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934391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2-12-23
책 소개
목차
진정한 무소유•37
함석헌과 등불•56
거울 사연•64
스님, 한 말씀만 써주세요•69
초콜릿 하나 드릴까요?•81
수녀의 출가•90
너의 발을 씻어주마•98
3장 불속의 꽃이 되어인과•103
어머니•108
미소 지으며 가노라•112
자야의 사랑•118
텅 빈 충만•134
수류산방•138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161
해탈의 해방구•183
연꽃, 드디어 피다•190
정년이 없다•195
올챙이의 항변•199
병마•203
이제 돌아가노라•207
세상과의 이별•223
불속에 피는 꽃•227
에필로그•233
법정 스님 연보•240
저자소개
책속에서
효봉 스님이 가시고 1년 후인 1967년, 법정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동국역경원’ 개설에 참여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빨래판으로 두지 않으려면 어려운 한문투성이의 글을 쉬운 언어로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정은 역경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계속 글을 썼다. 타악기를 두드리듯 그동안 잊고 있던 시어가 터져 나왔다. 이상한 현상이었다. 축복처럼 머릿속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미소
어느 해던가
욕계 나그네들이
산사의 가을을 찾아왔을 때
구름처럼 피어오른
코스모스를 보고
그들은 때 묻은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이 한때를 위한
오랜 기다림의 가녀로운 보람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손이 있었다
앞을 다투는
거친 발길이 있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지니지 못하는
어둡고 비뚤어진 인정들……
산그늘도 내리기를 머뭇대던
그러한 어느 날
나는
안타까와하는 코스모스의
눈매를 보고
마음 같은 표지를 써붙여 놓았다.
《대한불교》1964년 9월 27일 (법정 스님 등단작)
이 시가 덜컥 붙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 선에 든 사람이 셋이었는데, 첫째로 실렸다. 아, 이제 시인이 되었구나. 법정은 자신의 희열을 못 이겨 산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때 같이 뽑힌 이들이 시〈불상〉을 쓴 석성덕, 〈이 눈물을〉이라는 시를 쓴 김원각이었다.
성철 스님은 법정이 보는 앞에서 대필묵을 휘둘러댔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스님, 스님이 지금 쓰시는 글은 문자가 아닙니까?”
성철 스님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대로 대필을 휘두르다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무방(無方)이다.”
“무방?”
법정은 자신도 모르게 되뇌었다. 그제야 성철 스님이 시선을 들어 법정을 쏘아보았다.
“그 이치를 알겠느냐?”
‘무방’이라면 모양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모양이 있으되 모양이 없는 세계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