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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에서 기둥으로

굼벵이에서 기둥으로

(죽는 하나님의 일, 수정증보판)

김평강 (지은이)
요나고래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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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에서 기둥으로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굼벵이에서 기둥으로 (죽는 하나님의 일, 수정증보판)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98102393
· 쪽수 : 482쪽
· 출판일 : 2023-05-15

책 소개

개밥에 도토리처럼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외톨이가 본 성서 해석이다. 그러니 자유롭고 독단적이며 독특하다 못 해 외경(外經)스럽기까지 하다. 오랜 전통과 제도와 틀을 완전히 깨버렸다. 익숙함이 아니라 낯설기와 새로움의 눈을 가지게 한다.

목차

#에피소드 1. 굼벵이에서 기둥으로
#에피소드 2. 씨와 푸른 풀
#에피소드 3. 가죽옷에서 세마포 옷으로
#에피소드 4. 노아의 방주
#에피소드 5. 우리를 부르신 이유
#에피소드 6. 히브리인
#에피소드 7. 바늘귀로 들어간 야곱
#에피소드 8. 벽돌과 만나
#에피소드 9. 메추라기
#에피소드 10. 불로 녹인 금송아지 신
#에피소드 11. 물두멍
#에피소드 12. 여리고성
#에피소드 13. 질그릇
#에피소드 14.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
#에피소드 15. 나봇의 포도원
#에피소드 16. 쇠도끼와 나뭇가지
#에피소드 17. 엘론과 아일
#에피소드 18. 마아세르(십일조)
#에피소드 19. 성경
#에피소드 20. 예수 그리스도
#에피소드 21. 기록되었으되 1
#에피소드 22. 기록되었으되 2
#에피소드 23. 기록되었으되 3
#에피소드 24. 양의 우리에서 꺼낸 복음
#에피소드 25. 갈릴리
#에피소드 26.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에피소드 27. 너는 율법을 어떻게 읽느냐
#에피소드 28. 십계명 제7계명
#에피소드 29. 열 처녀 비유
#에피소드 30. 옛 주인과 새로운 종(달란트 비유)
#에피소드 31. 양은 오른편 염소는 왼편
#에피소드 32. 율법을 벗고 의를 덧입자
#에피소드 33. 주기도문
#에피소드 34. 젖과 밥
#에피소드 35. 조각과 몸
#에피소드 36. 성전세
#에피소드 37.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에피소드 38. 이제는 지팡이, 주머니, 전대, 양식, 돈, 두 벌 옷을 가지고 가라
#에피소드 39. 방언
#에피소드 40. 베드로와 가룟 유다
#에피소드 41. 너는 죽을 때까지도 강도다
#에피소드 42. 다시 찾은 153
#에피소드 43. 팔복 1
#에피소드 44. 팔복 2
#에피소드 45. 팔복 3
#에피소드 46. 팔복 4
#에피소드 47. 팔복 5
#에피소드 48. 팔복 6
#에피소드 49. 팔복 7
#에피소드 50. 팔복 8
#에피소드 51.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
#에피소드 52. 구제와 다락방

저자소개

김평강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대 중반까지 성령의 은사와 신비주의에 경도되어 기도원을 들락거렸다. 말씀 없는 초월과 뿌리 없는 꽃잎 속에서 맹신주의와 감정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늦모처럼 제철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르네상스와 같은 인문주의 문예부흥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학적 이성의 힘은 종교적 신념과 신앙의 밧줄을 풀어 버렸다. 비대해진 자아는 태양에 붙잡힌 공전주기를 박차고 스스로의 힘만을 의지한 채 떠돌았다. 그러다 여기저기 운석에 맞아 구멍 나고 파인 몸을 가지고 마침내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저자는 이곳에서 힘과 번영을 추구했던 소비자 중심적인 영미 신학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성서 해석의 자유를 추구했던 독일 자유주의 신학을 따라갔다. 그 결과 인본주의가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를 부러뜨릴 지경이었다. 영혼의 기운이 빠져나간 자의 짓눌림은 바위였고 연자 맷돌이었다. 제주로 내려가 목수가 되어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이스라엘을 여행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상의 신전들로 구멍 나고 깎여진 큰 바위산 앞에서 상처 난 예수님의 몸이 겹쳐 보였다. 마치 예수님이 도마에게 못 박힌 손과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시듯 구멍 나고 파인 바위산을 보여 주신 듯했다. 왜곡된 사상과 믿음으로 교회를 구멍 내고 훼손시켰던 지난날과 조우했다. 그리고 상처 난 바위산 쪽으로 당겨 안아주시는 듯했다. “괜찮다! 다시 시작해 봐!” 그제야 저자는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때부터 온 만물과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이 탄생한 시작점이었다. 지금은 교회 개척을 준비하며, 요나고래 출판사 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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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를 여섯 번 반복하는 인간의 모순과 이중성!
여리고 성도 하루에 한 번 6일을 돌아야 했다. 죽은 줄로 알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철옹성 같은 여리고 성! 바로 ‘나’였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 창조의 섭리와 숙명!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끝내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 예수로 인해 저녁이 없는 일곱 번째의 아침을 이루었다고! 여리고 성도 7일째에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은 기필코 우리의 밤을 죽이시고 반드시 일곱 번째의 부활의 아침만 있는 갈릴리에서 차려 주신 아침밥을 먹게 하신다는 소망을 품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죽이신다고 한다. 그것이 구약의 밤이며, 밤에 먹었던 유월절과 메추라기 고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구약의 고기를 먹고 죽어야 하는 육신의 밤이 지나면 그리스도로 살아나는 영의 아침이 밝아온다고 했다. 이는 율법과 죄로 먼저 죽고, 은혜와 진리로 다시 사는 구조로 읽힌다(요 1:17).

그래서 그 죽음의 식사가 끝나면 생명의 만나, 곧 아침의 양식이 새벽에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아침에 먹는 이 양식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먹어야 할 부활의 그리스도였다.

이처럼 저자는 성경을 두 개의 축으로 설명했다. 먼저 먹고 죽어야 하는 선악과나무(예수), 그리고 그리스도로 다시 살아나는 생명나무였다. 그래서 선악과는 하나님이 아담을 죽이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저자의 새로운 관점은 그간 인간의 입장에서 선택한 나무로만 해석한 나머지 인간 타락의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는 기존의 논리를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선악과 안에는 인간이 먹고 죽어야 하는 십자가의 나무가 숨어 있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았다. 그 인간의 죽음 이야기가 창조의 하나님이 죽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죽는 하나님의 자리에서 다시 사는 생명과 부활의 나무가 있었다는 뜻이다. 선악과로 죽고, 생명나무로 사는 그림이 펼쳐질 성경의 두 문이었던 셈이다. 이 두 그림은 창조의 어둠과 빛, 저녁과 아침, 땅과 하늘,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 바다와 뭍이라는 두 쪽으로 나뉠 그림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이 두 개의 세계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을 통해 하나로 통일되었다고 한다(엡 1:10). 그래서 비록 우리 인간은 저녁과 아침이라는 두 얼굴의 존재로 살아가지만 끝내 저녁이 없는 일곱 번째의 아침을 이루신 하나의 그리스도로 다시 창조된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간의 교회와 성도들은 예수의 힘만을 빌어 자기가 죽는 밤을 잊은 채 삼손이 취했던 사자의 꿀만 있는 아침만을 바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처럼 내렸던 떨어져 죽는 깟씨, 만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금 애굽으로 돌아가 자기 자랑의 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인간 노력의 무가치성을 대변하는 벽돌로 건축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만나는 반드시 죽음의 바다인 홍해를 건넌 후, 자신이 의지했던 양식이 다 떨어졌을 때 하늘에서 내렸다고 저자는 분명히 상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벽돌로 세우는 자기 힘의 건축을 중단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 태초의 양식이었던 죽어야 사는 씨를 먹는 아침의 존재로 거듭나 성경을 올바르게 읽기를...

결국 저자는 굼벵이와 지렁이, 짐승처럼 아래의 물과 풀만이 참 양식인 줄 알았던 교회와 성도에게 윗물과 죽는 씨를 먹는 하늘을 지향하는 기둥의 사람들이 되도록 이 책은 이끌고 있다.

이 책은 52주라는 1년의 시간에 착안해서 모두 52개의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1년이라는 반복되는 사이클 속에 사는 인생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가지고 품고 살아야 하는가를 오직 하나의 주제만으로 완성된 책이다. 그 하나의 주제의식은 죽는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간의 교회와 성도들은 자신들이 모두 살고자 하는 사람의 일에 착념하여 살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마치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처럼 사람이 바라고, 사람이 원하는 인본주의를 추구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되고, 인간다움을 실천해서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불렀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자기 번영과 자기 힘을 지키기 위해 빚어낸 구약의 신을 찾고, 히스기야 왕 때까지도 백성들이 품고 있었던 놋 뱀, 느후스단 앞에서 ‘비나이나’를 외쳤다는 의미였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죽는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면 되는데, 그 십자가 자체에 무슨 효능과 능력이 있는 줄 여기고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모세에게 알려준 모든 제사는 모두 자기 자신이 삭제되거나 부정되어야 했는데 오히려 자기를 살찌우는 투자금 정도의 어린양 영수증 예배였다고 이 책은 두들기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시내산 위에서 내려온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폭로시키고, 너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밝혀 줄 선악과와도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산 아래의 인간들은 처음의 아담처럼 자신의 어둠을 밝히고 흙투성이인 자신의 존재적 자리를 비추는 말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투영시킨 자기의 신만을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뜻과 의지로 조정되고 덧입혀진 자기 숭배의 신을 탄생시켰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내 돈으로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금송아지처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어놓으면 된다는 신이었다. 이것이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위로해 줄 금송아지 예배였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것이 에덴동산부터 존재한 짐승, 뱀의 논리였다고 한다. 선악과를 먹고 반드시 죽는 존재로 지음 받았던 인간에게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왜곡했던 비진리의 논리에 잡혀 살아왔다는 의미였다. 곧 하나님의 일은 인간을 죽이시는 것이었지만, 반대로 마귀의 일은 인간을 긍정하고 살리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 부정, 자기 부인, 자기 죽음만이 진리의 그리스도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각은 십자가 위에서 내 인생관, 내 세계관, 내 머리가 가시관으로 처절하게 박힐 때 또한 내 가능성의 두 손과 내 능력 발휘의 두 발이 못에 박혀 어떠한 힘도 쓸 수 없는 무력한 자가 됐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결국 이러한 자기 해체가 이루어졌을 때 노아 홍수 때의 40일의 비와 모세의 시내산 40일의 금식과 광야 40년의 세월, 그리고 예수님의 광야 40일의 금식이 이 땅을 부정한 진리의 비와 우리를 죽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탐지하고 자신들을 거인들 앞에 선 메뚜기로 평가절하했던 것처럼 자신들을 세상에서 맞아 죽는 메뚜기로 인식하길 저자는 바라고 있다. 이러한 “메뚜기 자아”로 가나안을 읽으면 가나안은 더는 젖과 꿀이라는 자기 번영과 인간 축복의 땅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젖과 꿀은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기가 먹을 “젖과 꿀(사 7:14, 15)”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임마누엘”이었다. 곧 자기를 죽여 우리에게 생명의 젖과 꿀을 내어 주실 예수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삼손과 같은 사자들을 반드시 죽여 어린양의 젖과 꿀로 먹이겠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가나안은 자기의 존재적 가치가 부정되고, 죽고자 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이유를 이렇게 밝히셨다고 한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 7:6-7)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작아짐의 원리에 있었다. 그렇지만 40일의 정탐의 기간을 자신이 부정되고 작아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10명의 정탐꾼들은 결국 가나안 입성이 불허되었다. 반면에 인간의 힘과 가능성이라는 자기 판단과 자기 경영을 부정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입성을 허락받았다. 특히 두 사람은 가나안 거인들을 자신들의 “먹이”로 고백했다(민 14:9). “먹이”는 히브리어로 ‘레헴’이다. 뜻은 음식, 떡이었다. “베들레헴”, 곧 “하나님의 떡집”과 같은 어원이다. 이는 하나님의 집에서 나오는 양식은 거인 같은 ‘나’가 먹히고 또 먹혀 작은 메뚜기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내 안에 사는 거인의 머리가 잘려 나가고 손발이 묶이는 죽음이 우리의 양식이라는 뜻이다. 곧 골리앗 같은 나를 죽이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먹어야 할 진짜의 떡이라는 의미이다. 결코 우리가 공룡이 되는 양식이 아니었다. 멸시받고 버림받고 채찍에 맞는 메뚜기로 사는 양식이었다.

예수님도 당시 세계의 지배자인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광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외양간 말구유”에 자신을 짐승 같은 우리의 먹잇감으로 격하시키셨다(눅 2:12). 이는 비천한 탄생의 몸으로, 마치 거인들 앞에 선 메뚜기로 우리의 영원한 떡과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과 같았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이 거인 같은 나를 부수시고 죽이실 때 우리는 메뚜기가 되는 그 죽음의 양식을 잘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가나안은 거인 같은 내가 꺾이는 자기 죽음의 전쟁터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세상 왕으로 살고자 하는 내가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살아나는 땅이 가나안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줄기차게 말한다. 성경에서 우리의 존재적 가치를 거인들의 발자국으로 읽지 말고,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은 존재로 낮추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자로 읽을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땅의 힘과 번영이라는 기준과 가치를 따라가지 말고 오직 노아의 윗물과 모세가 받았던 산 위의 말씀과,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예수님이 전해주신 산상수훈의 팔복을 향해 믿음의 눈을 위로 향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결국 이 위는 이 땅을 죽이고 올라간 성령의 다락방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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