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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97626777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22-09-05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들어가며-다시, 길 위에 서서
책의 주요 등장인물-함께한 우리를 소개합니다
등교 준비
1장 시작하는 마음
첫걸음│그때 그 마음│명운
기록하는 목소리1 우리가 무릎 꿇은 이유-장민희
2장 다가가는 걸음
수소문│과일 주스│승낙│파란│출발 준비
기록하는 목소리2 나를 성장하게 만든 그 시절-정난모
3장 바라보는 마음
서서히, 가까이│일터│전우애│울분
기록하는 목소리3 지역에서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최보영
4장 사라져 간 걸음
근원│공진초, 공진중 아이들 I│공진초, 공진중 아이들 II│목격자들│허준 선생의 생각
기록하는 목소리4 평생교육이 필요한 이유-조부용
5장 부딪히는 마음
우리는 오늘도 배우며 성장합니다│산 넘어 산│동해에서 벌어진 일│정치의 존재 이유│정기총회│지현이의 졸업
기록하는 목소리5 장애인도 세금 내는 시민이 될 수 있기를-이은자
6장 멀고 먼 걸음
더 나은 통합교육을 꿈꾸며│데자뷔│미궁│동해시 장애인학부모회를 찾아서│일당백│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국가의 할 일
기록하는 목소리6 나의 투쟁, 우리의 투쟁-김남연
7장 마주 보는 마음
악몽│비구름이 걷히면│인터뷰 신(Scene)│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비장애 자매형제들│막판 진통
기록하는 목소리7 나는 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입니다-김종옥
8장 함께하는 걸음
등교│후반 작업│월드 프리미어│작전명: 모차렐라 치즈│호사다마
그 후의 이야기-김정인 감독과 어머니들의 짧은 대담
나가며-엔딩 크레딧
리뷰
책속에서
지현이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나면 제아무리 미식가라 한들 식욕이 있을 리 없다. 어렵사리 식탁 앞에서 씨름하고 나서는 세수하고 머리 감고 옷을 입어야 한다. 이외에도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고 지현이 혼자서는 아직 능숙하게 해내기가 어렵다. 모든 과정을 한 시간 안에 끝내야만 늦지 않고 버스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엄마와 딸은 이인삼각을 하듯 단짝이 되어, 3년째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이은자와 안지현이 비슷한 모습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일전에 만난 한 어머니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전날 밤 미리 자녀에게 양말을 신겨 재운다고 말씀하셨다. 대한민국 장애 학생들의 학교 가는 길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하긴, 촬영하는 내내 뭔가 ‘초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었다. 일치단결한 군중이 분출하는 압도적인 에너지와 그에 대비되는 장애인 부모들의 고군분투, 게다가 강당 천장에서 강렬하게 내리쬐던 조명 빛까지 더해 시공간의 무질서는 서서히 현실 감각을 마비시켰다. 경미한 현기증에 시달리며, 무엇에 홀린 듯 간신히 그 시간을 지켜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죽하면 목격하는 그 풍경이 차라리 ‘몰래카메라’이기를 바랐을까? 그런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질어질한 상황이 고조될수록 내 안에 어떤 확고한 의지가 자리하게 된 것이었다. 여러 기준을 두고 꼼꼼히 쟀다기보다 촬영 중 어느 순간부터 덜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장애인 부모들의 여정을 ‘기필코’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고집은 이렇게 솟아났다.
서울시 내에서 마지막으로 특수학교가 개교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시기였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 문제만 해도 이러한데 주거, 일자리, 돌봄, 의료지원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벼랑 끝에 선 자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교육을 비롯, 전 생애주기와 맞물린 발달장애인종합대책을 마련하고자 부모들은 교육청으로, 교육부로, 국토부로, 복지부로, 국회로, 시청과 시의회로, 청와대 앞으로, 필요하면 어디든 달려가서 온몸을 던졌다.
장애 자녀의 부모들은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하고 삼보일배도 했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는 사이 평범한 엄마들과 아빠들은 거리의 투사가 되어 있었다. 투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입에 낯설지만 마음만은 더욱 단단해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