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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조용래 장편소설)

조용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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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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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밀 (조용래 장편소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9921306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6-06-10

책 소개

사회 전체가 외환위기에 휩쓸리던 시기. 뉴스가 보여준 것은 부도와 도산의 한 줄 헤드라인이었지만 그 아래에는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경을 넘는 비자금, 명동의 사채 시장, 정치권에 놓인 봉투, 갯벌 위에 올라가는 제철소. 한 시대의 권력과 자본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며 ‘나라를 위한 일’이라 믿었던 그 시간. 그 모든 사건을 한 권에 옮긴 조용래의 첫 장편소설 《밀(密)》이 출간되었다.
정치가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무너진 시대의 자화상
의리에 숨고 싶었던 자들의 위태로운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IMF의 격류 아래 한 시대가 가라앉혀둔 실제 사건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생존 게임이 펼쳐진다


사회 전체가 외환위기에 휩쓸리던 시기. 뉴스가 보여준 것은 부도와 도산의 한 줄 헤드라인이었지만 그 아래에는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경을 넘는 비자금, 명동의 사채 시장, 정치권에 놓인 봉투, 갯벌 위에 올라가는 제철소. 한 시대의 권력과 자본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며 ‘나라를 위한 일’이라 믿었던 그 시간. 그 모든 사건을 한 권에 옮긴 조용래의 첫 장편소설 《밀(密)》이 출간되었다.
새벽 한 재벌가의 둘째 아들이 어둡고 비좁은 차 트렁크에 몸을 실은 채 야반도주를 시작한다. 국내 대기업의 부도를 기점으로 수천억 원대 비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와중이다. 총수 일가가 구속되고 검찰 소환을 코앞에 둔 왕성규는 그 트렁크에 몸을 숨긴 채 부산으로 향하고 거기서 다시 밀항으로 국경을 넘는다. 그를 태운 사람은 부산에서 올라온 청년 조장우. 시작은 의리가 아니라 돈이었지만 그는 그 일에 ‘의리’라는 단어를 붙여본다. 그 한 단어가 이 소설의 시작이다.

이 소설의 모티프는 IMF 시기에 실제로 벌어진 사건들이다. 우리가 몰랐던 그 시대 자본의 흐름, 정치와 재벌의 뒷거래, 외환위기의 비화가 한 권의 책 안에 생생하게 옮겨졌다.
서울에서 시작된 돈은 LA, 런던, 시베리아, 에콰도르, 파나마, 인도네시아, 홍콩까지 흘러간다. 그 동선을 따라 외국인 브로커와 변호사들, 미국의 정부 기관과 사설 탐정들까지 한데 모이고 흩어진다. 영화 한 편이 펼쳐질 무대 위에 한 시대의 진실이 놓인다. 자기만은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은 서로의 목줄을 쥐고 끝까지 간다. 의리로 시작된 관계는 돈 앞에서 하나씩 무너지고 ‘나라를 위한 일’이라 믿었던 자들의 욕망은 끝까지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 《밀(密)》은 한 글자에 모든 것을 담았다. 감추는 비밀, 긴밀하게 묶인 관계, 은밀하게 움직이는 자들의 손. 책의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감추고 옮기고 지우는 사람들이다. 그 모든 비밀이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한 시대의 가장 어두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시대의 비밀은 여전히 지금의 우리와 닿아 있다는 것. 이 책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대의 비밀을 마주한 작가의 정직한 시선
혼돈과 탐욕의 시대, 가장 어두운 바닥을 비추는 한 권의 책


조용래의 첫 장편소설 《밀(密)》은 ‘의리'의 가면을 정직하게 벗긴 책이다.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의리’라는 단어를 신성한 곳에 두어왔다. 친구 사이의 의리, 조직 사이의 의리. 그 단어 앞에서 사람들은 흔히 자기 행동의 윤리를 묻지 않았다. 소설 속 청년 조장우는 그 단어 뒤에 자기를 숨긴다. “의리로 하는 일이니, 죄는 아닐지도 몰라.” 한국 사회의 모든 부정한 거래가 한 줄의 자기합리화 위에 세워졌다.
소설은 의리의 정체를 한 겹씩 들춰낸다. 의리라는 이름 뒤에서 사람이 옮겨지고, 흔적이 지워지고, 끝내 사람이 사라지는 풍경. 의리 뒤에는 돈이 있었고, 돈 뒤에는 권력이 있었고, 권력 뒤에는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거대한 명분이 있었다. 재벌 회장은 권력자에게 묻는다. “국가가 짓으라 캐서 시작한 공장이야. 근데 이제 와서 무너뜨린다고? 그게 국가의 뜻이라꼬?” 한 줄에 한국 정경유착의 본질이 압축되어 있다. 정치는 자본에 명분을 주고, 자본은 정치에 돈을 주었으며, 한 덩어리가 마침내 한 사회 전체를 부도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소설이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권력만이 아니다. 작가는 그 거대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 숨을 쉬던 사람들을 거리로 소환한다. 부도 직전 크리스마스이브의 포장마차에서 누군가 내뱉은 한마디, “IMF, 그놈의 세 글자 때문에 다 죽게 생겼어.” 위에서 내려온 명분이 어떻게 거리의 신음으로 변하는지를 두 음성으로 펼쳐 보인다. 의리라고 명명되던 것들이 거리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작가는 인간의 잔인함을 도덕적 단죄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모두가 빠져 들어간 거대한 늪을 그린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돈을 향해 뛰어들지만, 한 번 발을 디딘 순간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이 사라지고, 자기는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이 끝내 서로의 목줄을 쥐며 같은 늪 안에서 허우적댄다. 그 늪 안에서 인간의 가장 밑바닥 본능은 야생의 먹이사슬처럼 작동한다. 약자는 강자의 도구가 되고, 강자는 더 큰 강자의 도구가 된다. 누군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그 시간을 견딘다.
이 소설에는 그 시대의 권력자에게 줄을 대고 살았던 한 재벌 회장이 등장한다. 그가 의지한 권력이 무너지자 그는 곧 다음 권력에 줄을 대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권력 역시 다르지 않다. 권력의 이름은 계속 바뀌지만 권력과 자본이 한 몸이라는 사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 권력의 속성을 작가는 차갑게 마주한다. 이 책의 시간은 그 시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혼돈과 탐욕의 시대를 정직하게 들여다본 작가의 첫 장편소설. 《밀(密)》은 한국 정치경제 스릴러의 한가운데에 또 한 권의 묵직한 선을 긋는다. 한 권의 책이 거대한 늪의 가장 어두운 바닥을 비춘다.

목차

1. 도피 2.싹 3. 금고 4. 붕괴 5. 잿더미 6. 공작 7. 총알 8. 밀항 9. 추적 10. 사냥
11. 동냥 12. 적선 13. 함정 14. 증발 15. 최후 16. 서명 17. 깃털 18. 접선 19. 매듭

저자소개

조용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90년대 후반, 20대 시절 홍콩을 자주 오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이 《밀》의 모티프가 되었다. 홍콩의 증권사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던 2015년 연말, 40대의 작가는 침사추이의 낡은 아파트에서 20대의 기억을 불러내 《밀》의 초고를 썼다. 이후 박근혜·윤석열, 두 차례의 탄핵과 변함없이 비열한 권력·자본을 직시하며 《밀》을 완성했다. 《밀》은 한 시대의 풍경을 픽션으로 옮긴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한 재벌가의 흥망을 통해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탐욕과 그늘을 담아낸다. 현재 서울민예총 이사이자 서사·창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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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도피
새벽 2시, 방배동 빌라. 형광등 불빛이 어둠 속에 퍼지고 경비 실 유리창 안에선 졸음을 이기지 못한 경비원이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짙게 선팅한 성규의 그랜저가 빌라로 들어섰다. 전조등이 경비실을 비추자, 경비원이 겨우 고개를 들어 차 번호를 확인하 고 차단봉을 올렸다. 차가 천천히 지하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 어갔다. 엔진을 끈 차들이 숨을 거둔 물고기처럼 줄지어 누워 있 었다.
장우는 깨끗하게 비워놓은 자동차 트렁크를 열어놓고 조수석 에 걸터앉아 성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규의 차가 다가오자 트 렁크 안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여기에 사람이 탈 수 있을까?’
성규가 내리자 장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
기묘한 탈출 작전이 막상 현실이 되자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성규가 차에서 내리며 짜증을 잔뜩 섞어 말했다.
“짜식! 지금 웃음이 나오냐?”
쩌렁쩌렁한 성규의 목소리가 지하에서 울리며 사방에서 되돌아왔다.
“당장 잡혀가지 않은 게 어디야. 좋아서 웃어요. 좋아서.”
성규는 대꾸도 하지 않고 트렁크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주눅이 들었다거나 불안한 표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한 건 오히려 장우 쪽이었다.



몇 해 전, 서둘러 찾아온 겨울이 첫서리를 뿌린 밤이었다. 북한산 자락에서 내려온 칼바람이 평창동 고갯길의 가로등 불빛을 불안하게 흔들었다. 소파 끝에 앉아 있던 비서들이 숨을 죽이며 윤호양 후보의 달싹거리는 입을 바라봤다. 윤호양 후보가 마른 입술에 침을 적시고선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명을 기다리던 비서실장에게 윤호양이 말했다.
“그 사람이… 그래 입이 무겁다꼬?”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젊은 비서가 눈치를 보았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비서실장은 그 의중을 정확히 알아챘다. 백전노장. 서두르지 않고 가장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선 신중하게 대답했다.
“네, 후보님. 사람들은 그의 입을 자물통이라고들 합니다.”


금고
장우가 명동에 다다르자, 비가 그쳤다. 소낙비가 갓 지나간 뒷골목에서는 젖은 신문 냄새가 났다. 채 실장 사무실은 간판 하나 없는 3층 건물 끝 방이었다. 청테이프로 깨진 곳을 때운 복사기가 종이를 토해내고, 금속 트레이 위엔 도장이 찍힌 서류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책상 한쪽엔 이빨 빠진 접시 위에 연필과 볼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깔끔하지도 질서정연하지도 않았지만, 꼭 필요한 만큼의 규칙은 확실히 있어 보였다.
“조장우 씨 맞죠?”
문을 닫기도 전에, 채 실장이 이름을 불렀다. 얼굴은 길고 말투는 짧았다. 안경테 안에서 굴러다니는 눈알이 민첩했다. 그녀가 내민 종이 위에는 오늘 처리분의 종목, 액면, 만기, 할인율, 수수료 따위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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