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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영화/드라마 > 영화감독/배우
· ISBN : 9791199118911
· 쪽수 : 138쪽
· 출판일 : 2025-03-17
책 소개
목차
BEFORE
머리말 4
타르, 벨라 8
ENTERING
헝가리 개혁 공산주의 사회 현실과 인간을 향한 영화적 응시
(유창연, 정태수) 28
<사탄탱고>를 통해 본 영화의 움직임과 시간, 서사 구조
(전준혁) 69
BÉLA TARR
인터뷰 I 104
인터뷰 II 112
인터뷰 III 121
인생에, 생명에, 귀를 기울이라고 벨라 타르는 말한다.
(오다 카오리) 132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시네마토그래프 이윤영
글을 쓰는 목적부터 명확히 밝히고 들어가겠다. 나는 <사탄탱고>를 본격적으로 비평할 생각이 없다. 부족한 역량에 따른 다소 비겁한 후퇴로 읽힐 여지가 다분하나, 내가 적극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있기에 비평은 다른 글의 몫으로 조심스레 넘기겠다. 일개 기획자의 부족한 식견보단 다른 이들의 관점에 관심을 가지리라 판단된다. 이 글에서 명확히 짚고 싶은 지점은 따로 있다. 바로 국내 영화광들 사이에서 <사탄탱고>란 영화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관한 것이다.
국내에서 <사탄탱고>의 상영은 총 몇 번 이루어졌을까?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극장 상영 기록은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2000년),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2008년), 서울아트시네마 친구들 영화제(2013년), 광주극장(2020년) 정도다. 물론 여기에는 비공식적인 상영이 제외되었고, 필름 혹은 디지털 상영 여부도 혼재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내에서의 공식적인 상영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평균적으로 6~7년에 한 번씩 상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탄탱고>는 많은 영화광에게 일종의 ‘신화적 존재’로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긴 러닝타임 때문만이 아니라, 영화의 희소성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현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탄탱고>는 ‘밈’이 되었을까? 영화광들 사이에서 이 작품을 언급하면 대부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곤 한다. 하지만 이 미소는 단순히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사탄탱고>가 만들어낸 일종의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데서 오는 반응이다. 심지어 이런 미소를 머금은 사람 중 실제로 영화를 본 이들이 없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영화광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사탄탱고> 정도는 다 볼 수 있어야지’라는 다소 엉뚱한 명제를 통해 이 작품을 소화하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사탄탱고>는 단순한 영화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도전’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한다.
몇 가지 사례를 훑어보자. 당장 영화 리뷰 플랫폼에서 <사탄탱고>를 감상한 후기를 찾아보면, 영화의 예술적 가치나 내러티브에 대한 분석보다는 ‘러닝타임을 견뎌냈다’는 관객 개인의 성취에 대한 언급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장시간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들?왕빙의 <철서구>, 피터 왓킨스의 <코뮌>, 라브 디아즈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 마리아노 지나스의 <라 플로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진다. 즉, <사탄탱고>가 단순히 긴 영화이기에 이와 같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탄탱고>는 그 특유의 연출 방법론과 스토리텔링 방식이 대중적 소비보다는 특정한 문화적 태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하나의 ‘밈’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 나는 다소 부정적이다. ‘러닝타임을 버텨낸 것’ 자체가 영화 감상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순간, 영화의 가치는 오히려 축소될 위험이 있다. 몇몇 감상자들은 ‘영화적 체험’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통해 작품의 특성을 뭉뚱그려버리곤 한다. 이런 태도는 영화를 러닝타임 때문에 단순히 ‘견뎌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영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방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발간은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견뎌내기’의 대상으로 <사탄탱고>를 비추는 게 아닌, <사탄탱고>가 지닌 가치를 조명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단순한 ‘밈’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이 책이 그러한 논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추천사
벨라 타르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줄거리를 운반하는 장치들을 섬세하게 배치하는 데 신경 쓰기보다, 영화의 시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현실 세계에 대한 감각들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시공간적 연속체를 구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로 인해 우리는 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벨라 타르는 자신의 영화를 구별되는 여러 시기로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하며, 뚜렷한 전환점보다는 꾸준한 진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는 "모든 영화를 한 번에 본다면, 이 작품들이 동일한 사람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분명한 전환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