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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91199657403
· 쪽수 : 353쪽
· 출판일 : 2026-01-26
책 소개
곧장 마음을 가리켜 본래 성품을 깨닫게 하는 금강경 설법!
조사선(祖師禪)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실제 눈을 뜬 공부 체험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무심선원에서 공부인들을 지도하는 김태완 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선불교의 정신에 충실하게 곧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을 가리켜 깨달음으로 이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독송된 금강경은 선종, 교종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진다. 육조 혜능 대사는 출가 전 장작 팔러 시장에 나왔다가 어느 탁발승이 외우던 금강경 구절을 듣고서 처음 법을 깨쳤으며, 금강경은 육조 혜능의 법맥을 계승한 한국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서도 금강경 해설서는 수없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김태완 무심선원장이 설법한 《금강경 직지설법 3》은 다수의 해설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금강경의 구절을 해설하여 알음알이를 늘리거나 생각으로 이해하게 하는 대신,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리켜 보여 주고자 하는 것, 즉 모든 것의 바탕인 본래 마음을 시종일관 분명히 가리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며 법문을 듣기만 하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 늘 있는 그것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금강경 직지설법》 전 3권 중 3권이다.
생각은 분별심이며
분별심을 따를 때 괴로움을 겪는다
생각은 그 속성상 분별심이며, 이분법을 기본으로 작동한다. 늘 모든 것을 구별하고 둘로 나누며, ‘이것과 이것 아닌 것’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고,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 좋은 것은 집착하여 붙잡거나 유지하려 하고, 나쁜 것은 싫어하여 버리거나 없애려 한다. 이 때문에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그런데 우리 중생심이라는 걸 보면 항상 뭐는 좋고 뭐는 싫거든요. … 늘 싫은 건 밀어내고 좋은 건 붙잡고 있으려 해요. 그게 사실은 불가능하거든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의 실상이 그런 게 아니거든요. 싫은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있고, 좋은 게 있으면 싫은 게 있고 같이 있는 건데, 자꾸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취하려 하니까,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니까 고통스럽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이런 분별을 해서 취사간택하는 이법(二法)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한테 번뇌가 있는 거예요.” (308쪽)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생각에서 벗어나면 본래면목이 드러난다
대승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단계별 수행을 통해 이상적인 상태를 이루거나 성취하려는 게 아니라, 이미 본래 완전하고 무한한 본성을 그저 발견하도록 돕는 가르침인 것이다. 비유하자면, 문제 많은 꿈속 세계에서 이상적인 자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꿈에서 깨어나 본래 아무 문제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러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을 믿고 생각에 속아온 세월이 길기 때문이다. 생각의 망상, 분별심에 속는 일이 습관이 되었고, 생각이 지어내는 이야기에 계속 빠져들기 때문이다. 《금강경 직지설법 3》은 생각이 지어내는 꿈의 세계에서 깨어나도록 분별심을 부수며 생각 밖의 진실을 계속 가리켜준다. 생각에서 벗어나면 자기의 본래면목이 드러난다.
“생각이, 망상이 쉬어져 버리고 손을 대지 않으면 원래 아무 일이 없는 겁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본래 부처라고 하고 본래 깨달아 있다는 겁니다. 부모가 낳기 이전의 본래면목이라는 것은 아무 문제 없는 걸 가리키는 거거든요. 항상 문제는 뭐가 일으키느냐? 우리 생각이 일으킵니다. … ‘모든 생각을 벗어난 것이 부처다’ 하는 말이 금강경 앞에 나왔었죠. 생각에 속지 않을 수 있다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생각에 부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자기의 본래면목이 드러납니다.” (45쪽)
색즉시공, 불이중도!
있는데 없고,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니다
모든 것을 둘로 나누는 이 분별심은 뿌리 깊고 미묘해서 공부인을 끝까지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예컨대, 모습만을 분별하는 중생은 색(色)만을 알고 모습의 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반면, 공(空)을 체험한 사람은 공에 빠져서 아무것도 없다는 견해를 고수하기 쉽다. 기분 좋은 신기한 체험을 한 뒤 당시의 좋은 느낌과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 것도 분별심에 빠져 색에 집착하는 것이다.
“색과 공이 따로 제각각 있어서 색은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거나 몸으로 느끼거나 머리로 알 수 있는 그런 것처럼 있다고 한다면 이건 색에 떨어진 사람이고, 무조건 아무것도 없다고만 얘기해 버리면 그건 공에 떨어진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건 불법이 아니거든요. 그것을 외도라고 합니다.” (197쪽)
불법 즉 실상은 양쪽 중 어느 한쪽이 아니고, 색즉시공(色卽是空)이며 불이중도(不二中道)다. 텅 빈 거울과 그 위에 나타나는 모습이 떨어져 있지 않듯이 색과 공이 떨어져 있지 않다. 있음과 없음 중 어느 한쪽이 아니고,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니며, 있는데 없다. 둘로 나눈 것 중 어느 하나가 아니고, 나뉘어 있지 않으며, 따로 있지 않다.
“그럼 불이(不二)는 뭐냐? 우리 불법은 뭐냐?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닌 겁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하는 거예요.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니에요. 이것을 중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인이 체험을 해 봐야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불법이라는 건 이게 불법이지, 고요하고 텅 비고 편안한 건 공에 떨어진 사람이죠. 또 항상 붙잡고 있고 절대 놓치지 않고 있다, 그건 색에 떨어진 사람이에요. 뭘 자꾸 이렇게 붙잡고 있으니까요. 양변에 떨어졌다고 하는 겁니다.” (197쪽)
색즉시공, 불이중도는 종교적 관념이 아니며 우리의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므로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얻은 것은 반드시 잃기 마련인데, 이것은 본래 늘 있는 것이므로 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새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득 체험하기만 하면 된다.
“금강경 맨 뒤에 나오죠. 노력해서 만드는 건 물거품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다고 그런 얘기 나오죠. 허망한 겁니다. 불이중도는 우리의 진여자성이에요. 본래 우리가 타고난 능력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래장(如來藏)이라는 말을 하죠. 여래가 우리 속에 갖추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애를 써서 노력해서 만드는 게 아닙니다. … 제대로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한 번 여기서 자기도 모르게, 이것을 불가사의하게 체험만 하면 저절로 중도의 길에 들어서는 겁니다. 공부가 무위로 저절로 돼야 합니다. 하는 일 없이 돼야 하는 거예요. 억지로 노력해서 되는 건 아니란 말이죠. … 다 깨달아 있습니다.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본래 다 깨달아 있어요.” (268~269쪽)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
공부인들을 위한 풍부한 도움말!
모습이 있어서 지각되는 생각, 느낌, 감정, 의식 등은 우리의 본성인 마음이 아니며, 모습이 없어서 지각되지 않고 불이중도인 본래 마음이 진짜 마음이다. 생각과 느낌이 여기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일도 여기서 생겼다가 없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항상 여기에 있다. 깨달음이란 이 본래 마음을 깨닫는 것이며, 팔만대장경이 결국 가리키는 것도 이것 하나다. 이것에 통하면 어떻게 될까?
“이 자리에 있으면 안팎이 없고, 내가 없고, 무엇이 없는데, 누가 뭘 원하겠습니까? 아무 그런 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원하는 게 없고, 더이상 불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말과 같은 거죠. 불만이 있다는 건 아직도 내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뭔가 더 원하는 게 있으면 불만이 있는데, 여기에 딱 들어맞아서 통하면 아무 불만이 없어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더이상 원하는 게 없어요. 원하는 게 없는 게 가장 큰 행복이고 가장 큰 만족이니까 최고의 즐거움이죠.” (158~159쪽)
우리의 본래 마음은 늘 지금 여기에 명백한 것이지만,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먼저 깨친 선지식의 법문을 들으면서 지도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빠른 지름길이며,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태완 무심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본래 마음을 깨닫고 체험하도록 계속 반복하여 가리키므로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이다. 본래 마음과 존재의 실상에 관해 바르게 알게 하는 비유와 설명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려준다.
이 책에는 공부인들을 위한 도움말도 상세히 담겨 있다. 공부인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면 수많은 오해와 착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자신은 잘 알고 있다고 믿더라도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오해들이 뿌리 깊어서 지적해 주어도 쉽게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김태완 선원장은 20년 이상 공부인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도움말을 전하며, 공부인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길을 걷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목차
머리말
18. 일체동관분: 모든 것을 같게 본다
19. 법계통화분: 온 우주를 다 교화한다
20. 이색이상분: 육체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21. 비설소설분: 말할 만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2. 무법가득분: 얻을 수 있는 법은 없다
23. 정심행선분: 마음을 깨끗이 하여 착한 행동을 한다
24. 복지무비분: 복덕과 지혜가 헤아릴 수 없다
25. 화무소화분: 교화했으나 교화된 것은 없다
26. 법신비상분: 법의 몸은 모양이 아니다
27. 무단무멸분: 끊어짐도 없고 소멸함도 없다
28. 불수불탐분: 받지도 않고 탐하지도 않는다
29. 위의적정분: 움직이면서도 곧 고요하다
30. 일합이상분: 하나로 합해진 도의 모습
31. 지견불생분: 지견(知見)이 생기지 않는다
32. 응화비진분: 응화신(應化身)은 진실이 아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것은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게, 항상 제자리에 있어요. 집착한다는 것은 혹시 떠나갈까 봐, 도망갈까 봐 붙잡고 있는 건데, 이것은 도망가지 않거든요. 늘 이 자리에 있으니까 집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이 도망갈까 봐 내가 남을 붙잡는 거지, 내가 나 자신을 붙잡지는 않잖아요. 나 자신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디 갈 리가 없죠. 늘 제자리에 있으니까 아무 할 일이 없어요. 공부하는 사람이 뭔가를 붙잡고, 절대 놓으면 안 된다고 여기며 붙잡는 걸 공부라고 여기면, 굉장히 뭘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본래면목이 아닌 것은 도망가지만, 자기 본래면목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고, 언제나 있는 것이고, 도망가지 않는 거예요. 그걸 왜 붙잡고 있습니까? 붙잡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뭔가 도망갈까 봐 붙잡고 있다면, 자기가 붙잡을 이유가 없는 걸 붙잡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생멸법이거든요. 오락가락하는 거죠. 그걸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되는 거죠.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이것을 벗어나질 않으니까 안다고 하는 거죠. 하늘이 푸르다는 것도 여기서 그렇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죠. 저 우주에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이 반짝인다는 것도 여기서 그렇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거든요. 세상에서 이것을 벗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토에 있는 중생의 여러 가지 온갖 종류의 마음을 다 안다…. 다 마음입니다. 마음 아닌 게 없어요. 이 세계를 한 개 마음이라고 말하잖아요. 이것을 마음이라고 이름 붙이니까요. 이것을 처음 체험했을 때, 저 같은 경우는 그전에는 항상 내 마음이라는 뭔가가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항상 ‘내 마음이 어떻다’ 그런 식이었죠. 그런데 이것을 체험하니까 그때부터 내 마음이라는 껍질이 깨져 버리고, 끝도 없어요. 마음이라고 이름 붙일 어떤 물건이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끝도 없는 거예요. ‘진짜 무한한 허공 같구나.’ 그런 느낌…. 끝없는 세계가 밖에 있지 않고, 끝없는 세계 자체가 바로 나 자신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굉장히 자유로움을 느끼죠.
항상 문제는 뭐가 일으키느냐? 우리 생각이 일으킵니다. 분별이 자꾸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망상을 해요. ‘모든 생각을 벗어난 것이 부처다’ 하는 말이 《금강경》 앞에 나왔었죠. 생각에 속지 않을 수 있다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생각에 부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자기의 본래면목이 드러납니다. 한 번 생각이 쉬어지고 자기 본래면목이 탁 드러난 이런 체험이거든요. 분별에서 벗어나는 체험이란 말이죠. 생각에 속지 않을 수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본래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뭔가를 계속 붙잡고 놓지 말아라’ ‘이렇게 알아차리고 있어라’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이치상 공부에 맞지 않습니다. 뭔가를 하려 하고, 애를 쓰려 하고, 이러니저러니 분별하는 그것이 쉬어져야 하고, 놓아 버려야 하고, 벗어나야 하는 겁니다. 그게 진짜 공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