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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98716149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5-04-10
책 소개
책속에서

갈색을 띠던 먼 숲이 며칠 전부터 파릇파릇 청아하고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점토 골목길 가장자리에 앵초꽃이 오늘 처음으로 꽃잎을 반쯤 연다. 습기 먹은 쾌청한 하늘에는 엷게 깔린 사월의 구름이 꿈을 꾸고 있다. 채 쟁기질이 안 된 넓은 논밭이 갈색으로 반짝이며, 무언가를 갈구하듯 포근한 대기를 향해 가슴을 열어젖히고 있다. 무언가를 잉태하여 싹 틔우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갖가지 초록 싹과 위로 치솟는 풀잎을 통해 자신의 보이지 않는 힘을 시험해 보고, 느껴 보고, 선사해 보고 싶은 모양이다. 온 누리가 기다리고 준비하며 꿈을 꾸고 있다. 온 세계가 무엇이 되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혀 섬세하고 우아하게 내달리며 싹을 틔운다. 싹은 태양을 향해, 구름은 논밭을 향해, 이제 막 돋아난 풀은 대기를 향해 내닫는다. <8쪽>
그 시절 나무들은 환희에 젖어 의연하게 창공을 향했고, 정원에는 수선화와 히아신스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봉오리를 열었다. 그 시절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사람들조차 부드럽고 친절하게 우리를 대했다. 그들은 우리의 매끈한 이마에 아직 신의 입김이 서려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 신의 입김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신의 입김은 우리가 성장하는 사이에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느샌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거친 개구쟁이였던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속을 얼마나 많이 썩였던가! 어머니는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이 노심초사하고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셨던가! ― 하지만 내 이마에는 신의 광채가 서려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것은 모두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경건함이 전혀 깃들어 있지 않았는데도, 내 생각과 내 꿈속에는 천사와 기적과 동화가 한데 어우러져 들락거리고 있었다.
불이 꺼지고 미풍의 미동도 잠잠해졌다. 방바닥과 옷장 문도 다시 어두워졌다. 이제 눈만 감으면 다시 금빛 테두리를 두른 보랏빛 붉은 동그라미들이 파문처럼 번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잠들고 사방이 고요해지는데 갑자기 내 심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밤을 향해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알아들은 두 분의 대화가 과일이 연못에 떨어지듯 내 심장에 떨어졌다. 이 파문은 삽시간에 커져 고동치는 내 심장을 넘쳐흘러 호기심의 세계로 스며들었다. 온몸에 불안과 전율이 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