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얼굴 바꾼 인종주의 (인종청소, 인신매매, 종교탄압의 잔혹사)
김영호 | 뱃길
29,700원 | 20240125 | 9791197824920
본서 ‘지구얼굴 바꾼 인종주의’는 주로 15세기 이후 인류사회에서 이뤄진 인종청소, 인신매매, 노예무역, 혼혈탄압, 종교탄압이 빚은 피의 역사를 엮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하얀 얼굴은 특권이고 짙은 얼굴은 죽음이 아니면 굴종의 인고가 따랐는데 그 박해와 차별의 아픔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아메리카는 곳에 따라 원주민이 거의 멸족되고 무수한 젊은이들이 천년세월에 걸쳐 노예로 끌려간 아프리카는 한 때 씨가 말라 인구증가가 멈췄었다.
15세기 이후 스페인에서는 종교재판이란 이름으로 이교도를 색출, 축출, 처형하는 광풍이 불어 수많은 유대인, 무슬림이 화형대, 교수대, 단두대에 세워졌다. 처형장은 환성과 탄성이 함께 쏟아지는 피의 제전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단두대에 끌려가 머리가 잘려 나가고 화형대에서 연기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 스페인이 아메리카 정벌에 나서 원주민들을 살육, 도륙, 약탈하여 제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스페인 말고도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가 그 대열에 섰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백인의 인종청소에 더해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묻어간 풍토병이 창궐하여 원주민의 떼죽음이 줄지어 일어났었다. 그곳에는 찬란한 문명의 꽃이 활짝 피어있었건만 백인들이 원주민들에게 야만인이란 허울을 씌우고 피의 광란을 벌였다.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멸족의 벼랑으로 내모는 참극을 벌였던 까닭은 원주민들의 삶터를 차지하려는 짓거리였다.
땅을 뺏긴 원주민은 하층민 신세로 전락했다. 더러 살아남았더라도 여자들은 겁탈당해 무수한 혼혈인이 태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스페인은 백인의 피 농도를 따져 차별하는 13단계의 신분제도를 만들어 원주민, 흑인, 혼혈인을 조직적으로 착취했다. 얼굴색 검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물렸고 백인은 면세의 특권을 누렸다. 그 스페인이 아시아에서는 중국 혈통을 끝까지 추적하여 차별했다. 양가의 조상 중에 중국인 한 명만 있어도 중국 혼혈인으로 분류하여 차별했다.
살육행각을 벌여 강탈한 땅에 삼림을 헐어내고 대농장을 조성하자니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여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부렸다. 아프리카에서 역내거래를 포함하여 3,000만명이 납치되었으나 끌려가는 길에 1/3은 굶거나 병들어 아니면 맞아서 죽었다. 주인이 바뀐 그곳은 이제 백인, 흑인, 혼혈인으로 채워져 대륙의 얼굴마저 바뀌었다. 원주민들이 거의 사멸해 버린 카리브 제도는 또 다른 아프리카의 얼굴을 연출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 이전부터 따지면 천년세월에 걸쳐 노예 사냥터로 변해버린 검은 대륙은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 아프리카는 과다한 인력유출로 말미암아 발전역량을 상실한 채 원시시대로 되돌아갔다. 그들의 피와 땀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일군 설탕, 커피, 목화, 담배, 향신료가 서유럽에 대호황을 가져왔다. 서유럽은 황금빛 찬란한 도금시대(Gilded Age)를 열어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졌었다. 노예무역의 선봉장인 서유럽의 소국 포르투갈이 제국의 대열에 우뚝 일어섰다. 하지만 그들이 벌였던 선혈이 낭자한 죽음의 제전은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져 있었다.
향신료를 찾아 동방으로 갔던 유럽 백인들은 인도 아대륙, 인도차이나 반도, 동남아시아를 200~400년 동안 차지하고 살육과 약탈의 향연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백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핏줄을 물러 받은 혼혈인들은 온갖 천대와 박해를 감내해야만했다. 21세기를 앞두고 불어온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그들이 이제는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와 달리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백인들이 나라까지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한다.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가 20세기 중반 다시 맹위를 떨치더니 유대인 멸족을 외친 독일나치의 고성이 유럽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총살부대도 모자라 인간도살공장까지 차려놓고 도륙의 광란을 벌였다. 그 광풍에 휩싸여 유대인 600만명을 포함하여 무려 1,100만이 목숨을 잃었다. 그 죽음의 제전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1,700년 전에 쫓겨났던 고토를 찾아 이스라엘을 창건했다. 그 이스라엘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살육행각에서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야수성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식민주의의 저주랄까, 역습이랄까 크리스천의 본령인 유럽에는 20세기 종반 들어 무슬림의 유입이 급증하더니 이제 크리스천-이슬람 충돌의 전조를 알린다. 서유럽의 옛 식민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꿈의 나라라고 믿는 유럽을 찾아 나서는 죽음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멕시코 국경지대에 불법입국을 막으려는 세운 장벽을 넘으려는 목숨 건 도전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 미국에는 중남미의 이주자들이 늘어나면서 흑백차별 말고도 또 다른 인종문제가 갈등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거기에다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가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수난시대를 살고 있다. 그곳에서 태어난 3, 4세도 마찬가지다. 백인은 물론이고 흑인, 라티노, 무슬림들이 너희 나라로 가라고 주먹질, 발길질이 한창이다. 지금 지구촌에는 3억명의 난민이 희망의 땅을 찾아 죽음의 길에서 헤매고 있다.