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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98431288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3-12-30
책 소개
목차
| 서 문 | 남북한 양쪽에서 추앙받는 독립투사 6
| 추천사 | 언젠가는 역사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길 11
제1부 총사령으로 부임하다
1) 사령관 취임과 요녕농민자위단 성립 20
2) 연합전선을 펴다. 중·조 인민 최초의 군중대회 25
3) 중·조연합군 최초의 승리, 제1차 영릉가전투 29
제2부 탕쥐우의 요녕민중자위군 성립, 그리고 다시 연합
1) 국민당 정부 동북군 탕쥐우와 만남 36
2) 신개령전투와 양세봉의 후퇴 41
3) 제1차 흥경전투 43
4) 제2차 흥경전투와 통화, 그리고 특무대 48
5) 귀녀의 죽음 50
6) 관전현 보위전 53
7) 김일성과 만남 56
8) 요녕성 정부 출현과 특무사령부 62
제3부 만주와 국내에서 항일투쟁
1) 조선 국내와 압록강 연안에서 항일투쟁 72
2) 청원 공격전, 가족과 만남 75
3) 윤희순, 그리고 철도 연변 투쟁 78
4) 서진 원정 그리고 무순 공방전, 그 외 전투 80
5) 통화를 다시 빼앗기고 자위군 해산 81
6) 이회영 선생의 친서, 만남의 불발 87
제4부 조선혁명군, 다시 일어서다
1) 양세봉의 회고 92
2) 의목수(依木樹) 회의, 조선혁명군 재정비 96
3) 제3차 흥경전투 102
4) 중국공산당 동북혁명군과 만남 104
5) 양세봉의 인품과 에피소드 105
제5부 출생과 소년 시절
1) 출생 112
2) 1894년 동학농민운동 115
3)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117
4) 을미사변, 아관파천(노관망명) 120
5) 간도 그리고 연해주 123
6) 소년 시절, 서당 생활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교육 128
7) 안중근을 배우다. 그리고 한일병합, 서당 문을 닫다 130
8) 윤재순 132
9) 아버지의 죽음과 양세봉의 혼인 134
제6부 중국으로 이주, 독립군이 되다
1) 흥경현 영릉가 138
2) 양세봉,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142
3) 천마산 독립군에 입대하다 144
4) 다시 찾은 집 그리고 양시봉의 결혼 145
5) 참의부 참가, 고마령전투 147
6) 양세봉, 정의부에 가다. 그리고 길림에 상주 149
7) 왕동헌과 만남 151
8) 금구자로 이사, 김형직의 죽음 155
9) 삼부 정립과 갈등 157
10) 길림에서 안창호를 경호하다 161
제7부 국민부, 조선혁명군 설립
1) 국민부 창립 166
2) 금구자에서 가족과 만남 169
3)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출범 174
4) 국민부의 약화, 내부 이념 다툼 177
5) 9·18사변과 연합항일의 서막, 중국공산당의 대두 182
6) 흥경사건과 양세봉 189
7) 조선혁명군과 무장투쟁 제일주의 192
제8부 1934년
1) 쌍립자회의 200
2) 중국공산당의 동북인민혁명군 203
3) 최후 209
| 에필로그 |
‘한국광복군’에 맥락이 닿아 있는 양세봉의 ‘조선혁명군’ 219
| 부록 |
양세봉 연보 234
저자소개
책속에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일회성 싸움이었다면 양세봉 장군은 만주국 군대 및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영토를 점령하고 그 근거지에서 계속하여 일제에 저항한 독립투사였다. 그 중에는 찬란한 승리도 쓰라린 패전도 있었으며 사랑하는 딸을 잃는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혁명군’은 자기의 기지를 보유하고 줄기찬 투쟁을 이어 나갔으며 이것은 곧 우한(武漢)에서 설립된 ‘조선의용대’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가 봉오동 그리고 청산리전투 승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선혁명군’이 이룩하였던 눈부신 성과가 가려진 점이 적지 않다. 해방 후 극심한 이념의 대결이 앞서고 친일 인사나 ‘만주군관학교’, ‘간도특설대’ 출신들이 남쪽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그래서 독립투쟁의 역사 하면 마치 북한만 혼자 한 것처럼 되어 버렸고 우리의 침묵이 특별히 당사자인 김일성에게는 멋대로 역사를 왜곡하도록 무대를 제공한 꼴이 되고 말았다.
평양에 있는 애국열사릉에 가보라. 양세봉 장군 묘비에 그가 이끌었던 ‘조선혁명군’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독립군 사령관’이라고만 적혀 있다. ‘조선혁명군’은 정부와 당, 곧 ‘국민부’와 ‘조선혁명당’의 실제적 물리력을 갖춘 단체였으며 설립 이래 양세봉 장군의 지휘 아래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일제 및 만주국을 상대로 무력투쟁을 벌여온 군사 조직이었다. 마치 1940년대 임시 정부에 소속된 광복군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단어가 북한 정권의 입맛에 맞았는지 어느새 그들만 사용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