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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878121
· 쪽수 : 116쪽
책 소개
목차
이장욱
지혜와 거리두기 7
구병모
숨값 37
김선재
뜻밖의 의지 51
김수온
애프터눈 티 63
여성민
밤에 해변에 75
임현
미망 89
정지돈
프랑크 헨젤 99
에필로그-기혁
시소설: 비어있는 것을 규정하는 한 방식 111
저자소개
책속에서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된 후에도 지혜는
엉뚱한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죠.
낮에도 밤에도 누구를 만나도 그곳이 어디어도 지혜는
지혜로워지지 마세요!
라고 말했는데 그건 물론
지혜가 지혜였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
아무래도 우습지 않은 농담
아무도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농담
이장욱, 「지혜와 거리두기」
지난번에 내가 뭐랬어 숨만 쉬고 살아도 돈이 든댔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따박따박 떼어 가는 건보료 하며 병원 문턱에도 안…… 못 가는데 그냥 허공에 녹아 사라지잖아 설탕 같은 숫자가 결산이며 자료라고, 너 이렇게 먹고 입었다며 화면을 건드리고 지나가지만 숫자와 맞바꾼 구체적인 실물을 내가 만져 본 적은 손에 꼽잖아
나 정말 구제救濟 받고 싶다고 주민 센터에 갔거든 건보료만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아니래 건보공단에 가래 그래 갔지 담당자가 그래 소득이 있으니까 안 된다고 그래 하지만 월세로 나가고 밥 먹을 돈도 전화요금도 없는데요, 했더니 그건 또 우리 소관이 아니래 어쨌든 너는 돈을 벌고 백 원 천 원이라도 벌고 거기서도 세금이 까이는 게 당연한데 어떻게 건강보험만 날로 먹으려 드느냐고 그래 지금 젊어 그렇지 창궐하는 공기요정들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호흡기 질환자인데 평생 병원 문턱 한 번 안 넘어 보고 살 거 같냐고도 그래 그러면서 나를 구제驅除할 것 같은 눈으로 바라봐
구병모, 「숨값」
나는 왜 아직 여기 있을까.
침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밤이면 가끔 그런 것이 궁금해진다. 애초부터 나를 만든 건 희망이 아니다. 나는 그저 희망이나 절망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떠돌 뿐이다. 비가 지나간 뒤 더 짙어지는 웅덩이나 웅덩이를 건너뛰는 아이의 짧고 작은 허공.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발음되는 존재다. 물론 나는 네가 발음할 수도 발음한 적도 없는 존재였다. 곁에 있는 내가 너를 감각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보고, 본 것을 전하거나 기억할 뿐이다. 눈을 뜬 네가 비척비척 일어나 빈 화분 쪽으로 돌아앉는 지금도, 나는 너를 바라보기만 한다. 속옷을 내리고 검은 똥을 흘리는 너를. 창백하고 건조한 얼굴을 드는 너를.
김선재, 「뜻밖의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