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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7151484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2-02-28
책 소개
목차
서문
전쟁과
원정園丁 15
전봉래全鳳來 17
주름간 대리석大理石 19
아우슈뷔치 20
소리 21
지대地帶 23
문장수업文章修業 24
북치는 소년 25
미사에 참석參席한 이중섭씨李仲燮氏 26
돌각담 27
엄마 28
시인학교詩人學校 29
달 뜰 때까지 31
어부漁夫 34
아우슈비츠 라게르 35
평범한 이야기 36
민간인民間人 37
기동차가 다니던 철뚝길 38
소곰 바다 39
소공동 지하 상가 4
서시序詩 41
음악과
G‧마이나 45
쑥내음 속의 동화 46
드빗시 산장 부근 48
십이음계十二音階의 층층대層層臺 49
라산스카 50
라산스카 51
음音 52
라산스카 53
단모음短母音 54
배음背音 55
스와니강江이랑 요단강江이랑 57
라산스카 58
음악音樂 — 마라의 「죽은 아이를 추모追慕하는 노래」에 부
쳐서 59
아뜨리에 환상幻想 62
올페 63
유성기留聲機 64
따뜻한 곳 65
앤니 로리 66
최후最後의 음악音樂 67
라산스카 68
평화와
받기 어려운 선물처럼 71
오월五月의 토끼똥‧꽃 73
부활절復活節 74
샹뼁 75
앙포르멜 76
나 77
오五학년 일一반 78
나의 본적本籍 80
무슨 요일曜日일까 81
물통桶 82
묵화墨畵 83
새 84
두꺼비의 역사轢死 85
피카소의 낙서落書 86
장편掌篇 87
장편掌篇 88
미켈란젤로의 한낮 89
내가 죽던 날 90
장편掌篇 91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92
수록 작품 출전 93
해설 백 년의 고독과 시인의 사라짐 9
저자소개
책속에서
백 년의 고독과 시인의 사라짐
1. 고독한 시인을 부르며
시인 탄생 백 주년을 기리는 일은 상투적 행위이면서도 뜻깊다. 비로소 새로운 문학사의 탄생을 알리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세기를 겪고 난 후에라야 시인의 진면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하늘의 별 만큼 많다. 명멸하다 사라진다. 오늘 빛나도 백 년을 발광하기는 쉽지 않다. 탄생 사백 주년을 맞는 이십 세기에 들어서야 현대적인 셰익스피어와 만날 수 있었던 경우를 보면 시인은 쉽게 드러나는 존재가 아니다. 시인을 불러내는 세상 이법이 호들갑스러울 뿐 시인은 침묵 속에 있다.
이런 와중에 김종삼을 호명하는 데는 두 가지 뜻이 함축돼 있다. 하나는 한국 문학이 그에게 빚진 것이 있다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문학이 한국 문학의 서부西部라는 의미이다.
첫째, 그에게 빚진 것은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지점에서 그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한국 문학은 움직일 수 없이 분단의 이면사이다. 전쟁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착된 분단 상태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이 무엇을 담고 표현하며 주장해도 집단 무의식처럼 저변에는 전쟁과 분단으로 잉태된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전쟁 공포나 분단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종군 문학이나 관념적 혁명 문학 혹은 체제 유지에 복무한 처세 문학이 한국 문학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역설적으로 한국 문학의 정체성은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 현실을 지향하는 데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분단 현실에 안주하거나 분단 현실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역사의식으로 전면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길이 아니라 또 다른 논리를 추구하는 길일 수밖에 없다. 이는 어떤 이념적 당파성이나 문학적 방법론을 주창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문학 현상을 역사 속에서, 현실 속에서 바라보려는 입장일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분단 현실을 문학으로 재현한 제대로 된 작품을 한국 문학에서 얼마나 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시도가 온전히 수행된 예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분단의 이면적 패러다임이 문학 현장에서 시대착오적인 주제로 낙인되는 현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분단을 소재화하여 생경하게 형상화하라는 뜻이 아님도 덧붙일 이유가 없다.
김종삼 탄생 백 년을 돌이켜 볼 때 그의 문학은 ‘전쟁과 음악과 평화와’ 행보를 같이 했다. 그의 시는 전쟁이 남긴 상실의 주제학이며,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미학이며, 분단을 극복하려는 평화의 시학이 아닐 수 없다. 이백 사십여 편 남짓 김종삼의 시는 오로지 상실과 치유와 극복의 전언으로 점철됐다. 한국 문학에서 그처럼 사특함이 없이 시 정신을 밀고 간 시인이 얼마나 되는가. 그가 지향했던 ‘내용 없는 아름다움’과 ‘형식 없는 평화’의 시학은 한국 문학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보한다 해도 괜찮다. 그런 측면에서 김종삼 문학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영토가 아닐 수 없다.
둘째, 김종삼 문학은 한국 문학의 경직성을 탈피하고 다성성을 기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한국 문학의 전개 과정은 낭만적 상상력과 현실적 상상력의 지속과 변이를 반복하는 길항 관계라 할 수 있다. 1910년대의 낭만성이 1920년대 현실성으로 자리바꿈하며 1930년대 낭만성과 현실성이 변증법적으로 변주돼 한국 문학의 정점을 이루게 된 점을 생각하면 자명하다. 이 과정에서 백가쟁명으로 문학의 꽃이 피는 것은 세계 문학사를 견주어도 그렇다. 그러나 한국 문학은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하나의 목소리만 내는 불치의 상상력 속에 갇힌다. 이는 현실적 상상력의 배제에서 배태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낭만적 상상력의 풍부함도 왜소하게 축소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자리를 대체한 것이 전통적 상상력이다. 돌이켜 보면 50, 60년대 난해시의 양태는 전통적 상상력의 안티테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적 구조는 지난 시기 전개됐던 문학적 양상의 역동적 흐름이 아니라 다르면서도 같은 쌍생아적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의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지난날 전통적 상상력이 관념적 서정을 펼칠 때 반전통적 상상력은 무의식을 지향하는 내면적 서정을 추구하였다. 관념과 내면의 세계는 상징과 욕망이라는 체계에서 서로 의지적이다. 그러나 경직된 단일 목소리는 매한가지이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기형적 문학 국면을 낭만적 상상력으로 통칭한다면 현실적 상상력은 왜소할 뿐이다.
이 축소된 지점에 김종삼 문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김수영과 신동엽이 이루지 못한 세계라 할 수 있다. 김종삼은 자신이 뮤즈로 여겼던 말라르메를 통해 이러한 현실적 상상력의 일단을 펼친다. “스테판 말라르메가 그러했듯이 시는 소박하고, 더부룩해야 하고, 또 무엇보다도 거짓말이 끼어들지 않아야겠다(김종삼, 「먼 ‘시인의 영역’」 , 『문학사상』3월호, 1973.)”고. 이때 ‘더부룩해야’하는 시의 구경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모호하지만 말라르메의 시학을 따르면 김종삼은 언어가 현실을 비출 수 없는 ‘부재’의 허무함 속에서 시만이 구원으로 가는 신비스러운 현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시의 언어는 ‘더부룩할’ 만큼 불편해야 한다. 김수영이 말하듯 불온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 본질이 부재한 현실을 채우는 행위이며 현실을 직시하는 시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비록 허무와 침묵 속에 시적 상황이 전개되지만 김종삼의 시는 늘 현실에서 부재한 존재들을 시 속에서 들어 올리고 있다.
시 「오월의 토끼똥・꽃」(『한국전후문제시집』, 신구문화사, 1961.), 「민간인」(『현대시학』, 1970. 11.), 「소곰 바다」(『세계의문학」, 1980. 가을.) 등 일련의 시는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삶이 전환점에 있을 때를 조명하고 있다. 즉 항상 ‘문턱에 있는 삶lives on the threshold’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바흐친이 말한 다성성이며 대화적 상상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2. 김종삼 문학의 현대성과 세계성
독일 문학에서 시인의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휠더린에 버금갈 시인을 한국 문학에서 찾는 다면 단연 김종삼이다. 휠더린이 존재했기에 괴테가 있듯이 그를 통해 한국 시문학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미래를 조망하기에 앞서 김종삼 문학의 현재는 불확정적이다.
첫째는 전기적 국면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며 둘째는 등단작 등 원전 확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김종삼의 생애는 반편의 기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을 통해 확정된 사실을 따진다면 1954년 6월 시 「돌」을 『현대예술』에 발표했다는 것이 처음이다. 김시철 시인에 따르면 이 작품이 등단작일 것이라 하지만 확증할 수는 없다. 이때 김종삼의 나이 서른셋이다. 이후의 삶은 1984년 12월 8일 사거死去 때까지 삼십 년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적어도 한 시인의 생애를 작품으로만 살펴볼 수는 없다. 삶과 시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세계라면 시 발표 이전의 삶 또한 중요한 이력이다. 1954년 이전의 생애는 그저 전언으로만 채록됐을 뿐이다. 소위 김종삼의 생애 전반기는 문자화된 기록으로 확증된 것을 찾기 힘들다.
전반기 생애를 북한과 일본과 해방, 전쟁기로 나눠 본다면 북한에서의 생애는 검증할 길이 없다. 1921년 4월 25일 황해도 은율 출생이라는 원적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이후 어디서 성장했는지 알 수 없다. 평양에서의 유년 시절 또한 밝혀진 바 없다. 시 속에 등장하는 풍경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1934년 13세 때 평양 광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는 것도 나이를 따져 추정할 뿐이다.
1938년 17세 때 형 김종문의 부름으로 일본에 가게 된 것은 1938년 평양 숭실중학교가 일제에 폐교당했음을 볼 때 개연성이 크다. 1938년 동경 도요시마豊島 상업학교에 편입학하고 1940년(19세) 3월, 도요시마 상업학교를 졸업했다고 전하지만 일본 현지답사에 따르면 그와 관련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도요시마 지역 네 개 학교를 수소문 했지만 김종삼의 이름은 학적부에 남아 있지 않았다. 1942년(21세) 4월, 일본 동경문화학원 문학과에 입학하여 야간 학부로서 낮에는 막노동을 하며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시절을 보냈다고 『김종삼정집金宗三正集』에 적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지 조사 결과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동경문화학원은 야간학부가 없었으며 어디서 살며 어떻게 통학했는지 묘연하다. 1944년(23세) 6월, 동경문화학원을 중퇴했다지만 당시 일본은 이 차 세계 대전 중이었다. 학생들은 동원령이 내려 징발되었고 동경문화학원 역시 1943년 9월에 군부에 폐교조치 되었고 교정은 군대가 접수하였다. 그러므로 학적은 분명하지 않다. 이후 김종삼이 영화인과 접촉하면서 조감독직으로 일하고 동경출판배급 주식회사에 입사한 점 또한 그의 전언일 뿐이다. 이러한 생애를 김종삼이 꾸며 말했다고 보지 않는다. 기록이 보여줘야 할 명징함을 확보할 수 없을 뿐이다. 김종삼이 동경문화학원의 학풍을 지향했고 전수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당시 동경문화학원은 일본 제국주의와 다른 노선을 걸으며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학풍을 견지했다. 그래서 사사건건 일제와 갈등을 겪었으며 강사들이 징벌과 해직을 거듭했다.
해방이 되자 김종삼은 김종문을 따라 북한으로 갔다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 1945년 김종문이 군사영어학교에 있을 때 관사에 함께 머물렀다. 이 장소는 현재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 신학 대학교 자리이다. 전쟁기에 김종삼은 어떤 행로를 따랐을까. 김종문을 따라 국방부 정훈국이 이전할 때마다 이동했을 것이다. 전쟁기에 국방부는 수원, 대전, 대구, 부산으로 이동한다. 곳곳마다 김종삼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대구 중구에서 전쟁기 김종삼이 머물던 곳을 확인하여 채록했다. 대구에서 전봉건이 있었던 르네상스에 자주 드나들었고 당시 피난살이 했던 문인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이 당시 시를 발표했을 개연성이 있는데 이 부분은 조사가 더 필요하다. 부산 피난 시절은 기존 문인들의 행로 따라 추정할 뿐이다.
생애 문제와 더불어 등단 절차를 확인하는 일도 정체 상태다. 아직도 시 「원정」이 등단작으로 회자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시는 1956년 『신세계』 3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는 1954년 『현대예술』 6월호에 발표한 시 「돌」이 최초다. 그러나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신세계』는 대전지역에서 발행됐던 잡지로 전쟁기, 즉 1953년 이전 이 잡지를 통해 시작 활동했을 여지도 있다. 더불어 대구지역과 부산지역 어딘가에 등단 흔적이 있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이처럼 김종삼 문학의 미망에도 그의 시는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요체를 현대성과 세계성으로 특정할 수 있다. 시의 현대성을 무엇으로 규정짓는가는 쉽지 않다. 김종삼은 말라르메의 언어적 현대 감각을 자기 것으로 했다. 시가 신비스러운 단계를 지나 성스러운 단계로 넘어가는 그 지점에 시인의 메타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말라르메가 시 창작의 원리로 삼으려 했던 음악의 신비로움과 성스러움의 원리는 ‘「예술에서의 이단」(1862년)’이라는 글에 잘 나타난다. “모든 성스러운 것과 그리되려 하는 것은
신비스러움으로 감싸져 있다(Toute chose sacree et qui veut demeurer sacree s'enveloppe de mystere.).” 이러한 음악의 두 요소를 시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말라르메는 가장 먼저 말소리의 느낌, 즉 어감에 주목한다. 그리고 청각에서 시각으로 이동을 모색한다. 그럼으로써 작가의 개별성이 개입되지 않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하나의 울림의 공간으로서 시 구조를 만들려 한다. 여기서 김종삼이 주목한 것은 ‘시인의 배제’ 즉 ‘시인의 사라짐’이다. 이때 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동과 울림을 낳는다. 이런 음악적 분위기, 기운, 기세 속에서 말라르메는 성스러움의 배경으로 ‘시인 웅변의 사라짐’을 전제로 한다. 시적 대상과 관계 했던 옛 서정적 호흡, 개인적 표현을 포기하고 말들에 그 권한을 내어주는 태도라 말한다.
시인의 사라짐을 통해 획득된 언어의 자율성, 혹은 자유는 인간 개개인의 자율성과 상호작용하는 현대적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김수영이 김종삼과 교류하던 당시 ‘새로움’을 표제로 삼는 일련의 글에서 동일하게 담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새로움의 모색(1961. 9. 18.)」, 「새로운 포멀리스트들(1967. 3.)」이 그렇다. 특히 「시여 침을 뱉어라(1968. 4.)」에서 ‘시인의 배제(사라짐)’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형식주의는 역사를 폐기하고 어떻게 기술하는가에 앞서 ‘역사의식’을 어떻게 담느냐에 고민이 있어야 한다거나 ‘언어의 순수성’을 주창할 때도 시의 현대성은 ‘윤리’의 차원에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 ‘윤리’는 사회적, 인간적 윤리를 포괄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기도 모르는 수동적인 새로움(「새로운 ‘세련의 차원’ 발견(1967. 7.)」에서)’ 즉 시인의 사라짐에 대해 언급한다.
이렇게 볼 때 김종삼의 시적 현대성은 관습화된 이미지로서 상징의 파괴와 균열, 인식 수준에서 벗어난 역사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처럼 새로운 이미지와 역사의 순간순간에 포착된 사람들을 시에 안치시키는 가운데 공고한 연대를 통해 성스러운 인간 본질을 성좌처럼 구현시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수영은 기인, 집시, 바보, 멍터구리, 주정꾼의 소수적 형식의 사라짐을 발견하고 근대화의 해독害毒에 충격을 가해야 한다는 참여의 효율성에 다다른다. 그러므로 사랑(형식)은 주변적이며 소수적이고, 자유(내용)는 파격적이며 전위적이어야 한다. 이는 김종삼 시의 ‘형식 없는 평화’와 ‘내용 없는 아름다움’과도 일맥상통한다.
김종삼 문학의 세계성은 세계인의 보편적 휴머니즘과 융합하며 소통하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면모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문학이 피할 수 없이 분단 문학의 굴레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이를 한국의 민족 현실에 가둬 놓거나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로 특정 짓는다면 세계성을 고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김종삼 문학을 보편적 가치의 소통이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김종삼 시에 대한 기존 논의를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김종삼 시의 주제 의식을 모더니즘 시의 보편성 안에서 예술 지상주의적인 순수성으로 파악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의 역사 사회적 상황의 특수성으로 치부하는 경우다. 그래서 흔히 김종삼의 예술성을 보헤미안적 낭만성과 주변성으로 설명하거나 아예 귀족성으로 특화시킨다. 그러나 그의 시에 수없이 등장하는 이국적 이름과 낯선 풍경을 방황하는 영혼의 폐쇄적 기질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왜 그가 어린이에게 그토록 무거운 시적 섬광을 쏟아냈는지 전통적 상상력으로는 다가갈 수 없다. 김종삼은 세계인으로서 보편성을 소유했고 한국인으로서 특수성을 담지했다. 이 점이 김종삼의 코스모폴리탄적 기질이다. 그것은 인류 보편주의적 개방성의 측면으로 폐쇄적 보헤미안 기질과 다르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평화’의 모티프는 한국적 가치를 넘어 보편성을 띤다.
밤하늘 湖水가엔 한 家族이
앉아 있었다
평화스럽게 보이었다
家族 하나하나가 뒤로 자빠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人形같은 屍體들이다
횟가루가 묻어 있었다
언니가 동생 이름을 부르고 있다
모기 소리만하게
아우슈뷔츠 라게르
— 「아우슈뷔츠 라게르」 전문
1947년 봄
深夜
黃海道 海州의 바다
以南과 以北의 境界線 용당浦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 「民間人」 전문
예를 들어 위 두 편의 시는 생명을 두고 펼치는 인간 본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각기 시공간을 달리함에도 동일하게 인간 비극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아우슈뷔츠 라게르」는 이 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하나둘 형장의 이슬로 쓰러져 가는 가족의 죽음을 스케치하고 있다. 「민간인」은 남북 분단을 배경으로 어린 생명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한계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두 편의 시는 독자에게 인간의 보편적 인식론으로서 동양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서양의 ‘박애philanthropy’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죽음으로 희생되는 서사 앞에 ‘나’와 ‘남’이 소통해서 하나가 되는 생명의 자기 확대, 자기 신장을 경험할 수 있다. 독자는 유태인의 죽음과 한국인의 죽음을 통해 개체적 자아로서의 ‘나’를 떠나 타인이 겪었던 슬픔을 공유한다. 이는 어린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목숨을 연명해야 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처지를 함께 하는 심정적 동조이며 평화의 확산이라 할 수 있다. 비
록 유럽의 전쟁 상황과 한국적 분단 상황이 다른 시적 배경을 이루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너무도 보편적이다. 이는 유럽이라는, 혹은 한국이라는 공간의 국지적 형식에 가둘 수 없는 소통적 보편성을 띠는 ‘평화’라 할 수 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북치는 소년」 전문
이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서 ‘형식 없는 평화’가 드러난다. 저 ‘북치는 소년’은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태인 소녀여도, 삼팔선을 넘나들며 황해도 앞바다에 빠뜨린 영아여도 괜찮다. 김종삼은 그의 시에 한국적인 전통적 아름다움을 담지 않았다. 간혹 읽히는 가족 간의 연민과 이웃과의 공동체 의식조차도 밑바탕에는 인류 보편의 인본주의人本主義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 전쟁은 우리만의 고립된 고통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앓고 있는 전염병과도 같다. 그러기에 그의 눈에 비치는 유태인 학살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평화에 어떤 형식을 부여해서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리는 안식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김종삼 시에 나타난 평화의 추구는 분단된 한국 민족만의 형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비극이 곧 인류의 비극으로서 확산될 때 큰 범주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김종삼의 시 속 낯선 이국 풍경과 사람들이 공존하며 그렇게 낯설지 않다. 현대 시 문학의 세계성 측면에서 이와 같은 김종삼의 보편적 인식에 바탕을 둔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세계인의 보편적 휴머니즘과 융합하며 소통할 것이다.
3. 김종삼 문학의 미래
김종삼 문학을 전쟁과 음악과 평화로 주제화하려는 것은 김종삼 문학의 정수이기도 하지만 한국 문학의 주제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전쟁의 비극성을 극복하는 것과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과 인간적 사유를 최고선으로 앞세우는 것이 곧 세계 현대 문학이 보편적으로 걸어온 길로서 김종삼 문학이 거기에 합치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문학의 지역성을 극복하고 오랜 기간 노정됐던 국가 중심주의를 벗어나 가로질러 새로운 영역에 한국 문학을 가져다 놓으려는 모색이기도 하다.
김종삼은 북한에 고향을 둔 월남 실향민이며, 일본에서 떠돌던 디아스포라이며, 남한에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변변히 없는 주변인이다. 이 땅의 평범한 소수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연민해서일까 김종삼은 특별히 남긴 유산도 없으며 시인으로서 문학사에 기록할 만한 흔적을 꼼꼼히 챙기지도 않았다. 이러한 김종삼의 정체성은 역설적으로 한국 문학이 지향할 새로운 영토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다음에 대해 재조명해야 한다.
첫째는 월남越南 문학이다. 분단 이후 문학인 대부분이 월북하거나 납북되었다. 그런 이유로 남한 지역으로 한정된 한국 문학은 얼마나 협소한가. 더구나 영토 개념에 앞서 민족 동질성의 측면에서 하나의 문학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이성적 판단임에도 북한 문학은 금기시된 상태다. 이를 아우르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월남한 문학인들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은 서북 청년회처럼 우익 보수 단체의 일원으로 상징화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남한 권력에 경도될 수밖에 없었던 월남 문인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일괄하여 백안시한다 해서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종삼도 월남 문인의 일원이었다. 그가 교류했던 예술인들이 그랬으며 그가 주로 시를 발표했던 매체도 그들이 관여한 잡지들이었다. 일례로 김수영이 기존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김종삼과 더불어 이들 매체에 시를 오히려 더 많이 개재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둘째는 일본 문학 이입사이다.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은 일본 주류 대학의 유학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것만이 모든 문학 현상의 전부라 할 수 없다. 김종삼이 유학했던 동경문화학원이나 김종문이 유학했던 아테네 프랑세스는 정규 대학은 아니지만 또 다른 양상의 문학을 이입하는 통로였다. 일례로 김수영이 접촉했던 일본의 미즈시나 하루키 연극 연구소는 그의 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가. 특히 동경문화학원은 일본 정부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가운데 문화의 전위적이고 세계적인 경향을 고수했다. 그곳을 거친 사람들은 그냥 일본인이 아니었으며 그곳을 거친 한국인 역시 그냥 한국인이 아니었다. 한국 문학의 경직된 상상력 속에 낯선 목소리로 존재했다.
셋째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전통적 상상력과 폐쇄성에 균열을 가한 것은 프랑스 상징주의가 지대하다. 그것도 이입 초기 김억 시절의 단순한 수수授受 관계에서 벗어나 한국 전쟁 이후 영향을 미친 관계를 비교 문학적으로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온전히 문학성과 예술성의 차원에서 한국 문학의 정체성을 살피는 일이며 다양성을 기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한국 문학의 미래는 중심에서 벗어난 소수자 문학을 통해 새롭게 갱신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종삼 문학의 앞날이기도 하다.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