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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8650207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6-04-17
책 소개
다시 써내려간 여성의 시간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듯이 누구에게나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머니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혈연관계의 호칭을 넘어 노년기의 여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일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할머니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면서도 꽤 전형적인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헌신적인 양육자로, 공동체의 지혜를 전하는 어른으로, 혹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과거의 여성으로 할머니는 기억됩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의 모습으로 상상됩니다. 우리는 어떤 할머니를 잘 알지만 어떤 할머니는 잘 모릅니다.
여성은 언젠가 할머니가 되거나, 이미 할머니이거나, 할머니가 되지 않은 채 삶을 마칩니다. 그래서 할머니라는 존재를 골똘히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시대와 다른 연령의 여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모르는 할머니』는 현실 속 할머니를 온전히 대면하며 우리의 시선을 다각도로 비추어보는 책입니다. 일곱 명의 여성 필자들이 각자의 삶에서 ‘할머니’라는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때로는 유산이고 때로는 굴레인 가족 관계를 되짚어보고, 한때는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욕망과 삶의 다양한 형태, 나이 차를 가로지르는 우정과 사랑, 돌봄과 유대의 의미를 곱씹는 과정에서 할머니라는 존재는 하나의 인물을 넘어 현재의 삶과 만나는 여러 갈래의 질문이 됩니다.
여기 수록된 이야기들은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기 어려운 할머니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다양한 유형을 모으거나 특정한 사례를 통해 일반화를 시도하기보다는, 하나의 삶이 다른 삶에 질문을 건네고 서로 귀 기울여 응답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려 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출발점이 되어 우리가 모르는 할머니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목차
여는 글
이야기 할머니, 할머니 이야기 / 김윤영
유미는 시니어가 취향 / 김유미
어떤 내리사랑 / 김보람
쓸모의 문제 – 우정을 지속하게 하는 조건에 관하여 / 하라
나의 엄마의 엄마 / 이재임
순례 씨는 오늘도 살아간다 / 정인혜
과수원 과부들과 나 / 김연재
책속에서
돌아보면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속에 이미 기미가 있었다. 피난 시절 만난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은 이야기나, 부산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떡 장사에 나선 이야기는 그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아니라 할머니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서사였다. 할머니는 분명 이야기의 힘을 아는 사람이었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거침없이 자신을 세웠다. 그렇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한 조각은 할머니가 스스로를 짱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할머니를 할머니로만 여겼던 나의 시선이 특정 지점에서 그에 대한 이해를 굴절시켰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야기 할머니,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들이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마실 때도, 담배를 입에 물고 화투를 칠 때도, 그들이 남편과 자식새끼들을 욕할 때도 나는 항상 그들의 무릎이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서 떨어지는 때가 있다면 화투판이 끝날 때 개평으로 동전 몇 닢을 받아 문방구로 달려가는 순간이 다였다. 그렇게 하루 종일 붙어 있었으니 내가 생일을 맞아 잔치를 한다면 케이크를 썰고 김밥과 잡채를 나누어 먹어야 하는 이들은 인수덕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 「유미는 시니어가 취향」
할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그의 피를 물려받은 자손이라는 생각보다는 어쩌다가 운 나쁘게 한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가 떠오른다. 거미줄 비슷한 그런 그물.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줄에 걸려 서로를 바라본다. 우리는 단숨에 내가 너의 할머니이고 내가 당신의 손주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 「어떤 내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