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낸 형사증거법 강의
한제희 | 박영사
23,400원 | 20260515 | 9791130398464
저는 검사입니다. 2001년 2월 19일부터 일을 시작해 26년째 근무하 고 있습니다.
전국의 여러 검찰청과 법무부에서 검사, 검찰연구관, 과장, 부장검 사, 교수, 차장검사, 단장, 지청장, 분원장 등 각양각색의 보직을 맡아 다 양한 일을 하였는데요, 특히 2019년 8월부터 2020년 8월까지 1년간은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신임검사 교육을 담당하며 강의의 재미와 미 래인재 섬김의 보람을 한껏 누렸습니다. 이때 정규교육과정 외에 번외 수업처럼 따로 모임을 만들어 열아홉 분의 신임검사님들과 형사증거법 을 공부한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검사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생 각하는 증거법 주제들을 놓고 교수, 판사, 변호사, 검찰수사관, 검사 등 다양한 직역에 계신 분들이 쓰신 연구논문들을 텍스트로 삼아 공부하 는 세미나 모임이었습니다.
검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법률가 내지 법률전문가로 인식하고 있 지만, 외부에서 검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법률가보다는 ‘수사관’에 더 가 까운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기존의 제도 틀에서도 물론이지만 지금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형사사법 환경에서는 더더욱 법률가 쪽 으로 방향 잡을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 ‘이론가’로서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저는 평소 과연 제 자신이 증거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증거법 은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아는 게 없는 거였구나’, ‘아는 게 사실은 아 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만드는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과 고민을 신임검사님들과 함께 나누면서 증거법 공부를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모임에 이름도 붙였는데요, ‘PT Party(피티파티)’입니다. 이 이름은 2013 년 춘천검찰청에서 근무할 때 만들었던 발표연구 모임(PresenTation Party) 의 명칭을 다시 가져온 것입니다. 이번에는 ‘Practices & Theories(실무와 이론)’ 내지 ‘Prosecutor Theoretician(검사 이론가)’이라는 거창한 의미 를 부여하여, 함께한 신임검사님들이 장차 실무와 이론을 두루 갖춘 차 세대 이론가로 성장하는 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낸 형사증거법 강의』는, 이 PT Party에서 제 가 강의한 내용들을 모아 수정하고 보완한 것입니다. 당초 코로나 사태 와 인사이동 탓에 저에게 주어진 용인에서의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아 쉬움을 달래며 2020년 11월 검찰 내부게시판에 『검사 입장에서 본 형사 증거법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고, 2024년 5월에는 일부 내용을 업데이트한 개정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 직장 밖에 계 신 분들을 대상으로 내용을 대폭 고쳐서 책으로도 내게 됐습니다.
증거법은 형사소송법 교과서 안에서도 가장 난해하기로 유명한 파 트여서 처음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는데요. 원래 신임검사님들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강의를 하고 글을 쓴 것이니만큼, 이 책은 특히 새내기 법조인이나 예비 법조인분들, 그리고 기존 교과서 에서 힘들게 증거법을 공부하고도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문 이 들었던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검사들이 일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한 분들도 좋겠구요.
증거법은 조문이 몇 개 되지 않고 조문 자체만으로 알 수 있는 내용 은 매우 빈약해서, 그 실질적인 내용은 판례가 다 채우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검사가 취급하는 증거의 대부분은 전문증거인데요, 전문증거는 원
칙적으로 증거로 못 쓰는 것인 데다 위법수집증거라는 허들도 있는 탓 에 법정 문턱조차 못 넘는 난감함을 종종 겪다 보니, 자연스레 기존 판 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주류의
시각보다는 ‘검사의 시각’이라는 좀 색다른 관점에서 증거법을 풀어내는 시도 를 해보았습니다. 물론 저의 소수설이 옳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에
요. 소수설을 통해 판례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왜 그러한 논 리를 갖게 된 건지를 독자 분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 생 각합니다.
저는 2008년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와 파리 법원에서의 연수 기회 에 프랑스 형사증거법을 공부한 일을 계기로, 한국형사판례연구회, 한 국형사소송법학회, 검찰프랑스법연구회 등의 학회 활동을 겸하며 여러 편의 형사법 논문을 쓰고 발표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전문연구자는 아 니어서 여전히 이론적 깊이는 얕고, 이 책이 증거법의 모든 주제나 최 신 판례까지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진 못합니다. 형사사법 실무에서 자주
문제되는 증거법의 핵심원리만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저의 첫 책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2026년 박영사 刊)에 이은 ‘검찰에 대한 오해와 이해’ 시리즈의 제2탄 정도가 되겠습니 다. 검찰이 잘났고 잘하기만 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전혀 아니구요, 검찰에 대한 어지럽고 악의적인 선동구호 저 너머에, 우리 사회를 굴려나가는 한 톱니 바퀴로서 이 제도와 시스템이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 습니다.
이제 함께 조용히 형사증거법 공부를 시작하시겠습니다.
2026년 5월
한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