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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동물에세이
· ISBN : 9791197259159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2-01-31
책 소개
목차
1부 거친 마음의 날씨에 대처할 때
2부 흩어진 조각이 만든 무한한 별자리
3부 선을 용감하게 따라가다
4부 사랑의 얼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39.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시집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를 펼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구절이 있다.“인간을 사랑해 준 아롱이, 자연이, 사랑이, 궁금이 그리고 지금 제 곁에서 숨 쉬는 밤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 시집 맨 앞에 실린 반려동물에게 보내는 헌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책에 이 문구를 넣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요?
: 사실 가장 먼저 정한 게 이 헌사였습니다. 이 문구를 넣겠다는 결정은 단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요. 첫 시집 출간 직전에 반려견 아롱이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시기를 통과하는 것이 무척 괴로웠어요. 아롱이가 첫 시집을 준비하는 동안 저를 떠나지 않고 지켜준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느끼게 해준 사랑이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보낸 것은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그들이 안겨주고 간 큰 사랑이 있기에 그 온기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요.
이 시집을 쓰는 동안 저는 인간의 힘으로만 서 있지 않았습니다.
아롱이가 제게 남겨준 것, 지금 함께 생활하고 있는 반려견 밤이가 제게 보태준 커다한 힘이 있기에 서 있을 수 있었어요.
- 표지화를 직접 그렸다고 들었습니다. 평소에 그림을 좋아하시는지, 그림을 그릴 때와 시를 쓸 때의 정다연 시인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
: 아롱이가 떠나고 나서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 인연이 계속 이어져서 지금은 일년 넘게 화실에 다니고 있어요. 일년간은 아롱이만 그리다가 요즘에 코끼리도 그려보고, 닭도 그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법도 배우고 있어요. 시를 쓸 때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물음을 갖기보다는 제가 그리고 있는 대상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내가 한 존재를 이렇게까지 관찰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 같아요 그리는 대상의 털은 어떤 결로 흐르는지, 바람과 빛의 방향은 어떠한지, 무늬는 어떠한지요. 그렇게 그리다보면 어느새 그리고 있는 대상에 깊이 애착을 느끼게 됩니다. 시 쓰는 정다연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정다연은 대상에 집중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극과 극이 닿아 있듯 서로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요.
40. 혹시 거기에 있나요?
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나요?? 첫눈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내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공식적으로 첫눈이 인정되려면 서울기상관측소의 분석원들이 육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하는데, 이런 아직 사실은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첫눈은 내린 것이 아니다. 이것이 기상청의 입장이다. 마음 속에 눈이 내린다. 오직 나만 알고, 볼 수 있는 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눈.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내게 눈이 오는지 모른다. 그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더 거세져 내 마음 속 지붕과 리기나 소나무를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을 모른다. 붕괴되고 신음하는 것을 모른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상담 선생님이 내게 묻는다. “아롱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요즘은 아롱이에 대한 책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나는 고백한다. 두서없이.
“사실은요. 아롱이가 떠난지 이 년이 되었지만, 아롱이에 대해서 쓰는 게 두렵고 무서워요. 자꾸 피하게 돼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군요”
“네. 언제나 아픈 상처일 거예요.”?
아롱이에 대해서는 타인과 나눌 이야기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물꼬가 트이자 마음이 마구마구 흐르기 시작한다.
“힘들 때는 어떻게 했어요?” 선생님이 묻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가족과도 죽음을 나누는 것이 싫어서 매일 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조용히 울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 동물을 잃은 슬픔을 다른 사람과 나누러 하지 않아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말. 그 말에 왜이렇게 투명한 유리알처럼 남는 것일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데에서 오는 위안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유대감.
어떤 슬픔은 아무리 작게 쪼개려 해도 쪼개지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말을 하고 외쳐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롱이에 대한 책을 쓰는데, 정작 아롱이에 대해서 말하기가 어렵다니.
“아롱이를 생각하면 뭐가 가장 떠올라요?”
“그냥 웃고 있는 모습이요. 그게 다예요.”?
상담을 끝내고 책상에 앉아 아롱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지 사진을 들쳐본다.?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책을 내고, 누군가 다연씨의 글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나누고. 그런 경험이 다연씨의 상처를 다른 곳으로 이끌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 번도 누군가의 아롱이를 잃는 슬픔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혹시 거기있나요? 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나요? 물어보고 싶은 새벽이다.
저는 아직까지는 이 글이 제 자신에게 어떤 위로가 될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혹시 이 글이 닿게 되면, 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돌려줄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당신의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해요. 그 이야기가 저를 어디에 닿게 할지 궁금해요.? 답신 없는 편지를 유리병에 담아 바다에 보내듯, 문장을 모아 책을 쓴다.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이 녹아 내 머리카락을 적시고, 입술을 적시고, 손을 적신다. 눈이 멈추지 않는다. 나만 아는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공식적인 첫눈은 아직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