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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91199048133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5-11-17
책 소개
★ 고공농성의 장소들을 따라 인간의 희망과 용기, 역사를 비추는 사유의 시선
‘기네스 세계 신기록. 고공농성 408일.’
문선희 사진작가는 2015년 우연히 보게 된 고공농성 기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속에서는 반백의 머리를 한 마흔여섯의 남자가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였다. 곧장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기자들이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물었다. 낯 뜨거운 질문에 돌아온 한마디는 묵직했다. “408일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준이 될까 두렵다.” 쿵, 작가의 마음이 울렸다. 그토록 모진 시간을 보낸 다음이었는데도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걱정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후 작가는 차광호 씨가 1년 넘게 지낸 굴뚝을 찾았다. 굴뚝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위에서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늦었지만 그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은 바로 그 굴뚝에서 출발해 2005~2019년 사이 전국의 고공농성 장소 서른세 곳을 찾아다닌 여정이다. 주제는 고공농성이지만 사건이 일어난 당시가 아니라 한참 후, 길게는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찍힌 장소의 이미지는 낯설다. 더 이상 그 사건으로 회자되지 않고, 기억하려는 사람이 없고, 도처에 흔한 산업 구조물들이다. 그런 대상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다. 작가는 종종 공장 담 바깥으로 내쫓기고, 경계의 눈초리를 받고, 카메라를 빼앗기기도 하고, 길이 아닌 곳을 헤맨다. 그렇게 애써 바라본 굴뚝과 송전탑에서 마주하는 것은 종종 시대착오와 망각의 감각이다. 고공농성을 기억하는 것은 갈등과 저항의 흔적을 지워버리기에 급급한 한국 사회를 거스르는 일임을 작가는 몸소 체험한다. ‘싸움이 지나간 자리를 더듬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가가 단단히 되물으며 계속해 나간 시간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발굴하는 정성스러움이 고고학이라면 문선희 작가의 사진을 고고학으로서의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일호(기자)
★ 노동의 자리 너머 다른 세상을 꿈꾼 거처, 그곳에 부치는 경의
시차 속에서만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 “늦었더라도 알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시작된 여정이었지만, 늦었기 때문에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작업의 고유한 의의가 되었다. 작가는 남겨진 이야기의 앞과 뒤, 겉과 속을 살피며 노사 간 대립과 법적 공방의 프레임에 갇혀버리곤 했던 농성의 실존적·사회적 맥락을 정확히 목격하고자 했다.
끝내 작가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고공농성이, 사람이 자기 생명을 걸고 공중에 오르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고공농성자들이 견딘 기약 없는 고독의 깊이는 그들이 그만큼 강인했거나 그만큼 절박했으리란 짐작만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투사 이전에 한 인간, 보통의 노동자인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삶을 겹쳐본다. 일련의 고공농성들을 IMF 금융위기 후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진행된 ‘노동 시장 유연화’의 구조 속에서 다시 읽는다. 97학번인 작가 역시 사회 초년생으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사회상이다. 그리고 그 시절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압박에 떠밀려 묻어두었던 질문들에 가닿는다.
시대의 부조리는 모두에게 닥쳤다. 대다수는 서둘러 태세를 전환했고 거대한 흐름에 포섭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떻게든, 맨몸으로라도, 완고하게도, 자리를 지키고자 맞선 사람들.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문을 열기 위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왜냐는 질문에 “우리가 낳은 아이들이 살 다른 세상”을 이야기한 고공농성자들의 대답에 귀 기울이며 작가는 이 모든 일이 그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그들의 고독이 우리 모두의 것이었음을 실감한다.
사진에는 그 이해와 경의의 관점이 담겨 있다. 작가는 굴뚝과 송전탑 들이 단순한 농성장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머문 거처로, 고통과 갈등 이전에 희망과 용기가 맺힌 장소로 응시되기를 바랐다. 자신이 고공농성의 이야기로부터 건네받은 귀한 것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건네고자 했다. 그들이 결국 호소하고자 했던, 마지막으로 기댄 상대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와 동료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 “기억하고 응답할 사람이 있다는 믿음은 때로 싸움이 지나갔다고 믿어지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희정(작가)
★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세상을 바꾸어 온 보통 사람들의 역사에 빛을 밝히는 제안
“고공농성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우리에겐 아직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이 책은 한 시기 고공농성의 역사지만 단지 과거가 아니다. 노동환경의 문제는 여전하고 예기치 않은 측면에서 더욱 악화되었다. 차광호 씨의 고공농성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25년에도 고공농성은 끊이지 않는다. 8월에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씨가 또다시 고공농성 최장기간을 갱신하고 600일 만에 땅에 내려왔다. 11월 현재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고진수 씨의 고공농성도 300일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고공농성들이 단지 과거가 아닌 것은 그 영향이 면면히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지 않았던 2005년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들의 고공농성은 노동자이자 정치적 주체로서의 공무원들의 지위를 공론화시켰고, 2005년부터 시작되어 2008년 고공농성으로 이어진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긴긴 싸움은 ‘불법 파견’을 원천적으로 막지 못한 파견법의 맹점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과 2017년 두 차례 고공농성을 한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들이 본보기로 삼았던 것은 노조 활동과 고통 분담, 일감 나누기로 일터를 지킨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이었다.
이 하나하나의 일들이 이어져 다음 세상의 출발점을 갱신해 왔음을 되새기며 작가는 깨닫는다. “오랫동안 쌓아온 궤적으로 아주 조금씩, 세상은 바뀐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귀중하다”, 그러므로 “그 어떤 고공농성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통의 노동자들이 거대한 흐름에 맞선 과정을 희망과 용기의 역사로 거듭 성찰하는 것은 모든 보통 사람들의 몫이다. 그것은 인간의 노동이 전면적으로 위협받는 미래가 예고된 오늘날 더더욱 중요한 과제인지 모른다. 희망은 홀로 태어나지 않으며, 용기는 응답과 연대를 통해서만 다음 세상에 전해진다. 고공농성자들이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이 바로 그 믿음이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필요한 답은 어쩌면 무수히 시도하고 무수히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도처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는 이 장소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호소하는 현장이다.
목차
1부 빛
2부 물결
마른나무에 스민 물
고마운 굴뚝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의 힘
부드러움의 뒷면
마지막 방어선
굴뚝을 타고 온 초인
3부 윤슬
서울 경찰청 앞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여의도공원 내 교통 통제 CCTV 탑 / 구미 코오롱 공장 내 송전탑 / 광주 삼성전자 3공장 내 송신탑 / 성남 샤니 공장 내 굴뚝 / 서울 올림픽대교 주탑 / 서울 광흥창역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구로역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망원한강공원 송전탑 / 울산 현대중공업 내 굴뚝 / 광주 옛 전남도청 앞 CCTV 탑 /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송전탑 /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안 타워크레인 / 전주 동전주나들목 인근 송전탑 / 부산 신항 내 선박 안내용 도등 철탑 / 서울 현대자동차 본사 인근 옥외 광고탑 /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내 굴뚝 /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 울산 한라엔컴 공장 내 시멘트 사일로 /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내 굴뚝 / 서울 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내 굴뚝 / 여수 석창사거리 인근 송전탑 /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 전광판 /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1 /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2 / 서울 중앙우체국 옆 전광판 / 부산 시청 앞 옥외 전광판 / 서울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 서울 여의도 서울교 앞 옥외 광고탑 / 진주 김시민대교 주탑 / 울산 염포산터널 고가도로 교각 / 서울 여의2교 옆 옥외 광고탑 / 서울 강남역 CCTV 탑
에필로그
주석
추천의 말_박평종, 장일호, 희정
저자소개
책속에서
굴뚝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날이었다. 그가 기네스 신기록을 안고 내려온 날.
‘기네스 세계 신기록, 고공농성 408일.’ 적막한 전시장에서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멈칫했다. 마치 축하할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기네스 세계 신기록’이라는 수식어가 여기저기 넘실대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반백의 머리를 한 마흔여섯의 남자가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였다. 경찰은 408일을 굴뚝에서 견딘 그를 곧장 체포했다. 유치장으로 끌려가던 그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어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물었다. 소감이라니! 기자들의 무람없는 질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408일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준이 될까 두렵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한마디가 쿵, 묵직하게 마음을 울렸다.
간신히 찾아온 기회였다. 그간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말들을 뜨겁게 토해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여 줄, 어쩌면 유일한 순간이었다. 비로소 목소리를 갖게 된 그 시점에, 몸과 마음에 가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이가, 자기 자신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다니…….
세상은 그를 방치했으나 그는 세상을 걱정했다. 그토록 모진 시간을 보내고도 무너지지 않고 마음의 격을 지켜냈다. 그는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속 깊은 어른이었다. 마른나무에 물이 스미는 기분이었다.
모진 일을 겪는다고 모두가 모진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른나무에 스민 물> 중
이듬해 가을 굴뚝이 폭발했다는 뉴스를 뒤늦게 보았다. 폐업한 공장의 굴뚝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 커다란 폭발이 있었고, 노동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고 다치는 일이 반복되는 현실에 마음이 어두워졌다.
어디지?
뜻밖에도 그 굴뚝이었다. 허둥지둥 구미로 달려갔다.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한 것도, 공기 중에 옅게 밴 인위적인 냄새도, “힘내요”라고 적힌 벽도 그대로였다. 굴뚝만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타들어 갈 듯한 찜통더위와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견디며 굴뚝 위에서 짐승처럼 웅크리고 견딘 날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으며, 그가 보낸 모든 시간 동안의 고통과 고독, 두려움과 무력감, 분노와 절망 그럼에도 놓지 않았던 희망이 스민 그 굴뚝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그가 스물다섯에 입사해 10년 넘게 일한 공장이었다. 청춘을 바친 공장에 되돌아가기를 바라며 굴뚝에서 408일을 버텼는데,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고 굴뚝은 사라져 버렸다.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
그곳에 맺힌 것은 ‘아픔’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희망’이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올라갔지만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 것이란 절망감만으론, 그곳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정말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오를 이유가 없다. 그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덤빌 수 있었던 것의 근원에는 자신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기댄 것은 시민의 마음이었다.(...)
어릴 땐 소수의 비범한 영웅들이 세상을 바꾸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우리가 누리는 권리들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국가와 공동체가 누구의 힘으로 유지되는지, 누가 희생했고 누구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는지를.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땔감처럼 던져 만들고 지켜낸 것이다. 나도 세상의 일부이기에 그들에게 받은 은혜가 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는데 받은 고마운 선물이, ‘민주주의’처럼 도무지 갚을 길이 없는 소중한 선물이.
그들은 밝은 미래를 위해 희생된 것이 아니었다. 맞서 싸웠다. 그들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전제에 질문을 던졌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대신 직접 하늘에 올랐다. 어떤 거대한 힘이 세상을 바꾸어 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문을 열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다. 희박한 가능성에도 더 나은 삶을 꿈꿨다. -<굴뚝을 타고 온 초인>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