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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김대중, 그들이 만든 세상

박정희·김대중, 그들이 만든 세상

강성주 (지은이)
OUTLOOK(아웃룩)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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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김대중, 그들이 만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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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박정희·김대중, 그들이 만든 세상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91197821004
· 쪽수 : 708쪽
· 출판일 : 2024-06-25

책 소개

1961년에서 1979년까지 18년간의 박정희와 김대중, 김대중과 박정희의 엇갈린 길을 외신(外信) 기사를 길잡이로 삼아 살펴본다. 1960~70년대 외신은 지금과는 달리 막강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 국내 언론이 다루기 어려운 뉴스를 전했고, 국내 언론과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고 전망을 제시했다.

목차

서문 / 7

제1장 박정희?김대중 : 세상을 만나다 15
세상을 만나다 16/만주(?洲), 특이한 공간 18 / 1943년 11월, 도쿄(東京) 23 / 1943년 11월, 카이로(Cairo) 26

제2장 해방된 조국 / 39
군인 박정희 40 / 정치지망생 김대중 47 / 박정희 사단장을 찾아간 김대중 50

제3장 4?19혁명과 제2공화국 : 1960~1961 / 57
부정선거와 419혁명 58 |하야 그리고 망명 61 / 제2공화국 67 / 당선 그러나 쿠데타 72

제4장 박정희의 시간(1) : 쿠데타 77
5월 16일의 쿠데타 78 / 5?16 그리고 미국 79 / 쿠데타 뒷날, 미국 86 / 7월, 최초의 반혁명 사건 93 / 이주당(貳主黨) 사건 97

제5장 현실의 벽 : “도둑 맞은 폐가” 101
답답한 현실 102 / “도둑맞은 폐가” 106 / 동갑내기 대통령, 박정희와 케네디 111 / 경제개발 “돈이 없다” 116 / 민정이양 제5대 대선(1963), 남여북야(南?北野)
118 / 독일로 가는 광부와 간호사 122 / 한일(韓日)회담 그리고 미국 125 / 베트남(월남) 파병 132

제6장 박정희의 시간(2) : 북한의 도발 137
제6대 대선(1967), 동여서야(東?西野) 138 / “박정희 멱 따러 왔수다” 144 / 미국 “보복은 안 돼” 147 / 대통령의 충격 152 / 북한식 베트남전 지원 155 / 대통령의 하루 156 / 드디어 3선 개헌 159

제7장 짧은 만남 : 1968.1.1 167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더라고” 168 / 79년 여름, 마지막 기회 170 / “내공이 있어요” 172

제8장 김대중의 시간(1) : 국회의원 179
1963년 목포(木浦) 당선 180 / 1967년, 치열했던 ‘목포 전투’ 186 / 40대 기수
192 / 젊은 야당 대통령 후보 200 / 첫 정책대결 203

제9장 “권불십년”(權不十年) 207
“사명의 70년대” 208 / 10년 집권의 그늘 210 / 빛을 찾아서 223 / “한 20년 집권합니다” 227

제10장 김대중의 시간(2) : 야당 대통령 후보 235
대선 앞둔 한국 언론 236 / 후보, 미국 방문 239 / WP “다시 전쟁은 안 돼” 246 / NYT “선거 부정만 없다면, 이긴다” 252 / 새로운 신화, 장충단공원 유세
257 / “성장” 대 “변화” 263 / 박정희, 3선 대통령 267 / 찜찜한 승리, 나쁘지 않은 패배 269

제11장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서다 273
“좀 특수한 결심” 274 / 유기천 교수 “총통제 연구” 280 / 파동, 난동, 반란 283 / 수염 뽑힌 국회의원 290 / 두번째 위수령 292 / 국가비상사태 선언 294
/ 추기경의 성탄(聖誕) 강론 299

제12장 10월 유신(維新) 305
멀어지는 두 사람 306 / 괌(Guam) 독트린 310 / 위기의 시작, 주한 미군 철수 313 / 북한의 평화공세 : NYT와 WP 초청 323 / 박정희 “1980년 쯤 만나자”
336 /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341 / 박정희의 권력 의지 346 / 10월 유신(維新)
348 / 유신, 누구의 구상인가? 352 / 유신국회(제9대) 구성 355 / NYT, “아직도 한반도는 위험하다” 357

제13장 방위산업 : 막다른 선택 371
자주국방 372 / “우리도 원자폭탄을 연구해야겠어” 374 / 방위산업 1차 시도 379 / 방위산업 2차 시도 381 / 나라를 지켜낸 결정 384 / 남?북한과 일본의 핵 능력 386

제14장 김대중의 시간(3) : 납치 393
일본에서 맞이한 유신 394 / 미국으로 398 / 한민통(韓民統) 결성 404 / 납치(拉致) 406 / 누구의 지시인가? 418 / 진짜 이후락이 했나? 422 / 쏟아지는 기사(1) : Washington Post 425 |쏟아지는 기사(2) : New York Times 435 / 쏟아지는 기사(3) : Christian Science Monitor 443 / 눈속임 연금 해제 449

제15장 긴급조치와 저항세력: 재야와 대학가 457
유신 1년만의 반대 시위 458 / 한국의 재야(在野) 461 / 재야, 행동에 나서다
466 |대통령 긴급조치권 471 / 긴급조치 1, 2호 472 / 긴급조치 4호 474 / 구속된 변호사 476 / 육영수 여사 피격 480 / 긴급조치 7호 485 / 긴급조치 9호 485 / 유신시대의 언론자유 486

제16장 박정희의 시간(3) : 남북한, 체제경쟁 끝나다 493
신(神)의 옷자락을 잡다 494 / 중화학공업화 추진 504 / 수출 100억 달러 506
/ 공업화에 앞선 북한 510 / 북한의 위기와 주체노선 512 / 한국, 어려운 출발 516 / 체제경쟁 끝나다 523

제17장 김대중의 시간(4) : 격리 531
가택연금 532 / 백지(白紙) 광고 534 / 베트남 패망과 남침용 땅굴 537 / 3?1 민주구국선언 540 / 못으로 쓴 편지 543 / 다시 “김영삼을 총재로!” 563

제18장 코리아게이트(Koreagate) 549
열리는 코리아게이트 550 / 김형욱(金炯旭) 전 중앙정보부장의 증언 558 / 코리아게이트 전말 560 / 청와대 도청(??) 564 / 미국의 ‘도청 본능’ 568

제19장 박정희의 마지막 시간(4) :권력의 공백 573
유신 2기의 출발(1978) 574 / 끈질긴 비리와 총선 참패 576 / 권력 내부의 불협화음 584 / “선명야당(鮮明野?)” 김영삼 총재 587 / 통치 자금 “1년에 30억~40억 필요” 589 / YH 사태 591 / 김영삼 “미국의 결단” 촉구 594 / 커지는 눈덩이 603 / 대통령의 마지막 만찬 606 / 역사의 가정(?定) 614 / “박정희, ”아주 주도면밀한 통치자” 617

주석 / 참고문헌 632
후기 704

저자소개

강성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1952) 문경에서 성장했다. 문경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영어과)을 졸업하고, 강원도 삼척에서 교사로 1년 근무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문화방송(mbc)에 입사해(1978)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 등에서 취재했으며, 사회부장, 전국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등으로 일한 뒤 베이징특파원, 보도제작국장, 보도국장, 논설위원으로 근무했다. 이어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서울 지국장(2007~2010)을 거쳐 포항mbc 사장(2010~2013)으로 일했다. 언론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경북대학교와 위덕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한국현대사 70년」, 「매스컴과 사회」 등을 5년간 강의했다. 문화방송 재직 시 mbc노동조합 위원장과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한국기자협회 활동에도 참여했으며, 1991년 걸프전 취재로 관훈언론상과 한국기자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사)이육사추모사업회이사로 독립운동가요 시인인 이육사 현창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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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해방되던 해, 박정희는 28살, 김대중은 21살이었다. 박정희는 해방된 조국에서도 군인이었고, 김대중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청년 사업가였다. 두 사람 모두 일제 식민지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보냈기에 개인적 취향이나 가치관, 정치 현안이나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 또 그 뒤의 삶에 있어서까지 알게 모르게 일제 (日帝)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1960년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일어난 학생과 시민들의 4·19혁명 은 모든 분야에서 각성의 계기가 된다. 전쟁을 치르면서 엄청나게 팽창한 군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군 내부 역시 혼란했고 부패 또한 심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군에 대한 외부 시선도 그리 곱지 않았다. 4·19혁명 이후 젊은 장교들은 정군(整軍)운동을 이어간다. 김종필(金鍾泌), 김형욱(金炯旭), 길재호(吉在號)
등 육사 8기(3~6개월 교육, 49년 5월 임관) 영관급 장교들은, 부정선거에 협조하고 부패한 군 수뇌부의 퇴진과 숙정(肅正: 부정을 엄격히 다스려 바로잡음)을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에 이들은 '그렇다면 군 내부의 부패도 문제지만, 나라의 발전이 이렇게 정체돼서야 희망이 없다. 다른 나라들처럼 혁명(革命)을 해서 나라를 싹 바꿔버리자'고 결의한다(1960.9.10). 연수를 통해 미국과 한국의 비교할 수 없는 격차를 경험한 장교들은 마음이 급했다. 나라를 빨리 전진할 수 있도록 바꿔야 했다. 박정희 소장은 강직하고 청렴한 장군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 「군인 박정희」 중에서


김대중은 당시 사업이 번창해 목포에서 지프(Jeep)를 타고 다니는 몇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1·4후퇴로 정부가 부산에 꾸려지자, 김대중도 사업 무대를 부산으로 옮긴다. 나라는 전쟁 중이었지만, 김대중은 나름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를 잡았고,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망이 강했다.

김대중으로서는 네 번째 낙선이다. 그는 54년(3대 총선, 목포), 58년(4대 총선, 인제), 59년(보궐선거, 인제), 60년(5대 총선, 인제) 계속해서 낙선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장면 총리의 신임을 받던 김대중은 집권 민주당의 대변인(1960.9)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었다. 민주당 정권도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시위가 줄어들면서 사회도 조용해지고 현안인 한일회담과 경제개발 계획 등을 챙기면서 장면 총리의 미국 방문도 검토한다.
1961년으로 해가 바뀌면서 김대중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인제군에서 59년 보궐선거와 60년 5대 총선에서 김대중을 연거푸 이기고 국회에 진출했던 경찰서장 출신의 자유당 소속 당선자(전형산)가 3·15 부정선거에 관련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피선거권 몰수로 낙선 처리된다.
김대중은 민주당 후보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이번에는 당선된다(5.13). 네 번 떨어지고 다섯 번째의 당선, 삼전사기(三顚四起, 세 번 넘어지고 네 번 일어난다)를 뛰어넘는 '사전오기'였다. 정치에 입문한 지 7년, 37살이었다. 14일 인제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민의원[국회의원] 당선증을 받고 김대중은 슬펐다. 슬픈 정도가 아니라, 통곡했다.
- 「당선 그러나 쿠데타」


박정희의 길은 5·16으로 시작됐지만, 김대중의 길은 5·16으로 꺾이게 된다. 조국 근대화의 전기를 만든다는 군부의 거사는 '의도치 않게' 김대중 개인의 불운(不運)으로 이어진다. 박정희는 이를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술회했다.
앞서 본 5월 17일 자 경향신문도 제목에서 쿠데타(Coup d'tat)라고 했지만, 5·16의 호칭은 상당 기간 쿠데타, 군사혁명(革命), 군사정변(政變) 사이를 오갔다. 사전을 찾아보면 그 말이 그 말이지만, 군사정부에서는 '쿠데타'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싫어했다. 자신들은 무력을 동원해 권력을 탈취한 쿠데타군이 아니고 나라 전체를 개조하는 세력, 혁명 세력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쿠데타 소식에 미국은 아연 긴장한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한국군의 동향 특히 쿠데타 가능성을 예상하고 거론되는 장교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박정희도 물론 포함돼 있었다. 당시 미군은 한국군 대대(大隊) 단위 부대까지 고문단을 파견하고 있었다.
- 「5월 16일의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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