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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8241603
· 쪽수 : 140쪽
· 출판일 : 2024-12-01
책 소개
목차
0_여는글 - 조합장의 편지
1_이응이 이응이기 전에, 세모가 세모이기 전에
2_모든 게 완벽했던 이야기
3_오늘 몇 시 퇴근?
4_이응 님이 정산을 요청했어요
5_내가 침대에서 자고 싶은 이유
6_왕십리와 답십리의 차이점
7_아무거나 먹을래, 근데 다른 거 없어?
8_우당탕탕 생활 규칙 만들기
9_대화가 필요해
10_하마와 코끼리
11_세대주와 동거인
12_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13_닫는글 - 생활의 묵시적 갱신
책속에서
나와 세모는 이사 후 나란히 전입신고를 했다. 동시에 할 수가 없어 내가 먼저, 세모가 그다음 신고했다. 우리는 등본에 세대주와 동거인으로 찍혔다. 그리고 여전히 1인 가구로 분류된다.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밀접하게 공유하고, 함께 살림을 꾸려나가는데도 그런 건 통계가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세모는 어떤 정책에서는 1인 가구가, 어떤 정책에서는 세대 분리를 하지 못해 원가족에 포함된 상태가 된다.
등본은 여러 문제의 원인이 됐다. 취업서류를 내면서는 누구와 함께 사는 거냐는 질문에 적당히 둘러댈 말이 필요했다. 나와 세모는 우리의 상태를 두고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는 연인이라고 한다. 언제든 내 앞으로 등본을 뗄 수 있는 원가족에게도 시달렸다. 이런 걸 덜컥하면 안 된다고 했다. 기록에 남는 것도 아니고, 혼인신고처럼 헤어질 때 이혼과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세대주와 동거인이라는 이름도 문제였다. 우리 사이에 어떤 위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모는 장난스럽게 네가 이제 정말 우리 집 가장이다, 하고 말했다. 나는 가장이 될 만큼 부도, 권위도, 책임감도, 모든 걸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 그 말이 부담스러웠다. 우리 사이는 누가 누구를 책임질 만큼 견고하지는 못했고, 누가 누구를 방관할 만큼 느슨하지도 못했다. 등본에 찍힌 관계만으로는 섭섭했고, 그 이상의 법적 관계는 어떤 식으로 맺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고민했다. 법적인 테두리 안으로 꾸역꾸역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려고 했다면 쉽고 간편한 혼인신고라는 허울을 둘러썼을 것이다. 우리의 상태를 법적으로 묶어주는 개념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허망했다. 생활동반자 내지는 생활파트너쉽이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개념이겠으나, 우리 법에는 생활동반자에 관련된 내용이 없다.
_ '세대주와 동거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