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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7691409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2-01-20
책 소개
목차
▮ 1부
어화
실억섬
갈호수 포구
바지락
늑대의 시간
치과 병원을 나오며
닭의 묵언
거미의 식사
수채화
초침
발자국
콘크리트 불통
메타세쿼이아
발톱 깎기
안구건조증
▮ 2부
느티나무
유리 공장
생선의 중앙
빨간 동그라미
샘터
약산 염소
황혼의 블루스
벚꽃 구경
프로필
백한
쉬작
산책
설날
박종권 세한도
무동리
▮ 3부
햇빛 골짜기
점등
못
바람 든 무
나무
섬
강아지풀
청풍호
동백리 개화
작두샘
대숲 울음
비빔국수
첫눈
고려청자
봄눈
가을빛
▮ 4부
석류
강진
여름
땅울림
밀양 박씨 밀양에 가다
창녕
농어촌버스
벌교 바람
맹골수도
옛날 옛날
벌교역 1
벌교역 2
월하리
월송리
▮ 해설_ 갈망의 기원(基源)과 해원(解寃)의 풍경 / 김윤환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화 漁火
소금기 흠뻑 머금은 포구
살아 뿔뿔 기어 다니는 상처들
거품 뱉으며 비틀비틀
물결 틈으로 옆걸음질 치면
선창 끝엔 조각달이 쉬고 있다
달빛도 여기선 잠 못 든다
어둠을 너무 마셔 속이 상한 듯
눈 헹구고 들여다보면
비린 파래를 덮고 기억을 뒤척이다
흰 눈물 뿌리며 돌아가는 꿈이 있다
그렇게 아득히 젖은 부부는
서로의 시린 몸을 정성껏 씻어 주고는
뻘에 박힌 닻을 숨 고르며 끌어 올린다
스르륵 물길이 열릴 때마다
이토록 울먹이며 스며드는 먼동이 아니던가
일생을 질척이는 노을로 불 댕겨
다시 키워 내는 한 떨기 어화
멍든 뱃머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낯익은 세상에 끝없이 그물 던지는 시간이다
회관 옥상의 태극기 파닥이고
갈증 난 확성기 목젖도 붉어진다
불빛 쓰라리게 세수하는
아주 오래된 새벽
바지락
할머니가 입을 단단히 다물고 누웠다
꿈틀 댈수록 더 뿌리내리던 생계의 늪에서
노을에 꺾인 할머니의 허리
엄마는 그 노을을 마시며 바지락을 캐 왔다
바지락은 놀라 입을 다물었지만
써그럭써그럭 서러움을 채 감추지는 못했다
펄펄 끓는 국솥 뚜껑을 열었을 때
애써 입을 벌려 제 속을 보여준 바지락
바다 울음이 솨르르 밀물지고
아득한 날들이 잘피처럼 얽히는데
온몸 뜨거워진 그는 왈칵 눈물을 쏟아 냈다
엄마가 그 눈물을 떠 할머니의 입술에 대자
쩍하며 잠깐 열린 할머니의 나라
거기 깜깜한 섬들이 녹고 있었다
돛단배가 꽃구름으로 승천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에선 뽀얀 진국이 흘러나왔다
뻘밭의 갯물 같았다
갯물은 할머니의 얼굴과 마른 몸을 적시고
엄마의 눈자위로 빠르게 흘러갔다
낡은 소쿠리를 집안에 둔 채
다시 입을 굳게 다문 할머니는
뻘배를 타고 아스라이 떠났다
무적 소리가 길게 저물고
마당까지 밀고 들어온
수평선에 불이 붙은 날이었다
껍데기만 남은 바지락들이
겨우내 돌담 밑에 모여 있었다
바시락바시락 흰 쌀밥 눈송이를 받고 있었다
유리 공장
가마 속 불덩이 하나 받아와
긴 철 막대 끝에 한 방울 꿈을 빚었다
말랑한 눈물이 벌겋게 달궈진 엿처럼
제 틀을 찾아 녹아 들어가고
머리 터지도록 불풍선을 불며 아버지는
시뻘건 붕어가 되었다 목 힘줄 땅길수록
부풀어 투명해지는 황홀
어디선가 멍들고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이
화려한 이력도 없이 그저 담백하게 흘러들어
뜨겁게 살을 나누고 섞이며
한 틀에서 각기 다른 빛깔의 꽃으로 피어날 때
새 목숨으로 미끈둥, 솟구치는 절정의 기염
꿈이 응고되면 쩌렁한 별 하나
그토록 태어나는 것이었다
불끈거리는 아버지의 가슴에
땀으로 달라붙어 반짝이는 가족의 얼굴들
풀무불 속에서는 오로라의 혼이
충혈된 하늘처럼 들끓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