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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99405899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6-06-10
책 소개
2025 올해의 출판만화 수상 작가 만리포 첫 번째 에세이
만화가 만리포가 창작 커뮤니티 포스타입에 공개한 자전 만화 「돈덴」은 안정적인 플랫폼 연재 없이 동명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기민한 독자의 선택을 받았고, "자기 피를 어디로 튀기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 만든 만화"(조익상 만화평론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올해의 합정만화상’ 본상과 ‘올해의 출판만화’ 출판상에 선정되었다. 오는 여름 출간되는 만리포의 첫 번째 에세이집 『림보에서의 축지법』은 더운 날 들이켜는 찬물처럼 감각을 깨우는 문장과 무엇도 전범 삼지 않는 독창적인 사유로 여자에게 강요되는 규범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기 서사다. 일본과 한국을 무대로 한 열여섯 편의 에세이와 열네 점의 삽화를 수록했으며 소설가 박솔뫼와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추천의 말을 더했다.
기억의 어두운 계단을 기어올라가며 시작되는
매혹과 공포, 사랑과 정치, 인정과 굴종의 재발명
만화가이자 애니메이터인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이주해 온 도쿄에서 만난 남자 나카무라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뺏긴다. ‘나’의 존재를 근간부터 흔드는 연인 나카무라, 그와 함께하며 ‘나’는 난생 처음 후회할 위기에 처한다. 나카무라의 맨팔을 껴안고 나란히 걸을 때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가도, 습관처럼 데모에 나가는 ‘나’를 향해 “원래 사람들은 역사에 휩쓸려 목숨을 잃기도 하는 거야. 그걸 어떻게 바꿔?”라고 말하는 그에게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미는 ‘나’. 이 사랑의 저변에 진동하는 계급 차와 정치적 간극을 어찌해야 할까? 팔레스타인 집회에서 이스라엘 남자에게 외쳤듯이 ‘나’는 나카무라에게 부끄러움을 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릴 적 “인간으로 취급되는 인간과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두려웠”기에 이를 소화하기 위한 놀이를 발명했던 것처럼 ‘나’는 나카무라와의 관계에서도 사회의 은유망을 찢어 던지는 연극을 시작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주인과 개, 부모와 아기 역할을 오가며 모든 것에 새 의미를 부여하는 연극의 말미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 계단을 다 내려가면 무엇이 시작되나?
“그저 어찌할 바를 몰라 계단을 네발로 오르던 때의 감각이
몇십 년 만에 찾아오는 것을 기진맥진한 채로 바라볼 뿐이다” 박솔뫼 소설가
이 책의 또 하나의 무대는 ‘나’가 성장한 한국의 도시다. 알몸으로 바닥을 기어다니다 어른들에게 발각되곤 했던 어린 ‘나’는 선생과 부모를 포함한 주위 어른으로부터 늘 훈육이 필요한 존재로 대해졌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혼나 온몸이 화끈거리면서도 ‘나’는 내심 이들이 자길 차별하는 게 아니라 알아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을 하고 만다. 온순한 여성성의 미덕에서 벗어날 때마다 거칠게 교정되던 ‘나’와 달리 마스큘린했던 쌍둥이는 집안의 기준이자 모범적인 여자아이인 것처럼 대해졌으며, 계단에서 몸을 날려 ‘나’가 성장기 내내 연습할 도약을 미리 해치웠다. 시간이 흘러 쌍둥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했을 때 ‘나’는 검정색 매니큐어를 칠했다고 흠씬 혼나던 순간을 떠올린다. "너는 니 남성성을 다지기 위해 나를 이용했어!"
『림보에서의 축지법』의 시간은 특정한 장면을 이어 붙인 콤필레이션 필름이 상영되듯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을 불러내며 흐른다. “너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묻자 우르르 자리를 뜨던 여자애들. 식탁 밑에 기어들어가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해!’ 곱씹던 ‘나’. 줄넘기 줄에 묶여 매력적으로 신음하던 어린 포로들. ‘나’에게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준 엄마. 물장구치고 허우적대는 시간 속에서 ‘나’를 흔들어 추동하는 것은 바뀌어가고, ‘나’는 이 좋은 눈물을 어른이 될 때까지 아껴 흘렸던 것을 아쉬워하며 과거의 플래시백을 보고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던 표정은 돌연 전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오고 만다. 무심히 빌었던 소원이 기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원숭이 발’ 전설처럼.
“불안과 두려움, 우울과 불쾌에 관한
집요하고 탁월한 자기 추적의 에세이” 최현숙 작가
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세상에 잘 적응한,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들이 삶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그 너머를 차단하는 태도를 ‘페티시화’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가족을 꾸린 사람은 가정을 중심으로 눈앞의 세계를 재배열하며, 어떤 이는 자신과 합치되는 입장을 가진 집단을 찾아 그 속에 편입됨으로써 세상에 속했다는 감각을 그러쥔다. 이처럼 세계를 잘게 분할해 소화 가능한 몫만 취하고 나머지를 외면하는 일이 페티시화라면 ‘나’는 바로 그 페티시화에 서툰 사람이다. 이 성질은 ‘나’를 사회참여적인 성향으로 밀어 올리는 동시에 불안을 낳았다. 튀어 오르는 공에 대한 공포, 전 세계에 만연한 착취와 차별에 대한 공포, 기습적으로 찾아와 ‘나’를 주저앉히는 미래에 대한 공포. ‘나’라는 공을 끝없이 팽창시키는 세상의 바람을 바닥내기 위해 ‘나’는 온몸을 움직인다. 나아가 자신을 가장 깊이 상처 낼 타인을 곁에 둠으로써 공포를 다루는 제3의 방식을 만든다. 파멸도 안주도 거부한 채, 솟아나는 감정을 제거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붙들어 응시할 때 『림보에서의 축지법』의 세계는 더 이상 입맛에 따라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진실한 전체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동작의 요점 포착에서 멈추지 않고, 불가능한 스텝을 밟으며 풍부한 잔상을 남길 때” 애니메이션이 앎을 내포하게 되듯이 ‘나’는 잔해처럼 남은 기억에 움직임과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현재를 재정의하고 모종의 앎을 얻는다. 본능을 밀어붙이면서도 그에 수반되는 계급적 긴장을 바로 응시하며 사랑과 정치에 대한 자기만의 이론을 구축하는 독보적인 에세이.
목차
입구
미국인의 병
발바닥의 역사
바닥난 남자 바닥나다
도토리는 갈참나무의 어머니
자살하지 않는 계단
원숭이 발
창가에 기대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이 오는 것을 본다
페이퍼 잼
림보에서의 축지법
가슴 앞의 매듭
코코넛 우유 그릇
속가
얼어붙은 강이 흐르고 있다
원형극장챌판
추천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남자 이야기가 재밌었다. 어떤 남자애가 어른이 되면서 어떤 창피를 당했는가를 자세히 서술한 것만큼 재밌는 게 없었다. 훗날 그들 인생의 원료로 지목될 씻을 수 없는 각인으로서의 매혹과 공포. 알튀세르가 서술한, 아버지가 자기 성기의 염증을 살펴봐준 기억 같은 것. 남자아이들의 이야기는 보통 예기치 않은 발기나 발기부전 등과 함께 진행되고, 그들이 자라나 누구에게 매혹되는지를 결정한다. 나는 남자아이들이 매혹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집중해서 읽었다. 읽을수록 그런 회고록을 쓰는 부류의 남자들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만 알게 될 뿐이었다. 불쾌한 일이었다. 반대편 기슭으로 가고 싶었다. 「입구」
나는 바닥을 기면서 오래전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다고 느꼈다. 혹은 예전에 보낸 편지가 수신되었다고 느꼈다. 아기들이 원래 바닥을 기기는 한다. 그러나 아기는 어른에게 굴종해서가 아니라 걷기 위해 기는 것이고 나는 굴종의 의미로 기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말을 잘 듣는 것이 굴종의 가장 일반적인 단계이며 네발로 기는 것이 가장 적나라한 굴종이라고 할 때, 사람이 네발로 기도록 요구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정도의 굴종은 여간해선 요청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말 잘 듣기가 굴종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을 잘 듣고 인내하는 것은 굴욕적이다. 네발 기기로 굴종을 증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미 순종적이라는 것은 굴욕적이다. 연극에서는 굴욕으로부터 자유로운 굴종이 된다. 나는 가짜로 혼나고 용서받는다. 뒤이어 칭찬받고 사과받으며 용서한다. 용서 또한 가짜 용서이므로, 실제로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다. 편지 속에 그린 수많은 하트처럼, 갈 곳 없이 내 속을 채우고 있던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은 빠져나간다. 가톨릭적 여성이 바닥에서 일어서며 이족 보행한다. 폭력성은 네발로 어슬렁거리다 몸을 웅크리고 잠든다. 쌔근쌔근 자다가, 깊은숨을 들이쉬며 잠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진짜 잠, 막 새로운 심장을 들썩였을 신생아가 누렸을 잠. 「바닥난 남자 바닥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