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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9117532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5-12-09
책 소개
목차
· 제민천 가 작은 집
· 미나리깡 스케이트장
· 만국기 휘날리던 우리들의 축제
· 계곡을 흐르던 바람처럼
· 왁자지껄 대목장
· 반짝이는 축제의 바깥에서
· 진홍부터 파랑까지
· 곰나루, 수채화빛 풍경 다섯
· 공산성, 오롯한 풍경 다섯
· 홀로 걷는 길
· 시간의 조각을 맞추며
· 제민천을 따라 오늘을 걷기
추천의 말
·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 나태주
· Remembering Gongju - Brother Anthony of Taize
: 기억의 도시, 공주 - 안선재
· 공주(公州)에서 공주(共珠)까지 - 박재섭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가끔 ‘집’에 있는 꿈을 꾼다.
아이인 나, 스무 살인 나, 마흔을 막 넘긴 나, 아직 오지도 않은 육십 대의 내가 ‘집’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꿈이다. 마루의 모루유리로 뿌연 빛이 새어들고 가끔은 마당 작은 화단에 핀 하얀 백합 향기를 맡기도 한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으레 그랬듯이 열에 시달리느라 오슬오슬한 몸으로 화단 턱에 앉아 햇볕에 젖어있는 꿈도 잦다. 꿈속의 나는 나이도 다르고 하고 있는 일도 다르지만, 있는 곳은 늘 같다.
내가 3살부터 15살까지 살았던 공주시 반죽동 150-14번지, 제민천가 작은 집이다.
.............
하지만, 늘 걸음을 멈추는 것은 어려서 살던 ‘내 꿈속의 작은 집’이다.
.............
나는 아직도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애틋함이 밀려들고, 혹시 대문이라도 열려있지 않을까, 문틈으로 오래 전 그 시절을 잠시라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울렁인다는 것이다. ('제민천 가 작은 집' 중)
그렇게 공주에 갔던 어느 날, 문득 갑사에 갈 마음을 냈다. 초여름이었고, 연둣빛은 눈부셨으며, 깔끔하게 정비된 진입로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 세월을 지켜낸 아름드리나무 아래 드리워진 깊은 그늘 사이로 가끔 햇살이 반짝였다. 어린 날 물놀이하러 찾았던 계룡산과 전혀 달랐고, 가을날 단풍을 즐기는 등산객들로 가득했던 계룡산과도 전혀 달랐지만 나는 비로소 계룡산에 안긴 느낌이었다.
갑사에 이르는 걸음걸음마다 나무의 숨을 들이마시고 밭은 숨을 토했다. 지장전 마루턱에 가만히 앉아 불경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대웅전과 대웅전이 인 하늘을 바라보다가 약사여래입상을 찾아 삼배했다. 대적전 앞에 있는 커다란 배롱나무를 보고 배롱나무 꽃필 때 꼭 다시 와야지, 마음먹기도 했다. 활짝 핀 진분홍 배롱나무 꽃과 빛바랜 단청과 여름날의 초록이 절집의 침묵과 어우러지면 얼마나 한가하고 아득할 것인가 생각했다.
그날로부터 열사흘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연등을 달기 위해 대적전을 다시 찾았을 때에도 배롱나무 꽃은 아직 피지 않은 채였다.( ‘계곡을 흐르던 바람처럼’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