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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824906
· 쪽수 : 520쪽
· 출판일 : 2022-03-30
책 소개
목차
제1장 오랜 시간의 열병, 잠시 동안의 열병.
제2장 맡을 수 없는 잔향.
제3장 사뿐히 내려와 자리 잡은 한 조각의 낙엽.
제4장 언젠간 도달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제5장 음악에 몸을 싣고, 술에 마음을 적시고.
제6장 하얀색과 검정색, 그리고 선.
제7장 흘러흘러 여기까지.
제8장 소망, 열망, 갈망, 욕망.
제9장 일생에 단 한 번 주어진 선물.
저자소개
책속에서
대학 입학 후 하는 일이라곤 곧잘 술을 마시는 것뿐이다. 신입생들이 으레 그렇다지만, 다른 이들이 해방감 덕분이라면 난 상실감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낭만과 자유가 넘칠 것이라고 들었건만 인생의 좌표와 꿈을 잃어버린 내겐 공허함만 남았다. 항시 허무함이 촘촘하게 둘러싸고 간혹 냉소만이 튀어나올 따름이니, 술이 유일한 위안이다. 딱히 별 다른 취미거리도 없거니와 술에 젖어들었을 때 펼쳐지는 몽환이 자꾸만 술잔을 들게 한다. 조금이나마 세상이 달라 보여서다.
우산을 같이 쓰고, 한적하기 그지없는 좁디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아영은 비에 젖어 오들오들 떨면서도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평소보다 유난히 말이 많았다. 허나 그녀의 잔뜩 잠겨버린 목소리는 빗소리에 파묻혀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우산 아래에서 우린 몸과 몸을 애써 접촉하지 않았지만 우린 발걸음을 굳이 재촉하지도 않았다.
언제부턴가 빗소리만 들리는 적막이 존재했고,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주변의 정적을 쫓아냈다.
언젠가 주룩주룩 비가 청승맞게 오던 날에는 비 오는 날에 썼던 글이라며 자작시들을 하나하나 우수에 찬 음성으로 읽어줬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여름 크리스마스’라는 글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여름이라면 눈이 오기보다는 비가 오길 고대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도입부에선 기발한 발상에 놀라 ‘풋’하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아영이 읽어내려 갈수록 유쾌함보다는 슬픔이 남는 시였던 걸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