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상점

티벳상점_07
작가의 말_85
작가 인터뷰_95

그런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터에 머물며 쉬는 일이었다. 오른쪽 팔목에 파스를 칭칭 휘감도록 그림을 그리며 나는 환희에 벅찼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직후부터 몸속에 뼈가 자라나는 느낌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각까지 학교 미술실에 남아 캔버스 위로 활강하듯 떨어뜨리는 붓질 하나하나에 행복했다. 봄나무에 돋아난 새순의 빛깔처럼 좋은 물감이 내는 청명한 색깔들은 ‘선명하게, 영롱하게 살아보라‘라고 말하는 신의 계시 같았다.

평가 시즌이 되면 반기 동안 한 일들을 정리해 시스템에 입력했다. 그러면 고과 A, B, C 중 하나를 받았고, 같은 등급의 사람들과 한배를 탔다는 느낌은 안도감을 줬다. 나는 이것이 ‘안전하다’라고 느꼈다. 그림을 그릴 때는 혼자서 나를 증명해야 했다. 그림을 그만두고 시작된 평범한 삶은 남들처럼 어느 날은 위로, 어느 날은 아래로,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듯 살아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