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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6855123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2-04-25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여태 몇 가지의 이유로, 몇 번의 끝을 경험했는가. 그 무수한 결말 속에서 진정으로 끝이 난 것은 무엇이었는가. 애초에 마지막 순간 앞에 선 적이 있었는가. 나는 두렵다. 끝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시, 이번이 진정 끝이 아닐 것 같아 두렵다. 다시 숨어버릴 나의 나약이 두렵고, 그 모든 것을 다시 용서할 내 속의 자애의 신이 두렵다. 신이시여, 부디 나를 외면하소서. 구원이라는 대의를 등에 업고 웃기지도 않은 명목을 들먹이며 다시금, 나를 그 시궁창 속으로 들어가게 하지 마시옵소서.
사라지고 싶은 열망. 그 순수한 꿈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두 손이 팽창하고 있다. 화마 속이다. 주머니에 넣어 감춰볼 수도 없다. 바싹 마른 천가죽 하나에 의존하며 버텨온 날들. 이제는 숨길 수도 없다. 손이 너무 커져가고 있다......
수많은 넋들과 수많은 과거 속에 살면서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않고 흐리멍덩하던, 취기 오른 꿈속이었다. 부득불, 사람과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며 들어갔던 어둠 속에서 이제 나는 끝을 맺는다. 매일 아침 펼쳐지던, 수많은 이름에 의해 재생되고 정지하던 영상들과는 다르게 묶이고 잘리고 굳어 마침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대신, 불투명 속에서 비로소 맑아지던 나의 정신만을 위로한다. 먼 곳에서 밀려와 부서지던 허무한 파도...... 내 삶은 그 찰나에 타오른 불꽃이었다. 혹은, 차라리 타오른 적 없는, 비에 젖은 성냥이었다. 그러나...... 아주 긴 임사의 체험이었다.
방의 모습과 찻잔을 젓는 행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방의 구조와 조건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내 행위에 대한 기술은 단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태도와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하나의 시선으로서 이곳에 중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침으로 인해 들썩이는 어깨와, 순수 기침 소리가 갖는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오로지 찻잔 속 검은빛의 커피와 그 위에 맺혀 있는 거품들, 그리고 그것들이 그려내는 성운의 형상에 시선이 맞닿아 있을때야 말로 쓰는 행위에 진정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들 속에서 또 하나의 입체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즉시 내 삶으로부터 멀어진다. 그곳에서 뚜렷하고 유일한 주체로서의 권한을 잃는다. 이를테면 다른 시간들 속에 끼어, 영화관에 앉아 단지 영사되는 필름을 바라보고 있는 하나의 존재이거나 혹은 객체가 될 뿐이다...... 맥없는 시선만이 찻잔에 닿아있다. 하나의 목소리가 될 뿐이다. 긴 곡선의 그래프에서 단 하나의 포먼트로 전환이 되는 것이다. 티스푼으로 잔 귀퉁이를 두어 번 치자 소리 굽쇠가 진동하는 듯, 그리고 그 진동을 따라 공명의 시간으로 떠나가는 듯 양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