에서 자꾸만 커지고 있을 외딴섬을 향해. 어쩌면 어렸던 나의 섬을 향해.
… <책장 속의 그 구두는 잘 있는, 가영>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