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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8481771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6-08-18
책 소개
목차
_1978
_감상 세계
_계절의 끝
_물과 오후
_어느 날 숲속에서
_보이지 않는 집
_토끼의 사실
_숲 바깥쪽으로
_마음 없는 마음
해설_김형중(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늘은 동지라는 말로 작은 여자에게 보내는 메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일흔두 살 된 친구에 대해 쓴다. 눈에 갇히는 바람에 눈이 어두운 그 친구에게 책을 읽어준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죽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짧은 소설이었다. 그럼 이미 다 죽은 거네. 듣고 있던 장은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따뜻한 안부나 인사는 생략한 메일을 전송하고 벽에 기댄 채 천천히 지워지는 창문을 본다. 밤은 길고 얼어붙어 작은 여자에게서는 결코 답장이 오지 않을 거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들은 지금 눈 속에 있다. 눈은 오래오래 녹지 않을 것이다.
_「감상 세계」 중에서
식은 심장이 얼어 쪼그라드는 동안 먼 곳에서는 제를 지내는 초가 켜지고 바람을 담은 향은 번번이 흐려질 것이다. 어두운 곳에 모인 향내가 흐르지 않는 건 식어가는 나의 원(怨). 길 위에서 쓰러진 자가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라고 했다. 그리하여 아이가 죽고 죽은 자리에서 자란 아이들이 품 안에서 식어가는 자식의 얼굴을 어루만질 때 풀은 자라고 그때가 되면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는 비어 있을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빈 원처럼. 다시. 끝없이.
눈 위에 눈이 쌓인다. 죽은 자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시간이다. 얼굴이 지워진 아버지가 깨진 내 육신을 어루만진다. 나는, 처음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눈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 이른 봄날 산나물을 캐러 온 눈매 고운 계집아이가 아직 다 녹지 않은 눈 속에서 드러난 내 발뒤꿈치를 건드릴 것이다. 그때까지 어떤 방식으로도 기록에 남지 않기를. 그것이 내 최후의 원(願)이다.
_「1978」 중에서
슬픔을 어떻게 이기나. 그렇다면 슬픔에 져야 하나. 슬픔은 왜 이렇게 내내 내다 버려지지도 않나. 선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은 채 그런 생각을 하던 여자는 좀 전에 남자가 중얼거리던 말을 떠올렸다.
—이 양반아. 바다는 이기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남자는 분명 여자가 벤 목 베개를 고쳐 베어주며 그렇게 말했다. 아주 옛날 자신이 이 바다를 건널 때 들었던 말이라고 했다.
—그럼 이번이 두 번짼가요?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여자는 그렇게 묻고는 이내 자책했다. 돌았네. 돌았어. 여자는 드러누운 채 실성한 사람처럼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다. 자신은 누구와도 아무 일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느라 힘든 사람이었다. 평범하고 평화롭게. 그게 여자의 꿈이었다. 누구도 이기지 않고 미치지도 않은 채로 살고 싶었다. 두통이 다시 시작되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여자는 크게 심호흡하며 띄엄띄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떤 논리나 마음보다 앞선 끝없이 피로한 몸뚱이가 거기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자꾸 잠이 와서 다시 선잠에 빠진 여자는 얕은 꿈을 꿨다. 바닥이 없는 꿈이었다. 무엇인가가 없는 바닥 쪽으로 여자를 자꾸 잡아당겼다. 끙끙 앓다가 하선을 안내하는 방송을 들으며 깼을 때 남자는 이미 배에 없었다.
_「물과 오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