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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글쓰기
· ISBN : 9791198204615
· 쪽수 : 382쪽
· 출판일 : 2023-09-13
책 소개
목차
바닥을 높이는 연습
퍼러우리한 시간, 그대에게
저자소개
책속에서
5. (바닥을 높이는 연습)
사랑을 하기 위해선
당사자와 대상자가 같은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시간에 당신이 함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교집합이 없어지면 사랑도 끊긴다.
에오스는 그렇게 사랑하는 이의 실제적 형상을
내려 놓는다. 사랑한다 해서 그 모습 그대로 지켜가며
사랑할 수 없다. 나의 사랑과 별개로, 시간이 흐르면
당신의 대상은 지금의 시간과 어긋난다. 사랑은 이렇게
영원해지고 내가 사랑한 대상은 책장 속에 고이 잠든다.
그래서 어느 사랑은 슬프다.
퍼러우리한 시간 9시
손목을 잡히곤 했던 그대에게
(퍼러우리한 시간, 그대에게)
내 손목 위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른다.
어떤 사람은 내 손목을 잡고 흔들어 대기까지 했다. 그럼 내 손은 깃발처럼 펄럭였다. 어떤 사람은 감탄했고, 어떤 사람은 경악했다: “이 손목 좀 봐!” 어떤 사람은 면전에 대고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징그러워!” 손목 덕분에 싫은 소리 좀 들어봤다: “이 손목으로 뭘 하겠어?” 다짜고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나를 향한 시선은 늘 같았다. 어려서는 그에 상처 받고 주눅이 들었다. 하물며 식물도 모차르트 음악과 예쁘고 상냥한 말을 들어야 쑥쑥 자란다는데, 사람인 내가 사박한 말을 듣고 싶은 턱이 있나. 나도 예쁨 받고 자라고 싶었다. 예쁨만 받고 자라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어떤 황당무계한 말을 들어도, 불쾌한 시선과 행동을 받아도 그런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상쇄할 만큼의 예쁨을 받고 싶었다. 내가 날 알아서 예쁜 말을 들어도 우쭐하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사람들은 내 육신에 형용사나 형용구를 끼얹기를 아무렇지 않아 했고 그를 빌미로 날 고치러 들었다. 그러나 그런 형용사나 형용구가 장식 더러는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속상해도,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라도 남의 말에 비춰 날 보지 않았고, 나 스스로를 억지로 고치려 들지 않았다. 남들이 못해 준 예쁨만큼 내가 나의 진가를 발견해주고 아끼고 사랑해주고 싶다. 나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