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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8204622
· 쪽수 : 149쪽
· 출판일 : 2023-09-13
책 소개
목차
<꼬리가 잘린 도마뱀>
<신세계로부터>
<아까시절>
저자소개
책속에서
꼬리가 잘린 도마뱀
Lizard whose tail has been cut off
2020
못다 이룬 꿈이 있나요.
있다면,
꼭 이루길 바라요.
나는 현실을 살아내기가 버거워
꿈을 꾸었지만
알고 보니 그 꿈조차도 헛것이었지 뭡니까.
모든 게 내 탓입니다.
내가 전부 그르쳤어요.
나는 이제 오갈 데가 없습니다.
완벽한 검은색의 밤은 없다.
그 밤도 그랬다. 여름 장마의 습기가 축축하게 깔리고 운명이 짙은 안개를 토해낸 그날 밤에도 가로등이 뻔뻔스레 거리를 밝혔다. 검은색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온갖 색이 존재하게 되었지만, 그 솜씨가 과히 어설퍼서 그 색들은 흐리멍덩하기만 했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에게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집이 잠든 게 아니어서 집 안의 은근한 불빛이 밖으로 누설되니 이미 선명하지 못한 밤을 어지럽히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 딱하게도 집 없는 고양이들이 치정 싸움을 하느라 이따금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고 개구리가 방정맞게 울어 댔다. 끈적한 공기 속 희미한 웃음소리와 음악소리가 뒤엉켰고 드물게 부는 바람이 그 소음을 손가락으로 겨우 풀고 자리를 떴다.
열두 시를 가리키는 종소리가 울리자 출처 없는 곳으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신세계로부터
I’m on top of the new world
2022?
지금은 누구나 우러러보는 그 타워가 처음 완공되었을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하죠. 과감하고 감각적인 도시 한복판에 미욱하고 미운 고철 덩어리가 떨어졌다고 개탄했답니다. 마음이 풍만한 군중의 한가운데에 앙상한 촉루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죠? 한 목걸이 주인은 그 타워가 너무 보기 싫은 나머지 그곳에 내부한 레스토랑에서 종종 식사를 했습니다. 그럼 그의 시야에는 그토록 우아하고 낭만적인 도시가 다시 막힘없이 펼쳐졌겠죠. 그런데 말이에요,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것을 눈 밖으로 떨치기 위해 그 속으로 스스로 들어갈 수밖에 없음이 얼마나 애통했을까요? 눈에 넣기만 해도 끔찍한 것이 자신과 일체가 되어야 함이 얼마나 애석했을까요?
목걸이의 주인은 그나마 호사였죠. 증오하는 대상과 사랑하는 대상이 적어도 달랐으니까요. 최후의 거물은 그런 사랑조차도 증오가 되어 떨어져 깨지고, 멀어져 사라졌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의 끝에 서고 나서야 그가 사랑했던 것은 온 젊음을 바쳐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해야 마땅한 것이었음을, 자신에게 시간이 전혀 남지 않게 된 뒤에야 깨닫습니다. 실체 없는 반짝임 위에 세워진 공중 누각의 꼭대기에서 위대한 파티의 주인은 드디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어요. 관망하며 겨울 바람처럼 차가운 허망함을 폐부 깊숙이 들이 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